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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듣다]기술과 '사랑'에 빠진 대표님..."이 기술이 말이죠"

등록 2020.05.28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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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 1997년 전기 관련 제품 개발 착수

개발하는데 10년+a...아직까지 구매자 없어

"개발만하면 시장이 저절로 만들어질 줄 알았다"

이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관계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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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표주연 기자 = [실패를 듣다]18번째 인터뷰다. A씨의 경험, 실패에 대한 생각 등이 독자와 새로운 창업가에게 유의미한 교훈이 될 수 있겠다. A씨의 현재 사업과 개인정보 보호를 위해 익명으로 싣는다. <편집자주>

A 대표는 2시간 정도 인터뷰를 하는 동안 자신이 20여년간 만든 제품과 그 기술이 얼마나 뛰어난지에 대해 설명하려고 노력했다. 어떤 질문을 해도 그는 "이 기술이 말이죠"라며, 자신의 기술에 대해 설명하는 식이었다. 

문제는 그렇게 노력해서 만든 제품과 기술이 아직 사업화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간단히 말하면 정말 혁신적이고 엄청난 기술을 투자해 제품을 개발했는데, 20년 동안 구매자가 없다. 아직까지 이 사업으로 재도전에 임하고 있는 그는 자신의 기술과 사랑에 빠진 상태로 보였다.

A 대표는 1997년 중소기업에 다니면서 자신이 다루는 물건이 대부분 독일산 이라는 걸 알게 된 후 자체 개발을 결심했다.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지만 전기 관련 제품이다. A 대표는 작은 공장 하나를 유지하면서 이 제품 개발에 몰두했다. 공장 운영비를 최소화했다. 직원들도 최소화 해 10여명이던 직원은 2~3명까지 줄였다.

그가 이 제품을 만들기 시작한 게 1997년이었다. 완성품으로 어느 정도 모습을 드러낸 게 2007년께다. 이걸 개발하는데 짧게는 10년이 들어간 셈이다. 돈으로는 약 10억원을 쏟아 부었단다. 이중에는 경기신보 등 정부기관에서 대출받은 1억원도 포함됐다. 

그러나 제품을 개발했지만 구매자가 나타나지 않았다. A 대표는 "특허도 출원했는데, (구매자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매출 실적이 있냐고 묻더라"며 "내가 정말 귀하고 어렵게 개발한 것인데, 대수롭지 않게 보는 것 같았다"고 회고했다.

큰 불운도 따랐다. 2009년께 완성궤도에 오른 제품을 미얀마에 수출하는데 성공했다. 5억7000여만원에 3대의 수출계약을 맺었다. 한국에 있는 자신의 공장에서 제품을 만들어 수출을 했는데 사고가 터졌다. 미얀마 현지 도로사정이 좋지 않아 운송중 차량이 가로수를 들이받았다. 차량에 있던 제품은 쏟아져 고장이 났다. 미얀마 구매자는 수리를 요구했다. 여기서부터 일이 꼬였다. 미얀마 정부가 전기 관련 제품의 반출을 막았다. 전략물자로 가치가 있어서 미얀마법상 반출이 안 된다는 게 이유다. A 대표는 한국으로 다시 제품을 운송해 수리하기를 원했지만, 어쩔 수 없이 미얀마로 향했다. A대표는 그렇게 미얀마에서 6개월을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6개월 만에 돌어온 회사는 엉망이었다. 대출금이 제대로 빠져나가지 않아 경기신보는 압류를 진행했다. 회사는 그렇게 주저 앉았다. 공장임대료도 낼 여력이 못됐다. 각종 집기와 기계는 눈물을 머금고 고철로 처분했다. 이 때가 2011년. A 대표는 "신용불량자가 되고 공장을 접으니 할 수 있는게 없었다"며 "일거리도 없었고, 막노동판에서 일하며 연명했다"고 당시를 돌아봤다.

A씨는 2018년 재도전 성공패키지에 지원해 1억원의 자금을 조달한 뒤 다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확히는 개발한 제품의 구매자를 찾는데 주력하고 있는 상황이다. A씨는 “정부 지원금을 간단히 받았는데 1000만원, 2000만원이 하나님 같았다”고 말했다.

이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관계가 없음.

이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관계가 없음.

그는 자신의 사업이 실패하고, 자신이 만든 제품이 사업화되지 않은 이유를 '외부요인'에서 찾았다. 자신이 만든 제품이나 기술을 구매해줄 것이라고 생각한 공공기관은 이 기술을 구매하지 않았고, 대기업 등은 이 기술을 원천 소스를 가져가려고만 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20년간 아무도 구매하지 않는 기술을 개발했다면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그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다"고 답했고, 왜 사업에 실패했던 것 같으냐는 질문에 "돈이 없어서"라고 말했다.

더 지원을 해주지 않는 정부에 대한 원망도 간간히 섞였다. 그는 정부기관으로부터 2억원의 자금을 대출받은 뒤 회사를 폐업한 전력이 있다. 미얀마에서 사고가 터진 직후였다. 그가 받은 자금은 '부실'로 처리됐다. 갚지 않은 채 부도를 냈다는 이야기다. 다시 정부의 대출지원을 받으려니 심사관이 "부실을 내신 적이 있네요?"라고 말했다. 그 후에 그는 대출심사에서 탈락했다.

그에게 "국민의 세금으로 대출을 해주는데, 한번 부실을 냈던 사람에 대해 재대출을 제한하는건 합리적이 않느냐"고 물었다. 그는 다시 "이 기술이 말이죠"라며 이 기술의 혁신성에 대해 설명했다.

A 대표는 "많이 부족했다. 개발만하면 시장이 저절로 만들어질 것으로 알았다"고 털어놨다. 이어 "개발비용을 미리 예상해 예산을 잡을 수 없었다. 비교적 빨리 성공해 5~6년안에 만들 수만 있다면 시장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 가능성은 충분히 확인했다"고 강조했다. 여기까지 말한 A 대표는 "시장자체에 큰 변화가 없다. 예전(개발 이전)이나 지금이나"라고 말하고 쓴웃음을 지었다.

※'실패를 듣다'= 수많은 실패의 고백을 담는다. 그냥 실패가 아니라 값진 실패, 유의미한 실패의 이야기를 연재한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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