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인터뷰]'리어외전' 리어왕 변신 하성광 "연기는 할수록 무섭다"

등록 2020.04.08 14:30:07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11~19일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

'비극적 리어왕' 아닌 통속적이고 쾌활한 리어왕 재탄생

[서울=뉴시스] 하성광. 2020.04.08. (사진= 극공작소 마방진 제공) realpapr7@newsis.com

[서울=뉴시스] 하성광. 2020.04.08. (사진= 극공작소 마방진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세 딸 중 두 딸에게 배신당한 뒤 폭풍이 휘몰아치는 황야로 쫓겨난 무기력한 '리어왕'은 잊어라.

스타 연출가인 극공작소 마방진의 고선웅 예술감독 표 리어왕은 다르다. 운명에 휘둘리기보다, 자신을 배신한 딸들과 사위를 다 죽이고 스스로 비극적 삶에 당당히 뛰어든다. '고전의 정석'처럼 여겨져 오던 해석을 비튼다.

8년만에 컴백하는 연극 '리어외전' 주인공으로 하성광(50)이 캐스팅된 이유다.

하성광은 지난 2015년 고 연출이 국립극단과 손잡고 초연한 연극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에서 '정영' 역을 맡아 재발견됐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 중 하나를 '오락비극'으로 탈바꿈시킨 '리어외전'에서 리어왕의 해석은 난해할 수 있는데 유연한 하성광이 제격인 셈이다.
 
최근 역삼동 연습실에서 만난 하성광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리어왕과 '리어외전'의 리어왕은 너무 다르다"면서 "둘 사이의 간극을 해결해야 할지, 부셔버려야 할지, 중간지점을 찾아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는 리어는 '나이가 든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고, 감내할 수 없는 고통을 스스로 만들었다. 말로 사랑을 검증하고 확인 받으려고 했다. 비극성이 큰 인물인데 '리어외전'의 리어는 좀 더 통속적이다. 고전이 가지고 있는 묵직함보다는 좀 더 쾌활한 면이 있다."
 
과거 '리어왕' 작품은 하성광에게 연기력의 발판이 됐다. 2006년 서울연극제에서 공연한 극단 76단 '리어왕'에서 장남인 에드거 역을 맡아 연기상을 받은 뒤 힘을 얻었다. 

이번에 리어왕을 맡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리어왕보다 제가 '나이가 어리다'고 생각해서 제 옷이 아니라고 봤거든요. 그런데 고 연출이 대본을 읽어보면 '네가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걸 알게 된다'고 했는데, 이제 무슨 말씀인지 알겠더라고요."

'리어외전'은 비극 속에 통쾌함과 오락적 요소를 가득 담아 연극적 재미를 극대화한 작품이다. 리어왕과 글로스터 두 인물을 중심으로 11명의 주요 인물과 9명의 코러스 등 총 22명이 출연한다. 이들의 파워풀한 움직임과 랩처럼 쏟아지는 속사포 대사, 비극마저 유쾌하게 그려내는 박력 넘치는 무대가 특징이다.

하성광은 "유쾌한 '리어외전'을 보고 부모님, 이웃을 배려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바랐다.

[서울=뉴시스] '리어외전' 연습실. 2020.04.08. (사진= 극공작소 마방진 제공) realpapr7@newsis.com

[서울=뉴시스] '리어외전' 연습실. 2020.04.08. (사진= 극공작소 마방진 제공) [email protected]

하성광은 인생의 절반을 연극과 함께 보내왔다. 데뷔 군대 전역 뒤 제대로 연극을 시작한 건 1995년. 포스터를 붙이는 일을 하며 연극 무대에 오른 그는 박근형 연출이 이끄는 극단 골목길 출신이다.고수희, 박해일, 이봉련 등 충무로를 주름잡고 있는 스타배우들의 산실이다. 박 연출은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존경하는 연극 연출가로 잘 알려져 있다.

하성광은 '기다리면 꽃 핀다'는 말을 연극계에서 증명한 배우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이 변곡점이 된 이후 그를 롤모델로 삼고 묵묵히 연기하는 후배 배우들이 늘어났다. 대학로에서 인기 배우들만 한다는 '퇴근길'도 그에게 있다. 공연을 마치면 팬들이 배우를 기다렸다가 인사를 하는 문화인데, 그의 퇴근길에는 남성 팬들이 많다.

