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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코로나 뚫고 오는 '피아노 검투사' 리시차 "위기속 희망 전하고파"

등록 2020.03.18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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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서 내한공연

[서울=뉴시스] 발렌티나 리시차. (사진 = 오푸스 제공) 2020.03.17.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발렌티나 리시차. (사진 = 오푸스 제공) 2020.03.17.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다가오는 콘서트로 인해 매우 흥분된 상황이에요. 한국이 치명적인 바이러스와의 어려운 싸움에서 이기고 있다는 소식을 매일 뉴스로 접하면서 기뻐하고 있어요. 사실 한국이 전염병으로 심각하다는 소식에 매우 걱정했지만, 긍정적인 뉴스가 많아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 태생의 피아니스트 발렌티나 리시차는 최근 한국 클래식업계에서 가장 뜨거운 인물이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으로 각종 내한공연이 모두 취소되는 상황속 '용감한 행보'여서 더욱 주목받고 있다.

코로나도 뚫고 오는 리시차의 내한공연은 2년 만이다. 오는 22일 오후 5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리사이틀 '격정과 환희'를 펼친다.

'피아노 검투사', '건반위의 마녀'로 불리는 리시차의 내한공연에 대해 국내 클래식 팬들은 "과감한 결정"이라며 환영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리시차는 공연 전날인 21일 오전 입국, 리허설을 한다.

리시차는 뉴시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이 어려운 시기에 한국과 한국 국민이 보여준 단련됨과 헌신은 저희 모두에게 또 다른 감동과 영감을 줬다"고 했다.

리시차는 "이 전염병은 모든 사람, 모든 나라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영국, 독일, 이탈리아, 한국, 미국 등 제가 연주하는 곳을 중심으로 감염이 진행되는 것을 보고 매우 가슴이 아팠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이번 달에 예정한 공연이 대거 취소됐다. 하지만 한국에 대한 믿음이 컸고, 팬들과 가족 모두 이 연주 여행에 대해 매우 응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에도 마니아층을 보유 중인 리시차는 2013년 첫 내한공연 이후 꾸준히 한국을 찾아오고 있다.

"올 때마다 한국의 여러분들이 너무나도 환영해주고 따뜻하게 대해줍니다. 불꽃놀이처럼 따뜻하고 열정적인 수준의 (예술적) 감성을 갖고 반응해줌을 매번 느꼈어요. 항상 감사했죠."

보통 생명과 직결된 이슈가 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문화 예술을 멀리하는 경향이 있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이럴 때 예술이 존재 가치를 증명할 수도 있을 법하다.

이런 위기 속에서 음악, 나아가 예술의 역할은 무엇일까를 묻자,리시차는 전쟁 지역에서 사람들을 위해 연주한 경험을 떠올렸다.

"어떤 이들은 빵이 충분하지 않을 때의 예술은 쓸모가 없다 생각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게 그 연주는 음악가로서 사람들에게 선사할 수 있는 건 '희망'이었습니다. 저는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에게 연예인이 아닌 음악가로서 영혼을 위한 의사라고 생각합니다. 전쟁 지역에서 연주회는 그들이 저를 정말로 필요로 함을 느꼈고, 더불어 저는 제가 인류를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리시차는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서 태어나 네 살에 독주회를 열었다. 키예프음악원 시절 만난 남편 알렉세이 쿠즈네초프와 함께 듀오 콩쿠르 '머레이 드라노프 투 피아노 콩쿠르'에서 1등을 차지한 뒤 이름을 날렸고 이후 미국으로 망명했다. 카네기홀, 애버리 피셔 홀 등에서 공연했고 로테르담 필하모닉, 시카고 심포니 등과 협연했다.

[서울=뉴시스] 발렌티나 리시차. (사진 = Gilbert Francois 제공) 2020.03.17.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발렌티나 리시차. (사진 = Gilbert Francois 제공) 2020.03.17. [email protected]

특히 화려한 미모의 리시차는 파괴적인 힘과 무서운 속도의 난곡 연주로 '피아노 검투사' 등 숱한 별칭을 달고 다닌다.

리시차는 이런 별명을 몰랐다고 했다. 영국 언론들은 자신에 대해 '유튜브 센세이션'이라고 부르는데 이쪽보다 훨씬 낫다고 만족스러워했다. 영국 별명은 런던 로열 앨버트 홀에서 데뷔를 위해 붙여진 것으로 자신이 좋아하는 별명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센세이션'은 '첨벙'하고 매우 빨리 사라지는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오랜 세월 동안 열심히 일하고 공연을 한 후에 '센세이션'이라고 불릴 수는 없지 않을까요?"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검투사'라는 수식에 대해서는 다소 '군국주의적'(militaristic)이라고 여겼다. 자신은 음악과 싸우거나 기술적인 구절과 싸우기 위해 무대에 서지 않는다며 "저는 그저 음악을 즐기고 다른 사람들과 즐거움을 나누기 위해 그곳에 있다"고 강조했다.

