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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신구와 다시 한번...손숙 "저 분하고 무대서면 편안"

등록 2020.01.31 10:25:31수정 2020.01.31 10:3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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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구+이순재+손숙='대학로의 방탄노년단'으로 인기

2013년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초연...또 호흡

2월14일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서 4번째 시즌

'늙지않는 연기'...벌써부터 티켓 예매 들썩

[서울=뉴시스] 손숙, 신구. (사진 = 신시컴퍼니 제공) 2020.01.31.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손숙, 신구. (사진 = 신시컴퍼니 제공) 2020.01.31.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대사를 '아직도' 어떻게 외우냐고요? '아직도'라니요. 여전히 현역이에요. 호호. 연극의 가장 기본은 대사를 외우는 거잖아요. 신구 선생님은 연습 첫날부터 대본을 다 외워와서 젊은 배우들을 늘 긴장시키세요."(손숙)

"대사를 외우는 것은 우리의 당연한 일이잖아요. 연극하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직업이니 미리 준비할 의무가 당연히 있다고 생각해요."(신구)

'영원한 현역'으로 통하는 배우 신구(84)와 손숙(76)이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로 돌아온다. 두 노장의 나이를 합치면 150세, 연기 경력만 따로 떼어 놓고 합해도 115년이다.

30일 오후 세종문화회관에서 만난 신구와 손숙은 "혹자는 저희를 보고 '방탄노년단'이라고 부르더라"며 입 모아 웃었다. 신구와 함께 '꽃할배'로 통하는 이순재(85)까지 이들 세 거장을 그룹 '방탄소년단'(BTS)에 빗대 '대학로의 방탄노년단'으로 부르는 이들이 상당수다.

2월14일부터 3월22일까지 세종문화회관 S씨어터에서 네 번째 공연하는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에 두 배우가 다시 나온다는 예고에 티켓 예매창이 들썩 거린 이유다.
[서울=뉴시스] 손숙, 신구. (사진 = 신시컴퍼니 제공) 2020.01.31.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손숙, 신구. (사진 = 신시컴퍼니 제공) 2020.01.31. [email protected]


작가 김광탁의 자전적 이야기가 바탕이다. '제6회 차범석 희곡상' 수상작이다. 간암 말기 아버지가 고통으로 인한 간성혼수 상태에서 '굿을 해달라'고 김 작가에게 부탁한 것에 대한 충격으로 시작됐다.

2013년 신구, 손숙과 함께 초연한 이 연극은 매진 사례를 기록, 이듬해 앙코르 공연까지 했다. 2016년 극작가 차범석의 타계 10주기를 맞아 추모 공연으로 올랐고 약 4년 만에 돌아오게 됐다.

노년을 연기하지만 늙지 않는 연기를 보여주는 신구와 손숙의 말, 몸짓에는 생명력이 꿈틀거린다. 함경도가 고향으로 17세에 월남해 악착같이 가족을 부양하다 78세에 말기 간암 판정을 받고 정신마저 오락가락하는 실향민 아버지를 신구, 아픈 아버지를 헌신적으로 돌보는 밀양 출신 어머니 '홍매'를 손숙이 연기한다.

[서울=뉴시스] 2016년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사진 = 신시컴퍼니 제공) 2020.01.30.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2016년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사진 = 신시컴퍼니 제공) 2020.01.30. [email protected]

'무대는 배우의 예술'이라는 이제는 진부해진 명제. 그러나 무대 위에서 삶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배우들을 보면, 이 말은 불멸의 정답일 수밖에 없다.

간암 말기 증상에 정신착락증을 일으키는 역을 신구는 실감나게 연기하지만 "완전히 일체돼서는 안 된다"고 선을 그었다. "이성을 어느 정도 가지고 연기 조정을 해야 해요. 감정 몰입과 이성으로 조정하는 그 차이를 최소한 줄이는 것이 좋은 배우라고 봐요."

손숙은 네 번째 공연인데도 연습에서 "대사 하나하나가 새로웠다"고 했다."시한부 인생을 사는 남편이 불쌍해서 안타까워하고, 답답하기도 해서 구박하는 착잡한 마음은 여전"하다.

다만 "기존에 미처 찾아내지 못했던 부분을 보완하고 있어요. '아' '어' 등의 말만으로도 분위기가 달라지는 섬세한 작품이거든요. 지난 공연에서는 해외에 있는 똑똑한 첫째 아들에 대한 섭섭한 마음을 덜 느꼈는데, 이번에는 더 느껴지더라"고 했다. "요즘 웰다잉(well-dying)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는 그 말에 어울리는 작품이에요. 죽음에 품격이 있으면 좋겠다고 느끼게 하죠."