"사인을 해드리고 사진을 같이 찍는 것이 아직도 굉장히 낯설어요. 부담스럽고요. 제 모습을 곱게 봐주셔서 고마운데, 실제 저와 비교될까 걱정이 크거든요. 전보다 더 알려진 만큼 제 연기에 대한 책임감도 생겼고요."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은 올해 70주년을 맞은 국립극단의 대표 레퍼토리로 꼽혀 6월 19일부터 7월26일까지 명동예술극장에서 또 공연이 예정됐다.

고 연출과는 삶과 죽음의 기묘함을 다룬 연극 '인어도시'로 2005년과 2010년 먼저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이 재연하면서 꾸준히 작업을 이어오다, 드디어 고 연출이 이끄는 본진인 마방진까지 입성하기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고 연출님의 작업 방식이 굉장히 유머러스하고 통통 튀어서 따라가기 힘들었어요. '조씨고아, 복수의 씨앗'을 통해 훨씬 더 편안해지고 제 태도도 부드러워졌죠. 마방진과 작업에서는 젊음을 많이 느껴요. 후배들에게 제가 더 많이 배우기도 하고요."

연기에 한해서는 결코 게으른 적이 없다. 조금이라도 늦장을 부리며 본인이 불안해서 못 참는다고 한다. 배우들이 연달아 출연한 이란 극작가 낫심 술리만푸어의 1인극 '하얀 토끼 빨간 토끼'를 통해 처음으로 모노극의 재미도 느꼈다.

[서울=뉴시스] '리어외전' 연습실. 2020.04.08. (사진= 극공작소 마방진 제공) realpapr7@newsis.com

[서울=뉴시스] '리어외전' 연습실. 2020.04.08. (사진= 극공작소 마방진 제공) [email protected]

TV 드라마 출연도 꾸준히 하고 있다. 최근에는 OCN 드라마 '본대로 말하라'에서 극 중 주인공인 차수영(최수영)이 유일하게 마음을 터놓는 부친 '차만석'을 연기하기도 했다.

플랫폼이 다양해지고 채널이 늘어나면서 드라마가 많이 제작되자 대학로 배우들이 대거 이 장르에 진출했다. 연기력이 기반이 되니 러브콜이 이어지는 것이다.

하성광은 "아주 뿌듯하다"고 했다. "제가 젊었을 때 드라마 촬영 현장에 가면 다 낯선 분들이었어요. 이제 분장실에 가면 낯익은 얼굴이 많죠. 대학로가 자양분이 되고 있잖아요. 여전히 연극계가 터부시되고 아직까지 변방이지만, 연극은 '가치 있는 변방'이라고 믿어요."

현재 코로나19로 인해 가뜩이나 침체된 연극계가 더 안타까운 상황에 처해 있다. 하성광은 "불가항력적인 상황이니 더 안타깝다"고 했다. "이런 난국 속에서도 이렇게 꼼지락하고 있는 것은 이 고난한 시간들을 딛고 좀 더 나은 상황이 될 거라 믿는 '긍정적인 마음' 때문"이라고 했다.

"연기는 할수록 무섭다"는 하성광은 코로나19가 잠잠해지고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다면, 고향인 진도에 가고 싶다고 했다.

"늦잠도 원 없이 자고, 나무도 심고 싶어요. 진도는 아직 촌스럽다는 것이 자랑이에요. 옛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죠. 진도가 국악으로 유명하잖아요. 공연도 무료예요. 고향에 가면 공연장에 들어가 맨 뒷자리에 앉아 국악을 듣죠. 시간이 주어지면 고향에서 북춤도 배워보고 싶어요. 이곳에서 야외 연극제를 열게 되면 정말 좋겠죠."

한편 '리어외전'은 오는 11일부터 19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한다. 코로나19 여파로 기존 11회차 공연을 3회 줄여 8회차만 한다. 15일 오후 3시·7시30분, 18일 오후 7시30분 공연은 없다.  특히 500석 규모의 객석을 절반가량만 운영하는 '사회적 거리두기' 관람을 시행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