리시차는 이번 공연에서 올해 베토벤 탄생 250주년을 맞아 그의 피아노 소나타 중 전시대에 걸친 초기, 중기, 후기의 대표적인 곡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했다.

셰익스피어의 '폭풍'에서 영감을 받아 베토벤이 작곡한 피아나 소나타 '폭풍'으로 문을 연다. 이어 연주할 '열정' 소나타는 베토벤 소나타 중에서도 어려운 테크닉의 곡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마지막 곡인 '함머클라비어'는 소나타를 교향곡에 필적하는 규모로 확장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베토벤이 당신에게 어떤 의미냐고 묻자  "제게 '클래식'의 정의는 패션(fashion)과 같다"는 답이 먼저 돌아왔다.

"'이건 정말 70년대 스타일이구나'라고 소리치는 것들이 있는 반면 '이건 영원히 입을 수 있겠다!'고 싶은 클래식한 옷들도 있죠.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250년 후에도 베토벤이 곡에 녹여낸 것과 같은 감정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나요?"라며 이야기를 이었다.

"비록 우리가 그에게 끔찍한 재앙이었던 청각상실-난청-을 이겨냈다는 그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알지 못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그가 느끼고 표현했던 것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를 우리의 삶과 연관시킬 수 있습니다. - 사랑과 미움, 우울함, 그리고 완전한 행복- 그의 동시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모든 감정 범위 말입니다."

리시차는 클래식계서는 원조 유튜브 스타로 통한다. 자신의 화려한 연주를 담은 영상을 유튜브에 올려 2010년대 초반부터 많은 사람에게 알려졌다. 최근 클래식 업계에서는 유튜브 활용도가 더 많아졌다. 특히 최근 코로나 19 같은 상황에서 유튜브 등을 통한 온라인 중계가 각광을 받고 있다.

클래식 같은 고전적인 장르에서 IT 등 신기술의 활용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저는 유튜브(뿐만 아니라 다른 스트리밍 음악 서비스도)가 세계 사람들이 서로 가까워짐을 느끼는 데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슬프게도 매우 아름다운 음악 공연을 즐기는 것이 소수의 특권이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향은 음악이 새로운 청취자들에게, 다양한 매체로 다가가는 기회가 됐습니다."

[서울=뉴시스] 발렌티나 리시차. (사진 = alexei kuznetsoff 제공) 2020.03.12. realpaper7@newsis.com

[서울=뉴시스] 발렌티나 리시차. (사진 = alexei kuznetsoff 제공) 2020.03.12. [email protected]

유튜브뿐만 아니라 스포티파이, 애플 아이튠즈 등 스트리밍과 기타 유사 서비스는 음악 감상의 혁명을 가져오는 데 도움이 됐고 특히 유튜브는 듣기와 시각적 정보를 결합해 다양한 접근을 가능케 했다는 판단이다.

"곧 5G와 가상현실(VR)과 같은 새로운 기술 발달로, 불과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음악가를 우리집 거실로 '초대'할 수 있다고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매우 낙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러시아 모스크바에 거주하고 있는 리시차는 한국 방문 이후에 14일 자가 격리된다. 이런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내한공연을 하게 됐는데 "14일 동안 집에만 있는 것은 본인에게 축복이 될 수도 있다"며 기다리고 있다는 의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전곡(32곡) 녹음 프로젝트에 대한 집중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격리 기간에 베토벤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것이다.

"녹음이 점점 다가오고 있어요. 심지어 그날이 얼마 남지 않았죠. 음악가에게 베토벤 녹음이란 에베레스트 산을 등반하는 것과 버금가는 일입니다. 저는 이번에 26번과 31번(이전에 배운 것 둘 다) 그리고 28번과 32번 새것을 녹음해야 하죠."

 리시차는 지금까지 이 두 곡을 다루는 것을 미루고 있었다고 했다. 연주하기 싫어서라기보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기다리는 것과 같은 마음이라고 비유했다.

"일단 소나타에 발을 담그면 멈추기가 매우 어려워요. 그래서 저는 소나타에 온전히 100%를 바칠 수 있는 자유시간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했습니다. 마침내 제가 서울에서 돌아온 후에 일어날 일입니다. 비록 미국 연주가 취소됐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저는 세상에서 가장 운이 좋은 사람인 것 같기도 합니다."

리시차의 긍정 에너지가 한국에도 전파되기를. 그의 뜨거운 열정과 연주로 전염병이 빨리 종식되기를. 그 희망의 연주회가 기다려진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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