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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생각]새로운 도시살이에 대한 소고(小考)

등록 2020.05.29 1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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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민보경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서울=뉴시스]민보경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서울=뉴시스]  최근 몇 달간 음악회가 줄줄이 취소된 상황에서 지난주 기부콘서트로 진행된 한 공연에 참석했다.


오랜만의 연주회가 반가운지라 마스크를 쓰고 앞사람과 일정 간격을 두고 입장하는 긴 줄, 손 소독제를 바르고 이름과 연락처를 남기는 번거로운 절차에 대해 그 누구도 푸념하지 않았다.

공연장 안에서 한 자리씩 띄어 앉는 관객 간의 거리 두기는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광경이지만 그 간격이 어느새 편안해지면서 이전에는 당연시했던 빽빽한 좌석들이 오히려 불편하게 느껴졌다.

전 세계적으로 대도시를 중심으로 바이러스가 확산되면서 감염병 상황을 악화시키는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도시밀도가 언급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뉴욕타임즈(NYT)는 뉴욕이 유독 코로나에 취약한 이유를 인구밀도로 설명하며 뉴욕과 로스앤젤레스를 비교하였다. 뉴욕에서는 높은 인구밀도 때문에 늘 만원인 지하철을 타고 아파트에 밀집해서 거주하다 보니 바이러스가 확산되기 쉽지만, 로스앤젤레스는 밀집도가 뉴욕보다 낮고 대중교통이 불편해 자가용을 이용하다 보니 바이러스의 타격이 덜 심하다는 것이다.

뉴요커들의 자랑인 유서 깊은 지하철이 감염병 시대에는 취약점이 되는 반면 그간 로스앤젤레스의 문제점으로 지적받던 스프롤(무질서한 도시 확산) 현상과 대중교통 부족으로 인한 자가용 출퇴근이 바이러스 위험으로부터 그나마 안전하다고 하니 뉴어바니스트(New Urbanist)들이 지향하는 방향과 정반대처럼 보인다.

많은 사람들이 인구가 밀집해 있는 도시를 피해 한적한 교외로 피난하는 것이 안전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지만 뉴어바니스트들은 도시 내에서 사회적 거리와 지역공동체를 중시하는 근린(neighborhood)의 형태로 전환하기 위해서 보행친화적(walkable)인 어바니즘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뉴어바니즘(New Urbanism)은 1980년대 말부터 미국의 대안적 도시개발의 유형으로 등장해 도시의 무분별한 도시 확산을 지양하며 대중교통, 보행 중심의 고밀도 도시개발을 강조한다.

이러한 뉴어바니즘은 자동차 중심의 도시개발 이전인 전통적 근린지구(traditional neighborhood)에 기초하고 있는데 이는 도보로 이동 가능한 거리에 일상생활에 필요한 기본 시설들(초등학교, 커뮤니티 센터, 대중교통, 문화시설 등)을 배치하는 것이다.

이러한 보행 친화적인 고밀도 도시개발은 자동차 이용을 줄여 환경을 보호하고 자원의 효율적 이용을 가져올 뿐 아니라 주민 간 교류를 통해 사회적 관계에 긍정적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미국과는 달리 이미 과밀한 도시 생활이 익숙한 우리로서는 오히려 뉴어바니즘의 정신이 추구하는 적정한 밀도를 찾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경제성과 효율성만을 앞세워 공간들을 과도하게 밀집시켜 왔으나, 이제는 심리적 '개인 공간'(personal space)을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인 공간은 인류학자인 홀(Hall)이 제시한 개념으로 누구나 주변의 일정 공간을 자기의 것이라 여겨 타인이 그 거리 내에 접근해 오면 심리적 부담감과 스트레스, 위협감마저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 공간의 유형으로는 개인적 거리(personal distance; 45㎝~1.2m), 사회적 거리(social distance; 1.2~3.6m), 공적 거리(public distance; 3.6m 이상) 등이 있으니 팬데믹 시기에는 사회적 거리가 안전을 보장하는 심리적 공간이 되는 셈이다.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해 넘쳐나는 기사들은 과밀한 도시 공간과 사람들의 밀접한 접촉이 전례 없이 위협을 초래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전염병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에서 그 확산세가 빠르지만 사실 전염병은 도시를 발전시켜 온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가령 19세기 중반 콜레라는 영국의 공중보건법(the Public Health Act, 1848)을 탄생시켰고 이를 시작으로 상하수도 시설 등 도시환경의 필수적 요소와 도시시설 기준을 마련함으로써 도시발달사에서 획기적인 전환점을 이루었다. 이렇듯 도시는 전염병에 대응하면서 진화해 왔다.

지금의 팬데믹 이후 우리 사회가 확 바뀌게 될 것이라는 요란한 전망도 제시되고 있지만 섣부른 예상보다는 유사한 위험이 다시 닥쳐올 때 도시가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보완하고 사회적 인프라를 확충하는 게 우리에게 주어진 우선적 과제일 것이다.

현 상황을 보면 콜센터, 요양원, 택배업계 종사자 등 서로 거리 두기 또는 일상의 멈춤이 곤란한 열악한 근무환경의 도시노동자들이 위험에 노출될 확률이 높음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사회적 불평등이 위험의 불평등으로 전이되지 않도록 이들의 근로 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적 노력이 더욱 요구된다.

더불어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공간 전략은 사회적 관계를 위한 접촉과 상호 안전을 모두 고려하여 개인 공간을 존중하는 적정규모와 도시밀도를 확보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재택근무의 정착, 온라인을 통한 비대면 사회활동 증가에 따른 사무실, 교육시설, 종교시설 등의 공간 수요 감소, 이로 인한 도시 유휴공간의 증가, 스마트폰 등을 통한 집안에서의 여가활동증가 등은 도시 공간의 기능적 재배치를 가져올 수 있다. 개연성 있는 미래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것만이 우리의 지향점이 될 수는 없다.

사람들이 극장에 가지 않고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해서 영화를 보고 식당에 가기보다 음식배달 서비스를 이용해 음식을 먹지만 그것이 이전의 우리 생활 전부를 대신할 수는 없다.

친밀한 사람들 간의 스킨십, 친구들과 새로운 경험을 즐기는 짜릿함, 낯선 사람들과의 일상적 상호작용은 도시에서의 삶이 제공하는 활력이자 매력이다. 온라인을 통한 친밀감은 아직 우리에게 낯설고, 도시가 만들어내는 어메너티(amenity)는 쉽게 포기할 수 없을 것이다.

음악회 중간에 '전 세계적으로 모든 연주가 멈춘 지금, 무대가 그리웠고 마스크를 쓴 객석의 관객들을 보며 울컥했다'는 연주자의 울먹이는 감사 인사를 들으며 관객까지도 감격에 겨워 눈물 흘리는 현장에 있어 보니 온라인으로 세계적인 유명 오케스트라 공연을 무료로 즐기는 것과는 별개로 다들 그동안 이러한 일상생활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느낄 수 있었다.

팬데믹 이후 우리의 일상이 예전 그대로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없을 수도 있고 우리의 일상생활이 위축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일상적인 도시 생활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민보경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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