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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복지]정우성의 '증인' 속 자폐소녀 지우는 왜 특수학교로 전학가야 했나

등록 2020.02.08 08:2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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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 감독 영화 '증인' 자폐장애 가진 '지우'

또래 괴롭힘 당하다 일반학교→특수학교로

"통합교육이냐 분리교육이냐" 어려운 논쟁

장애학생 인권보호 제도 강화…인식교육도

【서울=뉴시스】영화 '증인'. 2019.02.09.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서울=뉴시스】영화 '증인'. 2019.02.09.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세종=뉴시스]이연희 기자 = 여느 풍경과 다르지 않은 고등학교 교실 국어 시간. 선생님은 지우(김향기)를 지목하며 교과서 속 윤동주 시인의 시 '눈'을 낭독하도록 했다. 이름만 불렸을 뿐인데 같은 반 학생들은 곳곳에서 킥킥거린다.

지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큰 소리로 또박또박 시를 읽기 시작한다. 주변 학생들은 여전히 비웃고 어떤 학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기도 한다.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경고를 주고 "지우가 시를 금방 다 외웠구나" 하고 칭찬하지만 변하는 건 없다. 지우는 불쑥 난데없이 시가 거짓이라고 주장한다. "눈이 덮어주는 이불이란 말은 거짓입니다. 눈 덮으면 춥습니다."

지난해 2월 개봉한 영화 '증인'에서 지우는 자폐장애 스펙트럼에 있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앓고 있는 고1 학생이다. 아스퍼거 증후군은 타인과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고 관심 분야가 한정되는 특징을 보인다.

지우는 비장애 학생들과는 다른 억양으로, 좀처럼 사람의 눈을 마주치지 않고 말한다. 조금은 엉뚱해보이기도 한다. 지우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 즉 감각부터가 다르기 때문이다. 남들은 듣지 못하는 시계 초침소리가 거슬리고, 하교길 강아지 짖는 소리 때문에 귀를 막고 셋을 세며 뛴다. 손수건에 빼곡한 물방울 개수 190여개를 3초 안에 셀 수 있다. 영화는 스크린을 통해 지우의 시각과 소리 등 감각을 관객에게 전하는데 상당한 시간을 할애한다.

지우처럼 장애를 가진 특수교육대상자는 국내 10만명에 육박한다. 전국에 영유아부터 대학생까지 특수교육 대상자 학생 수는 지난해 기준 9만2958명이다. 이중 지적장애가 4만9624명(53.4%)으로 가장 많다. 지우와 같은 자폐성 장애로 분류되는 학생은 1만3105명(14.1%)으로, 두번째로 많다. 지체장애 학생은 1만200명(11%), 발달지체 7309명(7.8%), 청각장애 3225명(3.5%), 정서행동장애(2182명(2.3%), 시각장애 1937명(2.1%) 순이다.
【서울=뉴시스】영화 '증인'. 2019.02.09.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서울=뉴시스】영화 '증인'. 2019.02.09.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지우는 어느날 밤 우연히 살인사건 목격자가 된다. 지우가 가사도우미 미란(염혜란)이 노인을 살해했다고 진술하자 미란은 용의자로 지목됐다. 미란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노인을 구하려 한 것이라 주장하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유일한 목격자인 지우는 법원으로부터 증인으로 출석해달라는 요구를 받는다.

피고인 미란의 변호를 맡게 된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 순호(정우성)는 다소 불순한 의도로 지우에게 접근한다. 지우를 법정에 증인으로 세우면 자폐성장애가 부각돼 증언의 신빙성이 떨어지게 될 것이고, 피고가 승소하는데 유리할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검사 희중(이규형)은 자폐장애를 가진 동생이 있어 어렵지 않게 지우와 소통한다.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는 순호의 요청에 희중은 간단하지만 결코 쉽지 않은 비법을 알려준다. "자기 세계에서 나가기 힘든 사람이 있으면, 당신이 거기 들어가면 된다"고 말이다.

처음 시작은 불순했을지 몰라도 순호는 노력한다. 매일 하교길에 함께 하며 컵라면이나 슬러시를 사주고, 오후 5시면 지우에게 전화를 걸어 퀴즈를 낸다. 지우도 조금씩 마음을 열지만 소통해가면서 변하는 것은 지우만이 아니다. 순호는 "당신은 좋은 사람입니까?" 하고 묻는 지우의 질문에 답은 피했지만 조금씩 양심을 회복해간다.

장애가 없는 학생들과 함께 하는 지우의 학교생활은 순탄치 않은 것으로 그려진다. 지우는 수업이 끝난 후 집에 갈 때 면 더 노골적으로 또래들의 괴롭힘을 당한다. 민감한 시각과 청각을 가졌다는 걸 알고 공을 던져 겁을 주는 아이들이 있는가 하면, 유일하게 함께 집에 가는 친구도 '놀아주고 돈 받는다'며 모욕을 당하기 일쑤다. 믿었던 친구마저 지우에게 벌레가 든 음료를 먹으라 강요하고 욕설과 폭행을 가한다.

