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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대학로 대세' 장지후 "광대 역, 운동장에 나온 기분"

등록 2020.02.01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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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환상동화'·뮤지컬 '그림자를 판 사나이' 출연

'한국뮤지컬어워즈' 8관왕 '호프'서 원고 K역

[서울=뉴시스] 장지후. (사진 = 알앤디웍스 제공) 2020.01.30.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장지후. (사진 = 알앤디웍스 제공) 2020.01.30.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광대 역을 맡아 마치 큰 넓은 운동장에 나온 기분이에요."

최근 대학로에서 만난 뮤지컬배우 장지후(32)는 막 단거리 달리기를 마친 선수의 심장처럼 약동하는 리듬으로 말했다. 그는 3월1일까지 대학로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 코튼홀에서 공연하는 김동연 연출의 연극 '환상동화'에 출연 중이다.

노래가 많아 음악극 같기도 한 이 작품에서 '전쟁 광대' 역을 연기하는 장지후는 뛰어난 가창력과 카리스마를 겸비한 연기 그리고 위트 넘치는 애드리브와 표정으로 호평을 듣고 있다.

작년 '에브리바디 원츠 힘 데드'에서 악역을 맡아 연극 신고식을 치렀던 장지후는 한층 넓어진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마음껏 끼를 분출할 수 있는 '환상동화'의 광대 역은 그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었다.
 
장지후는 "오른쪽으로 뛰어도 충분하고 왼쪽으로 뛰어도 충분한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환상동화'에서는 충분히 뒹굴어도 괜찮다는 생각이 듭니다"고 말했다.

저음이 매력적인 그는 "광대는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이잖아요. 마음껏 표현하는 사람, 흉내내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한계가 없는 캐릭터라는 생각이 들어 '환상동화' 속처럼 동화를 구연하고 설명하는데 가장 적합하지 않나 싶어요"라고 말했다. 

'환상동화'는 2003년 초연한 김 연출의 대표작으로 6년 만에 돌아왔다. 전쟁광대 그리고 사랑광대, 예술광대가 한스와 마리를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만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삶에 대한 다른 관점, 예술적 사상을 지닌 이들은 자신의 얘기가 더 많이 들어가야 한다고 아옹다옹하며 이야기를 오밀조밀 만들어 나간다.

[서울=뉴시스] 장지후. (사진 = 알앤디웍스 제공) 2020.01.30.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장지후. (사진 = 알앤디웍스 제공) 2020.01.30. [email protected]

극에는 철학적인 내용이 곳곳에 숨어 있다. 연극에서 만날 사랑 타령하지만 말고 예술, 전쟁 같은 진중한 소재도 다루자가 의기투합한 이들은 결국 사랑의 위대함을 깨닫는다. 전쟁 광대는 사랑의 걸림돌이 되지만 그 만큼 사랑을 단단하게 해주기도 한다.

최근 신드롬을 일으킨 KBS 2TV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용식'을 연기한 스타 배우 강하늘이 출연한다는 소식으로 대학로를 들썩였던 작품이다. 갈수록 그와 장지후뿐만 아니라 모든 배우들의 앙상블이 돋보인다는 평을 듣는다.

장지후도 "전쟁광대가 어떻게 하면 극의 톱니바퀴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해 고민 중"이라면서 "세 광대가 추구하는 바가 다른데 맛있는 비빔밥처럼 적당하게 맞물릴 수 있도록 연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전쟁 광대 역의 어려운 점에 대해서는 "사랑광대, 예술광대와 달리 아픈 현실을 바라보며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는 점"을 꼽았다.

2010년 군 뮤지컬 '생명의 항해'로 데뷔한 장지후는 최근 대학로에서 '대세 배우'로 통한다. 2018년 대형 라이선스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에서 집시들의 우두머리 겸 주인공 '에스메랄다'의 보호자인 '클로팽' 역을 맡아 주목 받았다. 중후한 배우들이 도맡은 역을 갓 서른이 된 장지후가 맡아 뮤지컬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작년 국내 초연한 뮤지컬 '킹아더'에서는 키 186㎝ 자신과 어울리는 훤칠한 호남형인 '랜슬롯'으로 존재감을 뚜렷하게 했다.

최근 '제4회 한국뮤지컬어워즈'에서 대상을 비롯 8광왕을 휩쓴 '호프(HOPE) :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에서 원고를 의인화한 캐릭터 'K'로 장지후를 기억하는 팬들도 많다. "K는 제가 한참 헤맨 역이에요. 멋진 캐릭터로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컸거든요. 그렇게 애써 고민하다보니 더욱 힘들어진 거죠."

