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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고서 목판본의 '판각자 실명제' 아시나요?

등록 2020.03.31 09:3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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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주 전 중원대 교수, 판심 흑어미 한자 공개

목판본 판각자 성·이름 흑어미에 새겨 넣은 듯

흑어미에 새긴 한자와 한글.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仁, 尹, 令, 견

흑어미에 새긴 한자와 한글. 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仁, 尹, 令, 견


[괴산=뉴시스] 강신욱 기자 = '실명제'라고 하면 1993년 8월 전격 시행한 대통령 긴급재정경제명령 16호 '금융실명제'를 우선 떠올리지만, 이 밖에도 정책실명제, 부동산실명제, 공사실명제, 인터넷실명제, 기사실명제 등 다양하다.

 조선시대에도 실명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그러나 그리 많지 않다.

조선시대 성을 쌓을 때 축성 구간별로 부역을 담당한 현과 군 책임자의 이름을 주춧돌에 새겼다. 일종의 공사실명제였다.

이와 함께 고서 제작에도 실명제가 더러 있었다.목판본에 '판각자 실명제'를 적용한 예다.

이상주(67) 전 중원대 한국어교육문화학과 교수가 31일 처음 공개한 '서전대전(書傳大全)'과 '서전대전언해(書傳大全諺解)' 두 권의 고서에서 찾을 수 있다.

두 고서의 판심(版心) 흑어미(黑魚尾)에는 한자와 문양, 기호를 음각한 사실을 이 교수가 확인했다.판심은 한문고서를 인쇄할 때 면 중심 부분이다. 이 부분을 경계로 판이 반으로 접혀 책장의 앞뒤 쪽을 이룬다.어미는 이 판심의 위쪽과 아래쪽에 새긴 물고기 꼬리 모양이다. 이 중간에 책이름과 권차(卷次), 면수(장차)를 새긴다.

어미는 흰 바탕의 백어미, 검은 바탕의 흑어미, 꽃무늬가 들어간 화문(花紋)어미 등으로 나뉜다.

이 교수가 공개한 두 고서에서 눈길을 끄는 대목이 흑어미 안에 새긴 한자다.
이상주 전 중원대 한국어교육문화학과 교수. 오른쪽은 '서전대전언해' 목판 구조

이상주 전 중원대 한국어교육문화학과 교수. 오른쪽은 '서전대전언해' 목판 구조


1865년(조선 고종2) 영변부(현 북한 평북 영변군)에서 간행한 '서전대전' 목판본 권10 23장과 24장 판심 위아래와 '서전대전언해' 권2 69장과 70장에는 '仁(인)'이란 한자가 위아래 흑어미에 새겨졌다.

이 교수는 "두 책은 간행연도와 판각한 사람이 같다고 보아야 한다"며 "인(仁)을 약칭으로 하는 각수(刻手)가 책 글자를 새기는 업무를 맡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밝혔다.

서전대전 권10 49장과 50장, 서전대전언해 권2 55장과 56장에는 '戒(계)', 서전대전 권7 31장에는 한글 '견'이 보이기도 한다.

이 밖에도 '尹(윤)', '令(령)', '双(쌍)', '湜(식)', '卞(변)' 등의 한자가 나온다.

이 교수는 "어미는 공간이 작아 거기에 성이나 이름 중 한 글자를 새긴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두 고서의 어미에는 일엽(一葉·화문 수 1개)과 이엽 등 다양한 화문어미 문양도 새겨졌다.

이렇게 판심 흑어미에 한자와 문양을 새겨 넣은 이유에 대해 이 교수는 "책장을 넘길 때마다 달라지는 문양을 보면서 잠시 머리를 식히게 하려는 뜻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책장을 넘기면서 그 책을 만들기 위해 나무판에 글씨를 새긴 사람들의 노고를 생각하며 감사의 마음을 가지도록 한 것이 아닌가 싶다"고 짚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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