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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and]'이낙연은 NY' 정치인 약칭의 계보…"국민이 붙여야"

등록 2020.02.09 09: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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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출마 이낙연 측, 'NY' 약칭 본격적으로 밀기

'거물'의 상징이던 DJ·YS·JP·TJ…빛 보지 못한 CY·HC

DY, 'Dynamic Young' 등 별도의 의미 부여 시도도

전문가 "DJ·YS는 박해받은 상징으로 시대의 은어"

"애칭도 국민이 붙이는 것…긴 시간동안 형성돼야"

"'이제 이렇게 불러달라'는 호칭은 정착 어려워"

[서울=뉴시스]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최근 인스타그램을 통해 모집한 'NY 서포터즈'의 한 자원봉사자가 만든 이 전 총리의 캐리커쳐. (사진 제공 = 이 전 총리 측)

[서울=뉴시스]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최근 인스타그램을 통해 모집한 'NY 서포터즈'의 한 자원봉사자가 만든 이 전 총리의 캐리커쳐. (사진 제공 = 이 전 총리 측)



※ '여의도 and'는 정치권에 얽힌 다양한 뒷이야기들을 소개하는 연재 코너입니다. 여의도 국회를 중심으로 조직과 사람들 사연, 제도와 법령의 잘 알려지지 않은 이면, 각종 사건사고 후일담 및 에피소드 등을 뉴시스 정치부 기자들이 소개합니다. [편집자 주]

【서울=뉴시스】정진형 기자 = "최대한 포장이나 과장을 하지 않고 담담히 얘기하자는 결심을 항상 옆에 두고 글을 썼습니다. 그래서 호칭도 존칭이 따라붙지 않는 ‘NY’라고 적기로 마음먹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후보로 오는 4월 총선에 출마하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측근인 양재원 전 총리실 민원정책팀장이 쓴 책 '이낙연은 넥타이를 전날 밤에 고른다' 서문의 한 대목이다. 이 전 총리 영문 이니셜인 NY는 최근 이 전 총리 주변에서 부쩍 정착시키려는 약칭이다.

연원을 따지면 이 전 총리를 의원 때부터 모신 측근들끼리 내부에서 통용됐다고 한다. 지금은 기자들과 일정을 공유하는 카카오톡 단체채팅방에 'NY 일정공지', 홍보 자원봉사자 모임에는 'NY 서포터즈'라는 명칭을 붙이는 등 NY를 본격적으로 밀고 있다.

멀게는 DJ(김대중)·YS(김영삼)· JP(김종필) 등 '3김(金)'부터 가깝게는 MB(이명박), DY(정동영), GT(김근태), SK(정세균)로 이어진 이니셜 약칭의 계보를 잇는다고 할 수 있다.

◇'거물'의 상징 DJ·YS·JP·TJ…빛 보지 못한 CY·HC

3김으로 상징되듯 이니셜 약칭은 대선주자, '거물'의 전유물로 여겨진다. 연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꼽힌다. 존 F 케네디 미국 대통령이 'JFK'라고 불리는 데서 따와서 'JP'를 쓴 것이 시초라는 설이다.

아랫사람이 윗 사람의 이름을 직접 부르기 꺼려하는 피휘(避諱) 문화, 또는 권위주의의 산물이기도 하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도 널리 쓰이진 않았지만 PP(President Park)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DJ·YS·JP는 국민적으로 공인된 약칭이다. 이니셜 명칭이 대선주자의 상징처럼 한동안 정가에 유행했던 것은 3김에서 기인한 바가 크다. 고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도 총리와 자민련 총재를 역임하며 3김과 어깨를 나란히 했을 당시 신문 지면에는 'TJ'로 통칭됐다.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은 통일국민당을 만들어 대선에 뛰어들었던 1992년에 3김처럼 자신도 'CY'로 지칭되길 바랐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총재도 정치권과 언론에선 '창(昌)'으로 통용됐는데 'HC'란 약어를 정착시키려 부단히 노력했었다.

3김 이후 가장 성공적으로 이니셜 약칭이 자리 잡은 인물로는 이명박 전 대통령(MB)이 꼽힌다. 발음이 두 음절로 떨어지는 점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2MB(메가바이트)'라는 멸칭 탓이 크다.

【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사진은 1987년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통일민주당을 창단했을 당시 모습. 2015.11.22. (사진은 독자 정태원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박진희 기자 = 사진은 1987년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통일민주당을 창단했을 당시 모습.  2015.11.22. (사진은 독자 정태원씨 제공) [email protected]


◇DY, 'Dynamic Young'…GT, 'Go Together' 의미 부여 시도

대선주자의 슬로건과 이니셜 약칭을 결합시켜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 역시 항상 있었다.

