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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술의 알콜로드]배꽃 필 무렵, 떠먹는 막걸리 어때요?

등록 2020.04.03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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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없이 빚은 막걸리 진액, 이화주

요거트처럼 부드러운 질감 인상적

디저트로 즐기는 색다른 우리 술

[서울=뉴시스] 물을 섞지 않고 빚은 막걸리 진액, 이화주. 배꽃이 필 무렵인 4월 즈음 술을 빚는다고 해서 이화주라는 이름이 붙었다.

[서울=뉴시스] 물을 섞지 않고 빚은 막걸리 진액, 이화주. 배꽃이 필 무렵인 4월 즈음 술을 빚는다고 해서 이화주라는 이름이 붙었다.

[서울=뉴시스] 이예슬 기자 = 요거트 같기도 하고 잼 같기도, 덜 굳은 푸딩 같기도 하다. 우유같이 눈부시게 흰 빛이라기보다는 딱 막걸리처럼 미색에 가깝다. 찻 숟가락으로 표면을 두드려 보니 생각보다 폭신한 질감에 숟가락 머리가 병의 중간까지 푹 들어갔다.

일부러 내용물을 크게 떠 입 안 가득 음미해 봤다. 외형 때문인지 단맛이 강한 요거트나 우유잼 같은 맛이려니 착각했는데, 생각보다 강렬한 막걸리 진액의 맛에 살짝 놀랐다. 알코올 도수가 액체 막걸리보다는 높은 8도로 술 맛이 강했는데, 쌀 고유의 자연스러운 단맛과 적절한 산미가 밸런스를 이뤘다. 홀린 듯이 몇 숟가락을 떠 먹었더니 '이거면 막걸리 한 병 다 먹었다'고 느낄 정도로 농밀한 맛에 알딸딸했다.

독특한 외형에 호기심이 동해 이화주(梨花酒)를 구입했다. '떠 먹는 막걸리'라니, 경험치를 쌓기 위해서라도 지나칠 수 없었다. 특이한 경험을 원하는 젊은 층을 겨냥한 술인가 했는데, 이화주는 의외로 역사가 깊다. 고려 시대 경기체가 중 유명한 '한림별곡'에도 등장했을 정도다. 상류층의 주흥과 풍류를 주제로 한 4장에 황금주, 백자주, 송주, 죽엽주, 오가피주 등과 함께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배꽃이 필 때 빚는 술이라 해서 이화주라는 이름이 붙었다. 4월 이맘 때다. 본격적으로 술을 빚기 전 2월 말 즈음 밑작업인 누룩 준비를 한다. 쌀누룩인 이화곡을 쓴다. 술을 빚을 때 가장 중요한 것을 물로 꼽는 이들도 있는데, 이화주에는 특이하게 물이 거의 들어가지 않는다. 이 때문에 요거트 같은 진액이 되는 것이다.

액체로 된 술이 아니니 가벼워서 조선시대에는 선비들이 과거 시험을 보러 갈 때 지녔다는 얘기도 있다. 여름 별미 간식으로도 취급돼 더운 날에는 찬물이나 얼음을 섞어 먹기도 했단다. 물론 곡식이 없어 굶어죽는 사람이 부지기수였으니, 살만한 양반님네들이나 가능했을 일이다. 물도 섞지 않을 정도의 진한 술이다보니, 식량이 부족할 땐 엄두도 못 냈을 술이다. 이 때문에 명맥이 끊겼다가 최근 술샘, 국순당, 전통주조 예술 등에서 복원해 판매하고 있다.

만드는 과정이 까다롭고 복잡한 술이라고 했다. 막걸리는 흔히 고두밥으로 만드는데, 익반죽한 구멍떡으로 만드는 것도 이화주의 특징이다. 이화주를 만드는 방법을 전통주소믈리에인 조태경 전통주갤러리 부관장에게 들었다.

"일반적으로 우리 탁주는 쌀, 물, 발효제인 누룩으로 만듭니다. 그런데 이화주는 이 중 물이 빠진 쌀과 누룩으로 만드는 것이죠. 막걸리는 쌀을 찐 고두밥으로 만든다면, 이화주는 도너츠처럼 가운데 구멍이 뚤린 구멍떡으로 빚어요. 맵쌀 가루에 따뜻한 물을 넣어 익반죽하고 팔팔 끓는 물에 삶아 떡을 만든 뒤 으스러뜨리는데 이때 이화곡이 들어가요. 3주 가량 띄운 이화국을 곱게 가루를 낸 다음 떡을 으깬 것과 섞어 반죽을 합니다. 물이 거의 없이 건조한 가루를 반죽해야 하니 쉽지 않죠. 손에 물을 적시는 정도로만 오랜 시간 동안 반죽하고 항아리 안쪽 벽면에 호떡처럼 붙여놓으면 됩니다. 반죽을 채우고 2~3일 따뜻하게 발효시킨 다음 서늘한 곳에 한 달 이상 두면 수분과 알코올이 생기면서 이화주가 만들어지죠."

물을 섞지 않으니, 완성된 술의 양이 적을 수밖에 없다. 품도 많이 들고 쌀도 많이 필요한데 양은 적은 귀한 술인 것이다. 조 부관장은 "누룩 양에 따라서도 도수나 당도가 조절이 되지만 기본적으로 물의 양 대비 쌀이 많이 들어가면 당도가 높다는 뜻"이라며 "청주도 안 나오고 요거트 형태로만 결과물이 나오니 고급탁주라고 할 수 있다"고 했다.

이렇게 귀한 술, 어떻게 먹을까? 반주로 곁들이는것보다는 간식으로 이화주 자체만을 떠 먹거나, 디저트처럼 내는 게 잘 어울린다. 커피나 액상 초콜릿을 이화주와 섞어서 후식으로 먹을 수 있다. 과일이나 견과류와 곁들여도 좋다.

조태경 전통주갤러리 부관장은?
▲2015 강릉단오제 대한민국전통주선발대회 장려상 ▲2016 전통주소믈리에경진대회 국가대표부문 금상 ▲前 소믈리에타임즈 전통주부문 기자 ▲前 사단법인 한국전통주연구소 수석강사 ▲現 전통주갤러리 부관장(비상근)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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