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기자수첩]'갑질 의혹' 입주민의 침묵…사과는 없었다

등록 2020.05.27 17:08:44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기자수첩]'갑질 의혹' 입주민의 침묵…사과는 없었다

[서울=뉴시스] 류인선 기자 = 최근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비원에게 상해를 입힌 혐의를 받는 서울 강북구 모 아파트 입주민 A씨. 지금까지 수차례 포토라인 앞에 선 그를 보면 굳은 표정 속에서도 늘 당당함이 느껴졌다.

'뒤늦게 후회하고, 보도를 통해 자신을 모습을 볼 대중 앞에서 창피해 고개를 숙이고, 어떻게 용서를 구해야 할지 몰라 쩔쩔 매고…' 이런 모습을 잠시나마 상상해 본 게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A씨는 27일에도 검찰로 송치되기 위해 서울 강북경찰서 본관을 나와 취재진 앞에 섰다.

시간은 오전 7시49분. 태양이 다 뜨지도 않은 이른 시간, 행인들이 겉옷을 챙겨 입은 아침이었음에도 그는 선글라스를 쓰고 강북서를 나섰다. 얼굴을 가리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아니, 그게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창피함을 느껴 얼굴을 어떻게든 가리고 싶은 사람이라면 마스크를 굳이 턱으로 내리지 않았을테니까. A씨는 "유족에게 할 말씀 없나요"라고 묻는 질문에 입을 열지 않았다.

A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열린 지난 22일. 숨진 경비원 최모씨의 형을 비롯한 유족들도 서울북부지법 청사 앞에 모였다. 형 최씨는 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경찰 호송차량을 타기 위해 이동하던 A씨를 향해 "내 동생 살려내라"고 외쳤다.

A씨는 머리가 희끗희끗하게 센 유족의 모습을 보고도 고개를 숙이거나 사과하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고 "죄송하다"고 한마디만 했다면 모두에게 용서받았을지 모른다. 실제로 유족들은 "사과하면 용서하겠다"며 기회도 줬다.

그는 뉴시스에 "조금만 기다려 주시면 진실은 밝혀질 것"이라고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뻔뻔한 모습을 보였다. 경찰 조사에서는 최씨의 코뼈 골절에 대해 "경비원이 자해한 것"이라는 주장을 펼친 것으로 전해졌다.

A씨는 지난 12일 장례 기간에 유족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한다. 그는 통화에서 '"(빈소에) 못 가서 죄송하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씨는 지난 10일 자신이 자택 건물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A씨는 '코뼈를 왜 부러뜨렸느냐'는 질문에 답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 이후 지난 22일 구속되기 전까지 그는 유족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고 한다.

유족들이 지난 12일로 예정됐던 발인을 14일로 미뤄가며 A씨에게 "빈소를 찾아 사과하라"고 기회를 줬지만 외면한 것이다.

형 최씨는 뉴시스와의 통화해서 "사과를 하면 용서할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끝까지 하지 않으니 처벌을 바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목소리엔 "동생을 살려내라"며 호통치던 때와 같은 단호함이 서렸다.

A씨는 빈소를 찾았어야 한다. 그리고 사과했어야 한다. 27일 검찰에 송치된 A씨는 이르면 10일 이내, 늦어도 20일 이내에 재판에 넘겨진다. 유족이 발인까지 미뤄가며 준 기회를 걷어찬 A씨가 재판에서 반성문을 내고 사과한다고 한들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을까. '꼼수'라고 여겨질 가능성이 높다.

경비원 최씨는 죽기 전 약 5분 분량의 음성 유서에서 "더이상 갑질 당해 저처럼 죽는 경비원이 없게 해주세요"라고 호소했다. 그는 이 한 문장을 말하기 위해서 수차례 호흡을 가다듬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야 했다.

최씨는 A씨를 '갑'이라고 생각했다. A씨는 최씨를 '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입주민과 경비원 사이는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다. 최씨는 '갑도 아닌 이에 의한 갑질'로 눈물을 흘리고 결국 목숨까지 끊은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