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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술의 알콜로드]알배기 주꾸미에 한산소곡주...여기가 서천이네

등록 2020.04.17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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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하면 계속 마신다 하여 '앉은뱅이 술'

진한 달콤함에 높은 도수도 못 알아채

1500년 전 백제부터 전해 내려와

[서울=뉴시스] 충남 서천의 한산소곡주와 주꾸미 샤브샤브.

[서울=뉴시스] 충남 서천의 한산소곡주와 주꾸미 샤브샤브.

[서울=뉴시스] 이예슬 기자 = "안 일어나려다 못 잃어나니…". 달콤함이 농축된 진액이 혀를 감싼다. 목을 열어 꿀꺽 하기에는 아까워 오래도록 입 안에서 음미하다 넘겨도 목구멍으로 넘기는 게 아깝다. 맛만 보자는 심정으로 한 잔을 받아들면 어쩔 수 없이 다음 잔을 갈구하게 된다. 그렇게 한 잔, 또 한잔 이어지다보면 자신도 모르게 취한다고 해서 '앉은뱅이 술'이란 별명이 붙었다. 소곡주 맛에 홀려 과거 길에 오른 수 많은 선비들이 주저앉았다느니, 도둑이 물건을 훔치러 들어왔다가 술 맛을 한번 보고는 취해 잡혔다느니 하는 구전이 전해져 내려온다. 충남 서천 한산면의 한산소곡주다.

1500년 백제 왕실의 전통을 간직했다고 알려졌으니, 이 술의 역사가 깨나 길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도 한산소곡주가 언급된다. 백제가 멸망한 후에는 백제 유민들이 나라가 망한 한을 달래기 위해 하얀 소복을 입고 술을 빚었다는 전설도 전해져 내려온다.

마셔보면 이 술이 왜 앉은뱅이술인지 대번에 알게 된다. 여러 양조장의 것이 있지만 내가 마신 우희열 명인의 술은 알코올 도수가 18도나 된다. 흔히 마시는 희석식 소주의 도수가 16~17도 정도이니 그보다 높은 것이다. 그런데도 알코올이 툭 튀지 않기 때문에 독하다는 느낌이 하나도 없다. 응축된 향과 맛이 농밀하게 피어올라와, 술이 아니라 약이려니 싶기도 하다.

지역 특산주를 맛보는 것이니 안주도 그 지역과 관련된 식재료로 골랐다. 4월이 제철인 생물 알배기 주꾸미다. 3월께 서천을 찾으면 동백꽃 주꾸미 축제를 즐길 수 있다. 알이 머리 한 가득 밥알갱이처럼 박혀있는 제철 주꾸미로 샤브샤브를 했다. 생물을 직접 손질해본 적은 처음이라 내장을 손질하는 과정에서 몇 마리는 알을 통째로 놓친 것이 한이다. 역시 봄이 제철인 미나리를 듬뿍 넣어 저녁 한 끼, 봄을 통째로 마셨다. 한산소곡주가 맛이 강한 편이기 때문에, 안주를 페어링할때는 양념을 최소화하고 원재료의 맛을 최대한 살리는 요리가 잘 어울릴 듯 싶다. 다음날엔 샤브샤브를 해 먹고 남은 미나리로 전을 부쳐 소곡주와 함께 했더니, 역시 별미였다.

이번 봄에는 사회적 거리두기를 실천하느라 어쩔 수 없이 집에서 서천을 맛봤다. 현지에서 주꾸미를 먹는 기회는 놓쳤지만 서천은 봄이 아닌 다른 계절에도 여행하기 좋은 고장이다. 나는 특히 갈대밭 흐드러진 늦가을에 방문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때 즈음이면 굴 철이 시작된다. 돌아오는 가을에는 신성리 갈대밭을 구경하고 서천특화시장에서 석화와 굴무침, 박대 등을 잔뜩 사서 한산소곡주를 기울일 수 있길.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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