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족의 무덤일까…신라 때 묻혔던 금동신발이 나왔다
43년 만에 경주 신라 고분서 금동 신발 출토
황남동 120호분에 딸린 120-2호분서 출토돼 왕족 무덤일 가능성
[서울=뉴시스] 경주 황남동 120-2호분의 금동 신발 노출 상태.(사진=문화재청 제공) 2020.5.27 [email protected]
문화재청은 경주시와 함께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의 하나로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을 통해 조사하고 있는 '경주 황남동 120호분'에서 금동 신발과 허리띠 장식용 은판, 각종 말갖춤 장식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고 27일 밝혔다.
경주 대릉원 일원(사적 제512호) 내에 있는 황남동 120호분은 일제강점기에 번호가 부여됐다가 민가 조성 등으로 인해 훼손되면서 고분의 존재조차 확인할 수 없는 상태였던 곳이다. 이에 2018년 5월부터 120호분의 잔존 유무와 범위 등을 파악해 발굴조사가 시작됐다.
특히 지난해 120호분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120호분의 북쪽에 120-1호분, 120호분의 남쪽에 120-2호분이 각각 존재하는 것이 추가로 확인됐다. 이들 무덤은 120호분의 봉분 일부를 파내고 조성돼있는 점을 볼 때 먼저 120호가 조성된 뒤에 추가로 들어선 후대의 무덤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서울=뉴시스] 경주 황남동 120-2호분의 허리띠 장식용 은판 노출 상태.(사진=문화재청 제공) 2020.5.27 [email protected]
120-1호분에서는 쇠솥과 유리구슬, 토기류가 출토됐으며 120-2호분의 매장주체부에서는 대체로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특히 지난 15일 120-2호분에 묻힌 피장자 발치에서 금동 신발(飾履) 한 쌍이 있는 것을 확인했다. 경주의 신라 고분에서 신발이 출토된 것은 1977년 경주 인왕동 고분군 조사 이후 이번이 43년만의 일이다. 경주 황남대총 남분에서도 비슷한 형태의 금동 신발이 출토된 적이 있다.
[서울=뉴시스] 경주 황남동 120-2호분 출토 금동 말갖춤 장식 일괄.(사진=문화재청 제공) 2020.5.27 [email protected]
지금까지 신라 무덤에서 출토된 신발은 실생활에 사용하던 것이 아니라 죽은 이를 장사지내 보내는 장송(葬送) 의례를 위해 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피장자의 다리 부분에서는 허리띠 장식에 사용된 은판(銀板)이, 머리 부분에서는 신발에 달린 것처럼 여러 점의 금동 달개가 겉으로 드러나 있는 점도 확인했다. 앞으로 발굴조사는 이 달개가 머리에 쓰는 관(冠)이나 관 꾸미개(冠飾·관식)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진행될 예정이다.
[서울=뉴시스] 경주 황남동 120호분과 그 주변의 유구 분포 현황.(사진=문화재청 제공) 2020.5.27 [email protected]
조사기관 측은 아직 발굴조사가 초기 단계임에도 금동 신발 등 현재 출토된 유물의 중요성을 감안해 이른 시기에 발굴 현장을 공개했다.
이처럼 중요한 유물들이 120호분에 딸린 120-2호분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에 비춰볼 때 120호분의 주인은 왕족이나 귀족 등 높은 신분의 무덤일 것이라고 조사기관은 추정하고 있다. 120호분의 봉분 규모도 훨씬 큰 만큼 현재까지 출토된 유물보다 위계가 더 높은 유물들이 출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서울=뉴시스] 경주 황남동 120-2호분의 주요 유물 출토 위치.(사진=문화재청 제공) 2020.5.27 [email protected]
김권일 신라문화유산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아직은 금동 신발의 일부만 노출된 상황이지만 금동신발은 경주의 왕족과 비속 등의 무덤에서 현재까지 12켤레 정도 출토됐다"면서 "기본적으로 금관, 청동관 등 관과 은으로 만든 허리띠, 목걸이, 금귀걸이 등이 세트로 출토된다"고 말해 왕족 등의 무덤일 가능성을 시사했다.
또 "120호분과 함께 있는 소형 묘에서 나온 것으로 무덤에 묻힌 사람이 혈연관계일 가능성이 있다"며 "120호분이 두 배 정도 큰 점을 고려하면 더 중요한 유물이 출토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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