해당 원고는 주인공 호프가 처참한 삶을 살면서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 절대적인 그 무엇이다. 이 추상적이고 그로테스크할 수 있는 역을 장지후는 살려냈다. 호프의 감정이 투명됐다고 해석한 것이다. "호프가 바라보는 시선이 닿는 거죠. '나는 종이일 뿐'이며  가지고 있는 사람의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서울=뉴시스] 장지후. (사진 = 스토리피 제공) 2020.01.30.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장지후. (사진 = 스토리피 제공) 2020.01.30. [email protected]

2월2일까지 홍익대 대학로 아트센터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그림자를 판 사나이' 역시 장지후의 해석력이 돋보인 작품이다. 약 4만명 관객 동원이 예상되는 이 작품은 프랑스 태생의 독일 시인 아델베르트 폰 샤미소(1781~1838)의 소설이 원작이다.

19세기 자본주의가 막 태동하던 시기에 나왔다. 주인공 '슐레밀'이 자신의 그림자를 정체불명의 남자에게 팔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슐레밀을 연기한 장지후는 이 역 역시 "혼란스런 상황들이 이어졌다"고 털어놓았다.

무엇보다 슐레밀이 그림자를 팔아야 하고 그로 인해 추락하는 과정을 관객이 체험할 수 있도록 내용과 감정을 전달하는 시간이 짧게 느껴졌다. "왕처럼 높게 올라가 있던 사람이 밑으로 쭉쭉 떨어지는 과정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높은 장면에서는 더 높게, 바닥을 기어야 하는 장면에서 더 기어가려고 했죠."

장지후는 대세 배우답게 2월28일부터 5월17일까지 서울 연지동 두산아트센터 연강홀에서 공연하는 뮤지컬 '마마, 돈 크라이' 10주년 공연에도 나온다. 이 뮤지컬에는 대학로에서 팬층을 보유한 인기배우들이 총출동한다. 

장지후는 높아진 인기에도 들뜨지 않았다. 에너지가 넘쳤지만 방금 100m 달리기 결승선을 끊은 사람처럼, 고르고 고른 신중함을 담아 확신에 찬 말투를 가지고 있었다.

장지후가 이처럼 차분함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순탄한 삶만 살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가난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가스, 전기가 끊길 때도 있었다. 그의 모친은 "일찍 어른으로 만들어 미안하다"고 말하기고 했다.

스무살이 됐을 때 남들처럼 대학에 입학하는 대신 무대 제작하는 회사에 취업해 돈을 벌었다. 집안의 가장이 그밖에 없었다. 뒤늦게 입학한 단국대학교 공연영화학부에서 남들보다 배로 노력하며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왔다. 

[서울=뉴시스] 장지후. (사진 = 알앤디웍스 제공) 2020.01.30.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장지후. (사진 = 알앤디웍스 제공) 2020.01.30. [email protected]

벼락처럼 스타가 된 것이 아닌, 한 단계씩 천천히 계단을 밟고 올라온 장지후는 이제 미래에 뮤지컬 '레 미제라블'의 '장발장'을 연기하고 싶다는 바람을 품을 정도로 성장했다.

그럼에도 고민은 있다. "문득 불안해질 때가 있다"고 털어놓았다. "그 말은 '지금 행복하다는 뜻'도 되겠죠"라고 여겼다. 그러면서 장지후는 "배우라는 직업이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기는 특별하다거나 우대를 받아야 하는 직업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보통사람들처럼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좋은 사람이 좋은 에너지를 갖고 좋은 배우가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무대 위에서 제가 무엇을 어떻게 보여줘야 하는지 고민하는만큼 일상에서 '어떤 사람이 돼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그래서 더 해요. 일상 생활의 중요함을 알고 있어야 하는 거죠."

그래서 뮤지컬 '그림자를 판 사나이'의 넘버 '그게 대체 뭐라고'가 지금 장지후 인생의 노래이기도 하다. "별 거 아닌 일에 길을 잃을 때가 있잖아요. 다른 사람의 사소한 다름을 보고 그를 사회 테두리 안에서 쫓아내려고도 하죠. 그렇게 실수도 하고 헤매기도 하지만 결국 '별 거 아니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마음을 내려놓으며 살아야 한다고 믿어요. 내려놓으면 모든 것을 잃을 것 같아 두렵지만, 막상 내려놓으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게 되니까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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