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를 듣다]공장부터 열고 시장조사...'매출 0'로 문 닫아
박범준 대표, 2001년 곡물가공업 창업
오랜 두부공장 운영 경험에 충분한 시장조사 거치지 않아
공장 개업 후, 시장조사서 "충격...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니었다"
[서울=뉴시스] 박범준 한국미생물비료 대표.
박범준(57) 한국미생물비료 대표는 오랫동안 두부공장을 운영했다. 그러던 중 2000년께 오랜 거래처였던 대성상회로부터 곡물가공업을 해보는게 어떠냐는 제안을 받았다. 대성상회는 곡물 등을 도매유통하는 회사다. 박 대표가 곡물을 가공해 납품하면 전국에 판매하는 것은 책임지겠다는 이야기로 설득했다.
수차례 걸쳐 제의를 받았던 박 대표는 결국 2001년 곡물가공업을 시작했다. 여가러지 곡물로 미숫가루를 만들 듯 빻거나, 시금치, 당근 등을 곱게 갈아 천연 미용팩 재료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사업이었다.
오래 두부공장을 운영했기 때문에 큰 부담은 없었다. 두부 제조는 곡물가공업 분야에서 꽤 난이도가 높은 사업이다. 때문에 곡물 빻는 일 정도는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 대표는 "두부도 만드는데 곡물깍는게 일이냐. 쉽게 생각했다"고 돌아봤다. 박 대표는 이 때를 '여우에 홀린 것처럼'이라고 표현했다.
박 대표는 두부공장을 정리하고 대성식품이라는 곡물가공 업체를 창업했다. 대성상회와 수익을 5:5로 나누는 방식이었다. 전국적인 유통망을 가진 대성상회가 동업자이다 보니 판로는 걱정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장장 1명과 보조 1명, 마케팅 직원 등 총 7명으로 시작했다. 투자금으로 1억원 정도을 쏟았다. 곡물을 빻는 기계는 1500만원 짜리를 중고로 들여와 300만~400만원 정도에 해결했다. 그러나 '가루를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박 대표는 이 일을 쉽게 생각한 댓가를 톡톡히 치렀다.
우선 남양주에 창고를 공장으로 사용하기 위해 매입했다. 그런데 창고를 식품공장으로 등록하려다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돈 2500만~3000만원이 깨졌다. 공장등록을 하려면 전력이 일정기준 이상 들어와야하는데, 전력을 끌어오는게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공장등록을 할 때 수질과 폐수 관련한 부대비용도 들어갔다. 공장등록 서류를 구비하는데만 4개월이 걸렸고 돈은 3000만원 가까이 더 지출됐다.
더 문제는 '품질'이었다. 쉽게 봤던 곡물을 빻는 일이 쉽지 않았다. 샘플로 콩을 빻아 만들었고 이를 대성상회에 전달했다. 돌아온 대답은 "이대로는 유통이 어렵다"는 반응이다. 품질이 낙제점이었던 것이다. 아차 싶었던 박 대표는 그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박 대표는 "난 가공기계만 있으면 되는 줄 알았다"며 "콩, 쌀 모두 그냥 빻으면 되는 줄 알았다"고 회상했다
이후 경쟁공장들을 견학하고, 곡물 분쇄 분말기를 15~20대 들여놨다. 곡물의 이물질을 골라내는 석발기도 필수였다. 게다가 곡물의 성질에 따라서 써야하는 분쇄기가 달랐다. 수분이 많은 곡물을 분쇄하려면 건조기도 갖춰야했다. 그렇지 않으면 곱게 빻아지는게 아니었다. 죽이 돼서 나왔다.
약 6개월 공부하던 박 대표는 "이건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이 사업을 제대로 하려면 설비만 10억원이 들어간다는 것을 너무 늦게 알았다. 박 대표는 "이 사업을 해보자고 제안이 왔을 때 3~6개월 정도라도 준비를 했었더라면 감당이 안될 것이라는 결론을 냈을텐데 너무 쉽게 봤다"고 토로했다.
[서울=뉴시스]
결국 곡물가공업은 매출 0원 상태로 유지가 됐다. 모였던 직원들은 모두 내보내고, 공장 등록을 했던 창고는 경동시장 상인들을 상대로 고추, 참깨, 메주 등을 보관하는 임대업으로 굴렸다. 박 대표는 "함께 일을 도모했던 사람도 다 떠났고, 이걸 업이라고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며 "결국 접자고 할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대성식품은 결국 창업 1년만에 매출 0원을 기록하고 문을 닫았다. 곡물가공으로 벌어들인 수익은 '제로(0)'였다.
박 대표는 이에 대해 "철저한 준비없는 창업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는걸 배웠다"며 "뭐에 홀린 듯 시장조사 조차 하지 않고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경쟁사, 경쟁제품 품질, 가격, 수반되는 기술력 등에 대해 5~10년 경험했던 사람을 미리 만났다면, 나를 말렸을 것 같다. 어떤 기계가 어떻게 들어와야 하고 건조기, 이물질제거기가 있어야 하는 등 설비만 10억원이 들어간다는 걸 알았어야 했다."
이후 박 대표는 농업분야 경영컨설팅 회사에서 잠시 비상근으로 일한 뒤, 현재 회사인 한국미생물비료를 차렸다. 미생물로 농작물이 유충피해를 잡는 연구를 이어가면서 관련 제품을 준비하고 있다. 대성식품이 준 교훈이 있어서인지, 이 사업은 2015년부터 구상해 지금까지 철저하게 준비하고 있다. 충분한 검증이 필수라는 생각에서다.
초보창업자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박 대표는 가장 먼저 "철저한 준비없이 창업은 실패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가치'를 언급했다.
박 대표는 "내가 사업을 통해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지, 왜 이 사업을 하는지 가치를 얘기하는 사람은 거의 못봤다"며 "대부분은 돈을 이야기하는데 돈은 결과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사업의 과정을 중시했으면 좋겠다. 과정이 올바르지 않으면 결과가 좋게 나올 수가 없다"고 조언했다.
※'실패를 듣다'= 수많은 실패의 고백을 담는다. 그냥 실패가 아니라 값진 실패, 유의미한 실패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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