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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듣다]동업자인 줄 알았는데 직원 취급..."모르면 휘둘린다"

등록 2020.03.19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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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 개발 업체에서 근무하다 직접 장비 제작 창업

이창훈 대표는 영업-친구는 제작 맡는 방식 동업

"나는 동업자라고 생각했는데 동업자 친구는 직원으로 취급"

[서울=뉴시스] 나노세라텍 이창훈 대표는 18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정말 획기적인 아이템이어서 정부 지원 등을 받을수 있는게 아니라면 사업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한다"라고 조언했다. (제공=나노세라텍)

[서울=뉴시스] 나노세라텍 이창훈 대표는 18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정말 획기적인 아이템이어서 정부 지원 등을 받을수 있는게 아니라면 사업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한다"라고 조언했다. (제공=나노세라텍)

[서울=뉴시스] 표주연 기자 = "장비 제작에 너무 모른 채로 동업자 친구에게 의지만 했다. 창업하는 대표라면 자신의 전공분야가 아니라도 조금씩은 알아야 한다."

이창훈(53) 나노세라텍 대표는 1994년 소재 개발 업체에서 영업직을 시작했다. 부품을 수입해 판매하는 업무였다. 10년 정도 근무를 하다보니 소위 '권태기'가 왔다. 수입을 해서 물건을 파는 일만 계속하다보니 택배기사와 다를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회사에 수입하는 부품의 자체개발을 제안했다. 그러나 회사는 '무역상' 정도의 역할에 만족했다. 자체 개발을 하려면 상당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이유로 제안을 거절했다. 이 때 이 대표는 '이 회사에서는 내 미래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이 대표는 2003년 회사에서 퇴사해 장비설계를 하는 친구와 함께 사업을 시작했다. 이 대표는 영업, 친구는 제작을 맡았다. 동업자 친구는 장비제작 관련 별도 사업체를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동업자 친구가 만든 장비를 이 대표가 팔고, 수익배분은 원가를 뺀 수익에서 5대 5로 나누는 방식이었다. 사업은 연 3억~4억원 정도 매출을 찍으며 일단 순항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동업자 친구는 이 대표에게 '제조 원가'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았다. 애초에 원가를 뺀 수익에서 절반씩 수익을 나누기로 했는데, 친구가 원가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으니 답답했다.

동업자 친구가 제작 장비를 손에 쥐고 있었기 때문에 대화와 협상에서 우위를 가지고 있었던게 거듭 문제가 됐다. 심지어 그 친구는 자신이 별도로 운영하는 다른 장비 제작에 일손이 부족하면 이 대표를 불러 조립을 시키기 일쑤였다. 이에 대해 이 대표는 "나는 동업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친구는 직원이라고 생각했던거 같다"고 돌아봤다.

이 와중에 거래업체 사장이 야반도주를 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계약금 50%만 받고 나머지 50%는 못받은 상태였는데 3000만원을 주지 않은 채 업체사장이 잠적했다. 결국 이대표는 개인 빚을 내 3000만원을 내줬다.

그런데 더 문제는 따로 있었다. 이 친구는 원가에 자신이 별로로 운영하는 업체의 직원 5명의 6개월 인건비를 원가에 포함시켰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 대표는 협상주도권을 쥔 친구에게 별 다른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결국 이 대표는 이 친구와 결별하고 캐드 설계를 독학으로 공부해 사업을 이어갔다. 그래도 친구와 사업을 하면서 알게 된 장비 제작 관련 지식과 경험이 큰 힘이 됐다. 동업자 친구가 불러서 장비 조립을 시킨게 경험적으로는 도움이 된 것이다. 그런데 공부를 하고 직접 제작을 하다보나 자신이 몰랐던 공정이 수두룩 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스스로 장비를 만들어 C모직회사에 장비를 납품을 했다. 약 3개월 후 장비에서 기이한 소리가 났다. 업체가 불러 확인한 결과, 진동 베어링이 축을 깍아먹고 있었다. 당시 이 대표는 베어링 축과 열처리가 뭔지도 몰랐다.

[서울=뉴시스] 나노세라텍 이창훈 대표는 18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장비 제작에 너무 모른 채로 동업자 친구에게 너무 의지했다. 창업하는 대표라면 자신의 전공분야가 아니라도 조금씩은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제공=나노세라텍)

[서울=뉴시스] 나노세라텍 이창훈 대표는 18일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장비 제작에 너무 모른 채로 동업자 친구에게 너무 의지했다. 창업하는 대표라면 자신의 전공분야가 아니라도 조금씩은 알아야 한다"라고 말했다. (제공=나노세라텍)

1년 안에는 무상 AS를 해줘야하는 탓에 적자가 쌓이기 시작했다. 사무실 임대료도 못낼 정도였다. 덕소에 있던 아파트를 팔아 경기 광주로 이사를 했다. 대리운전까지 했다. 결국 이 사업체는 1억5000여만원 빚만 남긴 채 폐업했다.

이 대표는 "대표라면 모든걸 알아야한다는걸 배웠다"며 "제조에 대해서도 알아야하고, 영업도 알아야하고, 재무 등도 알아야한다"고 말했다.

이 대표에게 '대표도 사람인데 모든 것을 모두 알 수는 없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완전히 알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데 조금씩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며 "대표가 전혀 모르면 (의지하거나 맡긴 사람이) 잘못됐을 경우 대처가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제작에 대해 너무 몰라 동업자 친구에게 완전히 의지했고, 사실상 직원 취급을 받았던 경험이 준 교훈이었다.

이 대표는 "대표가 아예 모르면 그 직원에게 휘둘리게 된다"며 "포션으로 따지면 7:3에서 6:4정도로 자기가 전공하지 않은 분야를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후 이 대표는 2015년 재창업 기술개발사업으로 정부에서 1억원의 지원을 받아 재사업을 벌이고 있다. 전자부품 일부는 니켈로 이뤄져 있고, 이를 미세하게 나노 사이즈로 분쇄하는 소재 분석 장비를 개발해 판매하고 있다. 2017년부터 본격 판매를 시작했다. 대부분 실험실에서는 외국 장비를 쓰는데다, 국내 장비는 검증이 안됐다는 이유로 아직까지 고전중이다. 이 대표가 가장 많이 듣는 소리는 "독일산보다 성능이 좋다고 하는데, 입증할 수 있는 인증서 있느냐"다.

초보창업자에게 조언을 부탁하자 이 대표는 '신용' 이야기를 꺼냈다. 이 대표는 "돈을 처음부터 빌려서 하면 안 된다"며 "초기 1년은 수익이 아예 없다고 생각하고 정부의 지원 등을 잘 알아보라"고 조언했다. 이어 "정부 지원을 받더라도 3년이 지나면 지원이 모두 끊긴다. 그 3년 이후가 가장 힘들다"고 말했다. 막 자금이 더 필요할 시기인데 초기 창업자금에 대한 원리금 상환이 돌아오면서 돈을 벌어도 빚을 갚는데 써야하는 경우가 생긴다.

이 대표는 "정말 획기적인 아이템이어서 정부 지원 등을 받을 수 있는게 아니라면 사업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며 "개인 빚을 내서 사업을 시작했을 경우에는 3~5년 뒤에 찾아오는 '죽음의 계곡' 시기를 넘기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조언했다.

※'실패를 듣다'=성공에 이르기까지 힘들었던 수많은 실패의 고백을 털어놓는 것이다. 그냥 실패가 아니라 값진 실패, 유의미한 실패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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