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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조주빈에게…"넌 박사도 악마도 아니다"

등록 2020.03.27 1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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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조주빈에게…"넌 박사도 악마도 아니다"

[서울=뉴시스] 조인우 기자 = "5분 뒤에 나옵니다!"

지난 25일 오전 7시55분. 서울 종로경찰서에는 분주한 가운데 긴장감이 감돌았다. 미성년자 등을 협박해 성착취 동영상을 찍은 뒤 이를 텔레그램에 유포한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25)의 얼굴이 공개된 날이다. 오전 8시 정각. 조주빈이 경찰서 정문을 통해 모습을 드러내자 사방에서 플래쉬가 터지기 시작했다.

조주빈은 한 줌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고개를 숙이기는커녕(자해를 시도한 것이 자승자박이 돼 목보호대를 차고 있어 숙일 수도 없었다) 연출한 듯한 초연한 표정을 지으며 허공의 한 지점을 바라보기만 했다.

조주빈은 끝까지 '악마'인 자신에 취해있는 듯 했다. 그의 머리 속에서 자신은 언론 등 미디어에서 '피도 눈물도 없는 악의 정수'로 묘사된 멋진 배우로 미화되고 있었을까. 조주빈은 이날 포토라인에서 이렇게 말했다.

"멈출 수 없었던 악마의 삶을 멈춰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경찰 관계자는 조주빈을 두고 "허풍이 세다"고 표현했다. 성착취 영상물을 유포한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유명인과의 거짓 친분을 수시로 과시하고, 하지 않은 일도 자신이 했다고 떠벌리는 등의 행적이 발견됐기 때문이다. 닉네임을 '박사'로 짓고 박사님 대접을 받으려 한 것부터 열등감과 콤플렉스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조주빈에게 '인생의 실전'이라는 말을 경험하게 해 줄 때가 됐다. 당신은 악마도 뭣도 아니고, 남의 약점을 쥐고 흔드는 치사한 인간,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한 욕구를 가상 세계에서 허풍이나 떨면서 풀었던 시쳇말로 '찌질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역할은 수사기관과 법원이 맡았다.

다만 그들을 온전히 믿을 수는 없는 분위기다. 그동안 성범죄, 특히 디지털 성범죄가 얼마나 가볍게 다뤄졌는지, 가해자의 나이와 성장환경·허울 뿐인 반성이 얼마나 사려깊게 고려됐는지 국민은 알고 있기 때문이다. 'n번방' 운영자 중 하나로 알려진 '와치맨'에게 검찰이 징역 3년6개월을 구형한 것도 최근의 일이다.

이 대목에서 SNS를 통해 확산 중인 해시태그가 인상적이다. '#N번방은_판결을_먹고_자랐다.' n번방 사건이 있기까지 성범죄에 대한 수많은 무책임한 판결이 있었다는 의미다.

조주빈을 비롯해 다른 n번방 가담자들에 대한 수사 결과와 판결은 향후 수십년 간 또 다른 성범죄의 근거가 될 것이다. 이번에도 가벼운 형으로 '돌아온 박사'나 제2·3의 조주빈에게 먹이를 줄 것인가. 여성계를 중심으로 한 국민들이 수사기관과 법원을 향해 매서운 눈을 치뜨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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