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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생각]새로운 시대, 새로운 융합의 모색

등록 2020.02.21 18: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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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김유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뉴시스】김유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

[서울=뉴시스]  '다른 종류의 것이 녹아서 서로 구별이 없게 하나로 합하여지거나 그렇게 만듦', 이것은 융합(融合, convergence)에 대한 사전적 정의이다.

최근 많은 분야에서 융합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지만 과학기술은 융합의 가치가 더욱 빛나는 분야로 볼 수 있다. 이제는 과거처럼 많은 연구비를 투입한다고 반드시 좋은 연구 성과가 보장되지 않는다.

또한 활용 가능한 기술들은 도처에 널려있고 개발되지 못하고 새롭게 정복해야 하는 미지의 영역은 긴 호흡을 가지고 도전적으로 개척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과학기술 분야에서 '융합'이 필요한 이유이다. 혁신이 꼭 대규모 투자를 통해 이뤄지기보다는 기존에 구축된 기술을 잘 연결하는 것만으로도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대인들의 눈을 한시도 뗄 수 없게 만드는 스마트폰과 그 생태계는 들여다보면 이전에 없던 새로운 기술을 통해 만들어지기보다는 있는 기술을 잘 연결(connection)하여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낸 대표적인 예로 볼 수 있다.

융합을 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도 시도되었다. 대표적인 지역혁신성장 정책인 '클러스터'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과학기술정책, 산업정책, 지역개발정책의 교집합으로 볼 수 있는 클러스터 정책은 개별적인 혁신 주체 간의 네트워크 형성을 통해 산업부문과 연구부문의 연계를 강화하여 산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추진되었다. 즉, 연구개발을 통한 지식의 생산과 이를 활용한 지식의 융합, 확산이 산업 혁신을 일으킬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실제 사례는 어떠한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클러스터인 대덕연구단지를 살펴보자. 대덕은 정부출연연구소와 기업 연구소를 주축으로 국가적으로도 높은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지식 생산 기능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렇게 생산된 지식이 산업과 연결되기 위한 지식의 융합 기능 또는 혁신 활동이 창업으로 연결되기 위한 금융, 마케팅, 법률 등 지원 인프라는 그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로 인해 연구개발을 통한 새로운 가치 창출이 다시 새로운 연구개발로 순환되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즉, 융합의 사전적 정의에서 살펴본 '다른 종류의 것'이 녹아들 수 없는 구조를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또 다른 사례를 보자. 융합기술은 이를 구성하는 세부 구성 기술들이 각각의 특성을 발휘하면서도 하나의 제품 또는 서비스로 인식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스마트 폰을 들여다보면서 이를 구성하는 AP(Application Processor), 메모리, 디스플레이 등 요소기술을 인식하면서 쓰는 사람은 많지 않다.

즉, 각각의 부품들이 한데 모여 만들어내는 사용자 환경이 얼마나 새로운 경험을 제공하는지에 따라 혁신을 판가름한다. 최근 융합기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국가연구개발사업에서도 융합연구를 활성화하기 위한 정책지원과 투자가 활발하다.

융합연구개발 활성화를 위한 기본계획이 수립되기도 하였고 융합연구 자체를 목적으로 내건 다양한 연구개발 과제들이 발주되고 있다. 융합연구는 그 특성상 세부기술별로 다양한 주체가 참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계획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세부기술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과 이를 통합하기 위한 전략 모두가 중요하다.

그러나 그 간 추진된 융합연구의 과정과 성과를 살펴보면 각각의 세부기술 개발은 개별과제로 분절적으로 진행되고 이를 엮어 완전한 하나의 제품 또는 서비스로 만들어내는 것은 미완으로 남는 경우가 많았다.

융합연구 성과에 대한 분석연구에 의하면 개별 주체 간 연구개발 방법, 융합에 대한 인식 및 동기, 문제해결의 접근 방식 등이 융합에 걸맞게 변화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관행과 관성을 그대로 유지한 채 연구개발을 추진한 것이 그 이유로 꼽힌다. 이는 앞서 살펴본 융합의 사전적 정의에서 '서로 구별이 없게 하나로 합하여 지거나 그렇게 만듦'에 있어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융합을 하는 방법도 바뀌어야 한다. 다른 종류의 것이 녹아서 하나로 합하여져 새로운 가치를 만들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할까. 즉, 진정한 의미의 융합은 어떻게 달성될 수 있는 것인가. 최근 '살롱' 문화를 통해 이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위한 시도가 확산되고 있다.

살롱은 18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사교의 장이자 지식 교류의 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롱은 출신이나 소속, 또는 이름이나 나이보다도 각자의 생각과 취향을 더 중히 여겼다고 한다. 혁신 신약 분야에서 현재 활발히 운영 중인 '혁신신약살롱'이 있다. 신약 개발에서 종래의 하향식, 분절적 연구 관행을 없애고 다양한 전문가와 느슨한 교류를 통한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을 지향하는 모임이다.

실제 혁신신약 관련 기업의 경영진, 연구원, 임상 개발 전문가, 투자자, 생명 분야 담당 언론인, 사업모델 개발 전문가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자발적, 독립적'으로 모여 세미나를 듣고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과정을 통해 융합과 혁신을 위한 생태계와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혁신신약살롱에 참여하고 있는 전문가의 의견에 따르면 정부나 특정 대기업이 '주도하지 않는' 것이 이 모임이 8년간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라고 한다. 그간 정부나 연구소를 중심으로 주도되었던 융합 활성화 정책은 과학기술분야에서 융합의 구심점을 만들기 위한 나름의 의미를 가진다.

그럼에도 어느 한 주체가 융합의 방향을 정하고 끌고 나아가기에는 미래는 너무 빨리 변화하고 있다. 이제는 어떤 분야와 어떤 기술이 융합하여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것인지 사전에 예측하고 기획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실리콘벨리의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발전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원인에 대해 분석한 여러 보고서를 종합하면 개방적 협업, 기술-사업-인력-금융의 유기적 네트워크, 전문가 집단의 자발적 지식 교류 및 융합이 가능했던 환경을 꼽고 있다.

젊은 벤처 기업인을 중심으로 이 '살롱' 문화를 융합의 새로운 돌파구로 찾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오는 갈증 해소책이 아닐까 생각한다. 융합에 대한 도전성과 불확실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과학기술 패러다임 전환 시점에서 이제는 융합의 방법에 대해서도 새로운 모색이 필요하다.

김유빈 국회미래연구원 연구위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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