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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 "한국 문학사에 빠진 산업노동자 삶 채워"(종합)

등록 2020.06.02 18:2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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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원 삼대' 기자간담회…소재 선정 및 배경 등 밝혀

노벨문학상 관련해선 부정적…알라·로터스상 복원 희망

"작가는 은퇴 따로 없어…죽을 때까지 써야" 책무 강조

'늦잠' 해프닝 사과도 "알람 설정 안해…대형사고 죄송"

"차기작 어린이·어른 함께 읽는 철학 동화…코로나서 영감"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황석영 작가가 2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2020.06.02. kkssmm99@newsis.com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황석영 작가가 2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2020.06.02.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임종명 기자 =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 10대국' 이런 얘기를 할 정도로, 근대화를 통해 산업사회에 진입했는데 이 산업노동자를 한국 문학에서 정면으로 다룬 장편소설이 없다. 그 부분이 빠져있다. 그래서 그걸 좀 채워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2일 오전 11시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 신작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로 돌아와 기자간담회를 가진 황석영 작가는 신작의 집필 배경을 이같이 밝혔다.

황 작가는 "우리가 다 노동자로서의 삶을 살고 있는데 이게 한국 문학에는 빠져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대하소설도 거의 대부분 농민 위주였다"고 했다.

'철도원 삼대'는 일제 강점기부터 21세기까지 100년이란 시간 동안 한 집안 노동자들의 삶을 다룬다. 4대손인 주인공 이진오는 고공농성을 하면서 철도노동자였던 증조부부터 조부, 아버지의 삶을 떠올리는 이야기다.

제목 그대로 화자의 아버지부터 위로 삼대에 걸쳐 모두 철도노동자로 등장한다.

황 작가는 철도노동자를 소재로 한 이유에 대해선 "철강 산업은 근대 산업사회를 상징한다. 노동자들의 핵이라고도 한다. 서구에서는 철도노조가 굉장히 세고 역사가 굉장히 깊다. 프랑스는 거의 산별노조의 맏형이라고 할 정도"라며 "그래서 '근대 산업사회의 중심이 되는 노동자는 철도노동자다'라고 본 것"이라고 말했다.

철도원을 배경으로 한 사연도 전했다.

황 작가가 1989년 방북했을 때 그곳에서 만난 서울 출신 백화점 부지배인 노인과의 대화가 계기였다.

황 작가는 "키가 크고 지식인 유형의 노인이었다. 옛날 서울사투리를 쓰기에 고향과 동네를 물었더니 나와 같은 영등포라더라"며 "아버지 또래였던 그와 대화를 나눴는데 나이 차이는 크게 나지만 같은 추억을 갖고 있었다. 따로 시간을 내어 5~6시간 얘기하면서 아주 재밌었다. 감동도 받고. 그 사람 과거를 듣고 소설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고공농성을 하는 주인공이란 설정에 대해선 "굴뚝이란 장소가 재밌지 않나. 지상도 아니고 하늘도 아닌 중간지점이다. 일상이 거기에 멈춰 있으니 상상력으로 얼마든지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조건"이라며 "이 인물을 통해 증조부부터 아버지까지 3대 이야기를 들락날락하며 회상하는 식으로 구성했다. 자연스럽게 한반도가 처한 정치적 현실 이런 것이 현재까지 우리에게 영향을 주고, 형태는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본질은 거의 비슷하게 작용한다는 이야기"라고 했다.

황 작가는 제목에 '삼대'가 들어가 염상섭의 '삼대'가 떠오른다는 지적에 "전 우리나라 근대의 시작을 3·1운동 이후로 보는데 염상섭의 '삼대'가 그 무렵을 다룬 작품이다. 식민지 부르주아를 조명했다면 저는 산업노동자를 다루면서 그 뒤를 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고 답했다.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황석영 작가가 2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0.06.02.kkssmm99@newsis.com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황석영 작가가 2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노벨 문학상 수상을 기대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다소 부정적 입장을 나타냈다.

