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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 문화소통]우리말에도 평상거입 4성이 살아있다

등록 2020.03.04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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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의 ‘문화소통’

[서울=뉴시스] 훈민정음 언해본에서 ‘입(入)’과 ‘즉(則)’자 등의 왼쪽에 한 점을 찍은 이유는 종성 받침이 ‘ㄱ, ㅭ(←ㄷ), ㅂ’인 우리말 한자어 입성의 높이가 거성처럼 높기 때문이다.

[서울=뉴시스] 훈민정음 언해본에서 ‘입(入)’과 ‘즉(則)’자 등의 왼쪽에 한 점을 찍은 이유는 종성 받침이 ‘ㄱ, ㅭ(←ㄷ), ㅂ’인 우리말 한자어 입성의 높이가 거성처럼 높기 때문이다.

[서울=뉴시스]  훈민정음 창제 후 두 달여가 지난 1444년 3월 9일(음력 2월20일), 세종은 훈민정음의 국가적 시행을 반대하는 집현전의 최만리·신석조·김문·정창손·하위지·송처·조근을 향해 일갈했다. “너희가 운서를 아느냐? 4성7음에 자모(字母)가 몇 개 있느냐?”

여기서의 4성은 음의 높낮이를 나타내는 평성(平聲)·상성(上聲)·거성(去聲)·입성(入聲)을 지칭하는 말이다. 4성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것이 현대한국어에는 없고 중국어에만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중국어의 4성 시스템은 조선의 4성과는 매우 다르다. 현대중국어 표준말에선 전통적 ‘ㄱ·ㄷ·ㅂ’ 종성의 ‘입성’이 완전히 사라졌다. 그에 비해, 세종 때의 4성 체계는 큰 틀에선 지금 우리말에서도 유지되고 있다. 단지, 사람들은 우리말 4성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발음하고 있을 뿐이다.

평성은 거성에 비해 낮은 소리다. 상성은 ‘훈민정음 언해본’에서의 설명처럼, 처음에는 낮고 나중에는 ‘↗’ 식으로 높아지는 소리다. 현대중국어 보통화의 2성이 우리말소리 상성과 유사하다. 거성은 4성 중에서 가장 높은 소리다. 입성은 종성 받침이 ‘ㄱ·ㄷ(→ㄹ)·ㅂ’으로 끝나는 촉급한 소리를 말한다. ㅋ은 종성으로 쓰일 땐 ㄱ 소리로 변하고, ㅅ·ㅈ·ㅊ은 ‘ㄷ’으로 변하며, ㅍ은 ㅂ으로 변하기 때문에, 받침 ‘ㄱ, ㅅ·ㅈ·ㅊ, ㅍ’ 또한 입성이다.

거성(去聲)의 ‘去’자를 완전하게 알고 있으면 높은 소리 거성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去(거)’는 얼핏 볼 때 ‘土(토)’와 ‘厶(사)’로 이루어진 글자 같지만 그렇지 않다. 갑골문과 금문에서의 ‘去’는 ‘大(대)’와 ‘口(구)’로 이루어져 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자형이 변하였는데, ‘大’가 ‘土’로, 사각형의 ‘口’가 삼각형의 ‘厶’처럼 변했다. 중요한 점은 ‘去(거)’에서의 ‘口(구)’는 ‘입’이 아니라 ‘말≒소리’를 뜻한다는 것이다. ‘大’는 ‘크다’에서 나아가 ‘높다’의 뜻도 나타내니, 거성의 ‘去(거)’는 ‘높은(大) 소리(口)’를 의미한다.

우리말의 평상거입 소리에 대해 가장 잘 감을 잡을 수 있는 예는 예전 사극에 자주 나오는 “성은이 망극하오이다”의 ‘성은망극(聖恩罔極)’이다. 맨 앞의 ‘성(聖)’은 소리가 높은 거성이고, 그 뒤의 ‘은(恩)’은 그보다 낮은 보통의 평성이다. ‘망(罔)’은 소리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상성이며, ‘극(極)’은 받침이 ‘ㄱ·ㄷ·ㅂ’ 중 ‘ㄱ’으로 끝나는 빠른 입성이다.

평상거입 4성에 대해 소개하는 두 번째 예의 어구는 ‘평상거입(平上去入)’ 그 자체이다. 순서 또한 그대로 ‘평(平)’은 평범한 평성이요, ‘상(上)’은 문자 그대로 위로 올라가는 상성, ‘거(去)’는 가장 높은 소리, ‘입(入)’은 종성이 ‘ㄱ·ㄷ·ㅂ’ 중 ‘ㅂ’으로 끝나는 입성이다.

2002 월드컵 때의 함성을 다시 외쳐보자. ‘대한민국’ 또한 비록 ‘상성’은 빠졌지만 4성을 공부하는데 좋은 예이다. ‘대(大)’는 ‘한(韓)’과 ‘민(民)’에 비해 높이 발음하니 거성이요, ‘한’과 ‘민’은 ‘대’ 보다는 낮으니 평성이다. ‘국’은 받침이 ‘ㄱ’으로 끝나는 입성이다. 옛적 상성은 아래에서 위로 음을 올릴 때 속도를 빨리했지만, 점차 늦어지게 된 관계로 현대한국어에서는 장음으로 많이 변했다. 2019년 7월6일자 <훈민정음의 ㅥㆀ은 ㄲㄸㅃㅉㅆㆅ처럼 긴소리> 편 등에서 밝힌 것처럼, 훈민정음에서는 ㄲㄸㅃ과 같은 쌍자음=쌍초성이 장음 표시임은 물론이다.

<사진>에서 보듯, 세종은 어제훈민정음 편에서 입성을 설명할 때, “점을 더하는 것은 (평·상·거성과) 매한가지로되, 촉급하니라”고 하였다. 입성 글자인 ‘입(入)’의 왼쪽에 거성 ‘커(去)’처럼 한 점을 찍은 까닭은 무엇일까? 일정치 않은 토속어 입성과는 달리 우리말 한자어 입성의 경우엔 음 높이가 거성처럼 높기 때문이다. 입성의 한자음은 거성과 음 높이가 같되, 촉급한 ‘ㄱ·ㅂ·ㄹ(←ㅭ←ㄷ)’ 받침으로 끝나는 것이 특징이다.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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