[서울=뉴시스] 신구. (사진 = 신시컴퍼니 제공) 2020.01.31.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신구. (사진 = 신시컴퍼니 제공) 2020.01.31. [email protected]

두 배우는 팔순 안팎의 나이에도 원캐스트로 한달 넘게 공연을 이어간다. 최근 젊은 배우들이 대거 등장하는 대학로는 같은 배역에 많으면 네 배우가 동시 캐스팅되기도 한다. 이런 흐름에서 노장 배우들의 뚝심을 높게 살 만하다. 손숙은 "우리는 더블이면 하지 않겠다고 했어요"라며 "원캐스팅이 공연의 완성도를 높일 것"이라고 했다.

신구, 손숙은 60년 가까이 무대에 오르고 있지만 여전히 심장이 뛴다. 손숙은 "한 공간에서 관객을 만나는 기분은 어떤 장르도 따가갈 수 없다"고, 신구는 "제 호흡을 관객이 바로 느끼고 순간들이 기록되지 않고 사라지는 것"을 연극의 매력으로 꼽았다.  

이렇게 한국 연극의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두 사람은 올해 창립 70주년을 맞은 국립극단에서 1970년대 초 함께 연기했다. 1971년 국립극장에서 공연한 연극 '달집' 이후 39년 만인 2010년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른 연극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에 같이 나왔다.

2013년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로 부부 연기를 처음 했다. 이후에 대표적인 연극계 콤비가 됐다. 2015년 평생 살아온 한옥을 떠나기 하루 전 노부부 이순·장오의 일상을 오롯이 보여준국립극단의 연극 '3월의 눈', 2017년 비밀을 간직한김성칠·임금님의 연애를 다룬 작품으로 동명영화(감독 강제규·2014)가 바탕인 연극 '장수상회'에서도 차진 호흡을 보여줬다.

[서울=뉴시스] 손숙. (사진 = 신시컴퍼니 제공) 2020.01.31.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손숙. (사진 = 신시컴퍼니 제공) 2020.01.31. [email protected]

손숙은 "신구 선생님은 지금도 연습 들어가기 전에 다이어트를 하세요.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에서 아픈 사람 역을 맡으시다 보니 말라보여야 한다는 거죠. '저 분하고 무대에서 서면 편안하다'고 느껴져요. 불안하지 않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눈빛만 봐도 서로 신뢰한다는 것을 알 수 있죠"라고 말했다.

신구가 잠자코 듣고만 있자 손숙은 그에게 "할아버지는 나 신뢰 안 해?"라고 너스레를 떤다. 신구는 "신뢰하지"라고 크게 웃으며 고개를 연신 끄덕인다.

두 사람의 연극계에 대한 애정 역시 여전했다. 신구는 "지금도 연극만 하고 살기에는 현실적으로 환경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물론 우리나라뿐만은 아니에요. 모든 연극계에 몸 담은 배우들이 삶을 지탱하기 어렵죠. 그러니까 연극에서 자기 표현을 잘 하는 젊은이들이 매체로 뽑혀 나갈 수밖에 없죠. 연극만 하며 노력해도 잘 수 있도록 풍족해졌으면 해요."

[서울=뉴시스] 손숙, 신구. (사진 = 신시컴퍼니 제공) 2020.01.31.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손숙, 신구. (사진 = 신시컴퍼니 제공) 2020.01.31. [email protected]

손숙은 국립극단에 꾸준히 해온 이야기가 있다면서 "무용이랑 국악은 다 '인간 문화재'가 있어 대접을 받는데 연극계는 그렇지 않다"고 아쉬워했다. "예를 들어 국립극단에서 명예 종신단원제를 만들 수 있잖아요. 많지는 않아도 다섯, 여섯 분만 모셔도 젊은 배우들에게 희망을 주는 동시에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배우는 연출, 관객을 만나 꽃을 피우는 직업이다. 두 거장 배우는 좋은 연출들이 자주 찾아줘 좋은 역을 많이 맡았다며 만족해했다. 그럼에도 연기하지 못한, 아쉬운 배역들은 있다. 신구는 "젊었을 때 햄릿을 못해봤다"고 웃었다. 손숙은 "연출들이 너무 정석으로 해서 그래요. 개성 있는 햄릿도 있어야 하는데"라며 웃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의 '블랑셰'를 맡지 못했다는 손숙은 그럼에도 희열을 느끼게 해준 작품을 찾으며 긍정했다. 1인15역을 소화한 모노극 '셜리 발렌타인'이다.

"'셜리발렌타인'을 하면서 신이 나서요. 주부가 그리스에 가는 장면에서 제가 수영복을 입고 나오거든요. 그 때 저를 감싸던 것을 벗어던지는 새로운 희열을 느꼈었지요. 호호."

여전히 새로움에 대한 희열을 원하지만 새로운 배역을 맡고 싶은 마음보다 "단역이라더라도 무대에 계속 올랐으면 하는 마음이 더 크다"고 웃기도 했다.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를 지금 봐야 하는 이유가 있을까. 유명 패스트 푸드 체인점 CF를 떠올리게 하는 말투로 한방을 던진 신구의 말로 갈음한다. "안 보면 지만 손해지."

한편 이번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에는 기존에 출연한 배우 최명경, 서은경도 함께 한다. 아들 역에 배우 조달환이 새로이 합류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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