정동영(DY) 민주평화당 대표의 경우 17대 대선 직전인 2007년 8월 출간한 저서 '중산층 나라를 만들겠습니다'에서 디지털 경제 5개년 비전을 제시하며 디지털(digital)을 'DY gital'로 지칭했다.

'Dynamic Young'을 밀어보려는 시도도 있었다. DY계로 불렸던 한 측근은 뉴시스에 "내부적으로는 '역동적인 젊은 지도자'란 이미지로 쓰였으면 했다"고 설명했다.

고 김근태(GT) 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도 약칭을 'Go Together'로 형상화했고, 지지자 모임도 스스로를 'GT 희망'이라 이름붙였다.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 측은 약칭 HQ와 함께 'Head Quarters', 'High Quality'를 내세웠다.

이회창 전 총재 측은 약칭 HC에 감사원장과 총리 시절의 '대쪽' 이미지를 살려 정직과 청렴을 뜻하는 'Honest & Clean'이라는 의미를 부여하려 애썼다.

◇김무성 '무대', 文대통령 '이니'…盧 표기 놓고 갈등도

이니셜 약칭 열풍이 시들해진 2000년대 후반부터는 거물급 정치인들에 대해 별명, 혹은 이름 그대로 통용되는 경우가 많아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영어 약칭 'GH' 대신 한글 본명을 썼다. 새누리당 대표를 지낸 김무성 한국당 의원은 거대한 체구와 좌중을 휘어잡는 보스 기질에서 따온 '무대(무성대장)'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문재인 대통령은 별도 약칭은 없지만 지지자들 사이에서 '이니'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기념상품은 '이니 굿즈'로 통한다. 문재인 정부 출범 2주년을 맞은 지난 2019년 5월에는 더불어민주당이 이니 굿즈 제작에 가세하기도 했다.

정세균 총리는 정치권에선 영문 이니셜 'SK'로 지칭되기도 하지만 대중적으로는 인스타그램 주소에서 유래한 균블리(Gyunvely), 만화영화 캐릭터 중 하나인 '세균맨'을 별명으로 친근감있는 이미지를 구축했다.

언론에서 통용되는 약칭을 놓고 긴장관계가 펼쳐지기도 한다. 참여정부 시절 언론 제목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盧'로 표기되자 청와대는 국가원수에 대한 예우를 문제삼았다. 당시 양정철 국내언론비서관은 2004년 청와대 브리핑에 기고한 '22만명의 대통령, 대통령의 ‘이름’과 ‘직책’을 돌려주십시오'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유감을 드러냈었다.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24일 서울 종로구 창신골목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2020.01.24. photocdj@newsis.com

[서울=뉴시스] 최동준 기자 =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24일 서울 종로구 창신골목시장을 찾아 상인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2020.01.24. [email protected]


◇전문가 "DJ·YS는 시대의 은어…약칭도 국민이 붙이는 것"

NY는 일단 언론 지면에는 서서히 등장하고 있다. 민주당 상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은 이 전 총리가 지난 7일 백혜련(경기 수원을) 의원과 영입인재인 이탄희 전 판사 후원회장을 맡자 언론에는 ''NY(낙연)계 세력화'라는 표현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나 이 전 총리의 인스타그램에는 여전히 '총리님'이라는 호칭이 더 많다. 정치권에선 3김 시대의 상징처럼 여겨지는 이니셜 약칭 대신 일반 국민에게 친금감 있게 다가갈 애칭에 공을 들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대권후보들이 이니셜을 따던 것이 한때 유행했지만 지금은 트렌드가 바뀌었다. 과거 회귀의 느낌"이라며 "문 대통령도 지지자들에게 '이니'로 불리지 않나"라고 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뉴시스와의 통화에서 "DJ나 YS는 물론이고 JP도 5공(5공화국) 때 박해받았기에 여기 담긴 의미는 특정 시대에 박해받은 상징으로, 역사의 암호로서의 의미"라며 "당시 은어로 부를 수밖에 없었던 환경도 작용한 것"이라고 짚었다.

신 교수는 "이 전 총리야 그런 환경에서 정치를 한 분이 아니기 때문에 (약칭) 그런 걸 한다는 건 본인도 과거에 존재했던 정치 거물과 비견시키려는 노력의 일환"이라며 "애칭도 국민이 붙여야 하는 것이고 장구한 시간동안 형성되는 것이 정상적이다. '이제 이렇게 불러달라'는 호칭은 (쉬이 정착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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