이를 목격한 순호는 지우의 어머니에게 지우를 특수학교로 전학시키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한다. 실제로 지우는 법정에서 증인으로서 본분을 마친 후 특수학교로 옮긴다. 지우는 자신의 생일파티에서 특수학교 생활을 순호에게 전해준다. 아이들 다 이상하다고. 그러나 이내 "정상인 척 안 해도 돼서 좋다. 그동안 정상인 것처럼 보이려고 연습했다"고 말한다.

특수교육 대상 장애학생 중 특수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은 지난해 2만6459명(28.4%) 수준이다. 나머지 6만6499명(1.6%)는 일반학교에서 일반학급 또는 특수학급으로 분류돼 통합교육을 받는다.

국내 특수학교가 그만큼 적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이미 통합교육이 세계적 추세라는 점이다. 프랑스나 독일 등은 통합교육을 원칙으로 장애학생을 교육한다. 장애학생과 비장애학생을 분리해 교육할 경우 장애학생은 나중에 성인이 돼 사회에 진출할 때 더 적응하기 어렵고, 비장애학생의 편견은 해소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특수학교 등에 진학하는 비중은 2015년 29.6%였으나 지난해 28.4%로 소폭 줄어든 반면 일반학교 진학률은 2015년 70.4%에서 지난해 71.6%로 늘었다.
【서울=뉴시스】영화 '증인'. 2019.03.01.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서울=뉴시스】영화 '증인'. 2019.03.01.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국내에서도 장애학생 통합교육에 내실을 기하기 위한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다. 대표적인 제도로는 서울시교육청의 '정다운 학교'(통합교육 중점학교)가 있다. 장애학생에 대한 차별과 인권침해가 일어나지 않는 통합교육 기반을 다지기 위해 일반교사와 특수교사가 협력하는 학교를 말한다.

'정다운 학교'에서는 장애가 없는 학생도 수업이나 방과후교육을 통해 인식 개선 프로그램 교육을 받고, 장애학생과 어울려 생활한다. 장애학생들의 수업 참여활동은 늘고 비장애 학생들의 거부감은 줄어드는 효과를 거두고 있다. 교육부는 지난 2018년까지만 해도 전국에 40개교였던 정다운학교를 2022년 100개교로 2배 이상 확대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우가 일상처럼 겪어야 했던 학교폭력 피해는 어떨까. 실제 장애학생들은 학교폭력 피해에 취약하다. 일반학교 내 장애인 대상 학교폭력 피해를 당한 학생은 2014년 147명에서 2018년 677명으로 4년새 4배 이상 늘었다.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심의 건수만 집계한 것인 만큼 그 이상일 수 있다. 장애학생은 가해자 지목이나 피해사실을 명확하게 주장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교육당국인 학교폭력에 노출된 경험이 있거나 인권침해를 받을 가능성이 높은 장애학생은 '더봄학생'으로 정한다. 이 학생은 경찰청이 협조해 거주지 순찰을 강화하고 수시로 방문과 상담을 진행한다.

국립특수교육원은 지난해부터 장애학생 온라인 인권보호 지원센터(www.nise.go.kr/hright)를 운영하며 장애학생을 대상으로 한 폭력과 성폭력, 학대, 차별행위에 대한 제보를 받고 있다. 제보 내용을 확인하면 각 시도교육청에 전달하고, 교육청은 사안처리와 현장 지원, 경찰 수사의뢰 등을 수행하게 된다.

지역별 특수교육지원센터에 설치된 장애학생 인권지원단(인권지원단)을 통해서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인권지원단에는 경찰서 여성청소년수사팀장(여성청소년 계장)이나 장애학생 보호자, 상담전문가, 장애인권 전문가 등이 참여하고 있어 장애학생 인권 침해 사례가 발생하면 즉시 대응이 가능하다.

피해 사례가 발생하면 우선 1단계로 학교와 장애학생 인권지원단이 피해학생을 보호하고 상담하는 역할을 한다. 2단계로 지역사회에서 법률·상담·의료·치료·돌봄기관 등과 연계해 지원한다. 마지막 3단계로 부모상담 교육, 피해학생의 거주지 주변 순찰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후속 지원을 하게 된다.

결국은 사회 전반적인 인식을 개선하는 것만이 근본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지우가 다니는 일반학교에서의 교육도 결국 체계적인 인식개선 프로그램과 교육적 지원이 뒷받침됐다면 지우가 전학을 가지 않아도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일은 크게 줄어들 수 있었을 것이다.

순호는 첫 공판에서는 지우의 장애를 '정신병'이라 말하며 차별했고 또 이용했다. 결국 양심의 가책을 느낀 순호는 항소심에서는 '좋은 사람'이 되기를 택한다. 법정에서 피고인를 보호하는 변호인으로서의 역할은 내려놓고 지우의 진실된 증언에 힘을 실어주기로 한 것이다. 순호는 법정에서 자기고백을 한다.

"그동안 재판에 혼선이 있었던 것은 우리가 지우양의 특성에 대해 몰랐기 때문입니다. 아니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와 다른 사람에게 갖는 편견에서 우리도 결코 자유롭지 않다. 그러나 한 명 한 명이 또 사회가 나서서 편견을 깨려는 노력을 하는 이유는 '인간의 존엄성'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그 노력을 포기하는 순간 우리는 더 나은 길을 가지 않기로 하는 것과 같다.

이제부터라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어울리는 사회를 우리가 만들어가는 모든 과정의 '증인'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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