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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말로하는 액션' 지적 유희…신구·남명렬·이석준·이상윤 '라스트세션'

등록 2020.06.18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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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초연...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3관 7월10일 개막

[서울=뉴시스] 연극 '라스트 세션'. 2020.06.18. (사진 = 파크컴퍼니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연극 '라스트 세션'. 2020.06.18. (사진 = 파크컴퍼니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루이스가 진다고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어요. 프로이트가 강하다고 생각하시는데, 루이스 말이 어려워서 그렇지 논리적으로 다 맞아요."(이상윤)
 
"루이스가 안다고 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이 힘든 겁니다. 보이지 않는다면 안다고 말하기 힘들죠. 과학적으로 증명이 되는 것은 가역적인 거예요. 불가역적인 것은 증명이 되지 않죠."(남명렬)

"신을 증명하는 것은 선택의 문제이죠. 합리적으로 증명이 가능해서 선택을 할 수 있다면 신의 입장은 중요하지 않죠."(이상윤) "저는 '과학적'이라는 말 자체가 별로예요. '과학적으로 증명하지 않는다', 그걸 어떻게 과학적으로 증명합니까?"(이석준)

"갈릴레이가 살던 시절에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생각했어요. 그 당시 과학으로는 그 정도 증명할 수밖에 없었죠. 과학이 발전한 만큼 증명이 되는 겁니다."(남명렬)

'100분 토론'을 방불케하는 토론으로 인해, 장외전부터 후끈 달아올랐다. 17일 오후 대학로 연습실에서 만난 연극 '라스트 세션' 배우들은 본 공연 못지않은 논쟁으로 여름 수은주를 더 끌어올렸다.

오는 7월10일부터 9월13일까지 대학로 예스24스테이지 3관에서 국내 초연하는 '라스트 세션'은 20세기를 대표하는 위대한 두 명의 학자 프로이트와 C.S. 루이스의 세기적인 만남을 그린다.

[서울=뉴시스] 신구. 2020.06.18. (사진 = 파크컴퍼니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신구. 2020.06.18. (사진 = 파크컴퍼니 제공) [email protected]

미국 극작가 마크 세인트 저메인이 아맨드 M. 니콜라이의 저서 '루이스 vs. 프로이트'에서 영감을 얻어 쓴 작품이다. 작가는 실제로는 만난 적 없는 두 사람을 무대 위로 불러내 신과 종교에 대한 도발적인 토론을 야기한다.

영국이 독일과의 전면전을 선포하며 제2차 세계대전에 돌입한 1939년 9월 3일을 배경으로, 프로이트와 루이스가 만나 논쟁을 벌인다는 상상에 기반한 2인극이다.

20세기 무신론의 시금석으로 불리는 프로이트와 대표적인 기독교 변증가 루이스는 신에 대한 물음에서 나아가 삶의 의미와 죽음, 인간의 욕망과 고통에 대해 논변들을 쏟아낸다.

2009년 베링턴 스테이지 컴퍼니에서 첫 선을 보였고, 2010년 뉴욕 초연했다. 오프브로드웨이에서 2년 간 총 775회 공연했고 2011년 오프브로드웨이 얼라이언스 최우수신작연극상을 받았다. 연극 '그라운디드', '킬 미 나우' 등으로 호평을 들은 오경택 연출이 이번 국내 초연에 함께 한다.

코로나19로 침체된 대학로의 하반기를 책임질 구원투수로 통하는 작품이다. 특히 연극계 노년을 대표하는 '방탄노년단' 신구(84)와 중년을 대표하는 남명렬(61)이 프로이트, 대학로 간판 이석준(48)과 이번 작품을 통해 연극에 정식 데뷔하는 이상윤(39)이 루이스를 맡는다.
 
[서울=뉴시스] 남명렬. 2020.06.18. (사진 = 파크컴퍼니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남명렬. 2020.06.18. (사진 = 파크컴퍼니 제공) [email protected]

이날 인터뷰에서 남명렬, 이석준·이상윤이 치열하게 논박을 이어가던 중 신구의 너스레가 분위기를 화기애해하게 만들었다. "프로이트가 이야기하는 것이 쏙쏙 들어와요"라고 웃으며 자연스레 프로이트 편을 들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신구와 남명렬은 프로이트, 이석준과 이상윤은 루이스를 각각 맞춤옷처럼 입었다. 신구는 지금까지 신앙이 없었고 모태신앙인 남명렬은 현재 종교를 믿지 않는다. 이석준과 이상윤은 기독교인이다. 특히 이석준은 독실한 신앙인으로, '순전한 기독교' 등 루이스의 저서들을 이미 읽어왔다.

남명렬은 "본 공연에서는 첨예한 생각들이 더 불꽃이 튀지 않을까 해요. 맡은 배역이 자기 신념이 다르면 (생각과 연기를) 연결하기 힘들거든요. 다행히 이번 연극에서는 개개인의 신념이 맞고 있는 배역과 같은 쪽에 있죠"라고 귀띔했다.

