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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대기업 '고발 기준점' 작성 나선 이유는 검찰 때문?

등록 2020.04.03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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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 자료 제출 등 기업 집단 고발 지침 작성

같은 법 위반한 카카오 김범수 고발했던 검찰

이해진은 불기소…당시 지침 제작 필요성 느껴

"전속고발권 갈등 진행형…지침이 방패막될 것"

공정위, 대기업 '고발 기준점' 작성 나선 이유는 검찰 때문?


[세종=뉴시스] 김진욱 기자 = 공정거래위원회가 지주사 등 기업 집단과 관련한 고발 지침을 만든다.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지정 자료를 허위로 제출했던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최고투자책임자(GIO)를 고발했지만, 검찰이 불기소(혐의 없음) 처분하면서 홍역을 치른 여파다.

이 지침이 생기면 공정위가 자체 처분하는 경우와 형사 처벌까지 요구하는 경우를 가르는 기준이 명확해진다. 이 GIO와 과거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 처분을 두고 검찰과 갈등을 빚었던 일을 되풀이하지 않아도 될 전망이다.

3일 정부에 따르면 공정위 기업집단국은 기업 집단 고발 지침을 마련하고 있다. 이 지침에서 정하는 고발 대상은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지정 자료 제출 ▲지주사 설립 전환 신고 ▲지주사 사업 내용 보고 ▲주식 소유·채무 보증 현황 신고 등이다. 지정 자료 제출 등과 관련해 법을 위반한 기업의 고의성, 자진 시정 여부 등을 따져 형사 처벌이 필요하다고 판단돼 공정위가 고발 조처하는 경우의 기준을 규정하는 것이다.

기업 집단 고발 지침의 고발 대상인 지정 자료 제출 등은 공정거래법(독점 규제 및 공정 거래에 관한 법률) 제67~68조 내용이다. 공정위는 지난 2015년 8월 공정거래법 고발 지침을 만들었지만, 당시에는 시장 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 등에 집중해 지정 자료 제출 등은 포함하지 않았다. 기업 집단 고발 지침은 기존 공정거래법 고발 지침과 달리 고발 기준을 점수화해 정하지 않을 예정이다.


[서울=뉴시스] 박영태 기자 =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 2018.10.26.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영태 기자 = 이해진 네이버 글로벌투자책임자(GIO). 2018.10.26. [email protected]


기업 집단 고발 지침 작성 배경에는 이 GIO가 있다. 네이버는 지난 2015년 3월 공정위에 제출한 지정 자료에 본인이 지분 100%를 보유한 '지음' 등 20개 계열사를 누락했다. 당시 누락된 계열사 규모는 매우 작아 네이버가 규제 대상 기준에 포함되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네이버는 "계열사 누락으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없다. 실무 담당자의 단순 실수"라고 해명했다.

그런데도 공정위는 네이버의 지정 자료 허위 제출에 고의성이 있다고 보고 지난 2월 이 GIO를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검찰은 지난 3월22일 "지정 자료 허위 제출에 대한 이 GIO의 고의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면서 기소하지 않았다. 검찰의 불기소 결정이 알려진 뒤 업계에서는 '공정위가 공정거래법이라는 낡은 잣대로 최신 정보기술(IT) 기업의 발목을 잡는다'는 비판이 나왔다.

이렇게 공정위가 무리하게 고발을 결정한 이면에는 검찰의 '이중 잣대'가 있다는 분석이다. 같은 법 위반 행위를 한 이 GIO·김 의장을 두고 검찰이 다른 태도를 취해서다.

김 의장은 지난 2016년 3월 공정위에 지정 자료를 제출하며 '골프와친구' 등 5개 계열사를 누락했다. 네이버 사례와 마찬가지로 누락된 계열사는 크기가 작아 카카오가 규제 대상에 새롭게 포함되거나 빠지는 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당시 카카오도 "실무를 맡은 직원의 실수"라고 해명했다. 공정위는 2018년 1월 김 의장을 고발 없이 자체 처분(경고)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를 문제 삼고 나섰다. 김 의장의 지정 자료 허위 제출 혐의를 다시 파헤쳐 10개월이 지난 2018년 11월 기소했다. 또 "공정위가 기업을 봐주고 있다"며 해당 업무를 담당했던 기업집단국 등을 압수수색했다.


[서울=뉴시스] 김병문 기자 = 지정 자료 허위 제출 혐의를 받고 있는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19.09.25. dadazon@newsis.com

[서울=뉴시스] 김병문 기자 = 지정 자료 허위 제출 혐의를 받고 있는 김범수 카카오 이사회 의장이 2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항소심 1차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2019.09.25. [email protected]


익명을 요구한 한 법조계 관계자는 "과거 김 의장을 고발하지 않았다가 검찰로부터 압수수색까지 당했던 공정위는 같은 사안(이 GIO의 지정 자료 허위 제출 혐의)을 심의하면서 '이번에는 고발해 형사 처벌 여부 결정을 검찰에 맡겨야겠다'고 판단한 것"이라면서 "공정위로서는 이 GIO를 무리하게 고발했다고 비판을 받아 억울했을 것"이라고 짚었다.

특히 검찰이 김 의장 건으로 공정위를 압수수색했던 배경에는 전속고발권(가격 담합 등 일부 공정거래법 위반 행위는 공정위가 고발했을 때만 검찰이 수사할 수 있도록 정해둔 제도)이 있다. 이를 폐지해 기업 고발권을 가져오려는 검찰이 '공정위 길들이기'를 위해 김 의장 사건을 이용했다는 것이 법조계의 해석이다.

기업 집단 고발 지침을 만들면 공정위 자체 처분을 검찰이 문제 삼는 일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게 된다. 만약 김 의장 사건 때 기업 집단 고발 지침이 있었더라면 '카카오를 봐준 것이 아니라 지침에서 정한 기준에 따라 고발하지 않은 것'이라고 검찰에 맞설 수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전속고발권 관련 교통정리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김 의장과 이 GIO 사건을 겪으며 공정위는 대책을 마련해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면서 "기업 집단 고발 지침은 공정위에 일종의 '방패막'이 돼줄 수 있다"고 전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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