황 작가는 "노벨상 이야기는 다 낡은 이야기 같다"며 과거 존재했던 '알라(AALA :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 작가회의)' 같은 제3세계 작가 기구와 알라에서 시상했던 로터스 상의 복원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로터스가 뭔가. 연꽃이다. '진흙에서 연꽃이 핀다' 이런 의미다. 각 나라 사회에 있는 민중들의 고통 이런 것을 딛고 올라오는 연꽃같은 작품이라는 차원에서 주는 상이라 해서 로터스상"이라며 "알라가 없어지면서 상이 없어졌는데 희망사항이지만 2~3년 안에 (복원) 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방북 경험이 있는 황 작가에게 한반도 통일에 관해 묻자 "되짚어보면 우린 지구상 누구를 침략한 적이 없고 당하기만 했는데 70년 동안 전쟁이 끝나지 않는 나라가 어디 있나. 전쟁이 끝났다는 걸 확인하기가 이렇게 힘들다"며 "사실 한반도를 둘러싼 화두는 다 나왔다. 이것만 해도 큰 진전일 텐데, 조만간 코로나 정국이 좀 가시면 다시 대화도, 협상도 시작되지 않을까 기대해본다"고 말했다.

황 작가는 또 "작가는 은퇴기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다. 죽을 때까지 써야 한다. 그게 작가가 세상에 가지는 책무"라고 강조했다.

그는 "기운이 남아있는 한 죽을 때까지 써야 한다. 마구 쓰는 게 아니라 죽을 때까지 새로운 정신으로 새로운 길을 가고 새로운 작품을 써야 한다"며 "이번 소설도 보따리 싸고 나와서 젊을 때처럼 하루 8~10시간 앉아서 썼다. 확실히 기운이 달리고 기억력도 떨어져서 대단히 고생했다. 후반부에는 등장인물 이름이 혼동돼 막 바뀌고 그랬다"고 설명했다.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황석영 작가가 2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0.06.02.kkssmm99@newsis.com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황석영 작가가 2일 서울 마포구 창비서교빌딩에서 열린 장편소설 '철도원 삼대'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email protected]


 "지난번에 헛걸음하게 만들어서 죄송합니다."

이날 간담회의 시작과 끝은 '사과'였다.

황 작가는 지난달 28일 예정했던 기자간담회에 참석하지 않았다. 간담회 전날 5·18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관련 공식 행사 진행을 맡았는데 광주 주민들과 막걸리를 마신 뒤 자택에 돌아가 쓰러졌고, 알람 설정을 안했다고 설명했다.

황 작가는 "광주 식구들은 대개 5월 27일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날 도청에서 시민들이 진압을 당해서"라며 "당시 20대 청년이었는데 지금 60대인 분들하고 막걸리를 한 잔 했다. 12시쯤 집에서 쓰러져 잤는데 알람을 맞춰만 놓고 설정을 안했더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음날 난리가 나서, 후배 작가들이랑 현지에 와서 막 문을 두드려서 나를 깨웠다. 일어났더니 11시. 그렇게 대형 사고를 치고 말았다. 죄송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마지막 발언도 '사과'였다. 황 작가는 "제가 예상외로 (지난 주 간담회를) 펑크 내는 바람에, 그게 더 (신작) 홍보가 됐다"며 "다시 한 번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도서출판 창비에 따르면 황 작가의 신작 '철도원 삼대'는 초판 1만부가 2주일 만에 모두 출고돼 2판 증쇄 중이다. 황 작가와 창비는 지난달 28일 예정이었던 출간 기자간담회가 황 작가의 늦잠으로 취소된 해프닝이 뜻밖의 홍보 효과를 가져온 것 같다고 밝혔다.

한편 황 작가는 코로나19 사태에서 영감을 얻었다며 차기작은 어린이와 어른이 함께 읽을 수 있는 철학동화를 구상 중이라고 전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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