남명렬은 연극계에서 '지식인 전문 배우'로 통한다. 배우보다는 교수나 과학자같다는 소리를 듣는다. tvN 드라마 '미생'에서 장그래(임시완)의 사범 역으로 카리스마를 뽐냈고 일동제약 CF에서도 교수로 나와, '진짜 교수'같은 인상이다.

'알리바이 연대기'에서 한국 근현대사를 부딪혀온 지식인 아버지,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에서 자의식 강한 지식인 아버지, '코펜하겐'에서 20세기 물리학을 꽃피운 실존 물리학자 닐스 보어를 연기한 그다. 

이미 2년 전 남명렬에게 박정미 파크컴퍼니 대표가 이 작품을 함께 하자는 제안을 했는데 당시에는 "걱정하는 마음이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작품이 나빠서가 아니라 (진지함의 무게감으로 인해) 과연 '잘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하지만 이번에 좋은 배우들과 함께 하면서" 물음표가 느낌표로 바뀌었다.

[서울=뉴시스] 이석준. 2020.06.18. (사진 = 파크컴퍼니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석준. 2020.06.18. (사진 = 파크컴퍼니 제공) [email protected]

아울러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지금 우리 사회가 무겁고 깊은 이야기에도 관심이 많은 사회"라는 것을 점점 느껴가고 있다고 했다. "대학로 관객이 로맨틱 코미디만 좋아하지 않아요. 요즘에는 연극 한편을 보시고 스스로 채운다는 느낌이 들어요. 거기에 걸맞는 프로덕션이죠."

신구도 앞서 이 작품에 캐스팅 소식이 전해졌을 때 "생전에 언제 또 이런 작품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마 내 생애 도전하는 작품으로는 마지막이지 않을까"라며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신구는 그간 프로이트를 잘 알지 못했다며 "이 양반(프로이트)을 접하기가 어려워 근처에 가지도 못하는 두려운 마음이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1962년 연극 '소'로 데뷔한 '58년 베테랑'도 어려운 연기가 있을까?

신구는 "내가 뭐라고"라며 두 손을 내저었다. "단순히 책을 읽으면서 제가 이해하는 것과 무대 위에서 표현하는 것은 다르잖아요. 그 양반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서 엄두가 나지 않았지만, 나이가 먹으니까 의미 있는 것을 해보자는 마음이 컸다"고 했다. 

상대역인 루이스 캐릭터에 이석준과 이상윤이 더블캐스팅되는데 두 사람의 차이점이 무엇이냐 묻자 "라떼는 말이야"(기성세대가 자주 쓰는 '나 때는 말이야'를 풍자하는 표현)이라고 너스레를 떨며 "원캐스팅이었는데, 지금은 합을 맞추는데 시간이 곱으로 걸린다"고 했다.

이처럼 시스템은 변화했지만 신구는 한결 같다. 여든이 넘는 나이에도 리딩 들어가기 전에 대본을 몽땅 외워 젊은 배우들을 주눅들게 하는데 "대사를 외우는 것은 (배우에게) 이야깃거리도 안 된다"고 손사래쳤다. "이제 기억력이 쇠퇴해서 외우는 시간이 더 필요하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상윤은 "신구 선생님이 '나를 알기 위해 상대방 대화도 외웠다'라고 말씀하신 것은 연극계에 유명하다"며 웃었다.

[서울=뉴시스] 이상윤. 2020.06.18. (사진 = 파크컴퍼니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상윤. 2020.06.18. (사진 = 파크컴퍼니 제공) [email protected]

'말로 하는 액션'이라는 말이 돌 정도로 '라스트 세션'은 대사가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루이스는 약 2시간의 러닝타임 내내 무대 위에서 한번도 퇴장하지 않고 프로이트도 문을 열고 닫는 2번의 장면 빼고는 무대 위에 내내 있다. 

이석준은 "프로이트와 루이스가 두 세마디 나누는 것이 책 한권분량의 논쟁을 압축한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기독교인인 이석준은 루이스를 연기하는 재미에 설레어했다. 

지난 2016년 졸탄 스피란델리 감독의 독일영화 '신과 함께 가라'를 원작으로 한 뮤지컬 '신과 함께 가라'를 연출, 제작하기도 한 이석준은 "무신론였다가 유신론으로 돌아선 계기, 하나님을 만나게 된 계기, 하나님을 알아가는 노력까지도 루이스와 제가 비슷한 점"이라면서 "아예 루이스를 몰랐으면 (연기하는 것이) 더 자유로웠을 텐데 계속 생각과 행동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라스트 세션'이 학술적인 이야기 또는 종교적인 이야기만 하는 '어려운 작품'일 것이라고 단정짓는 것에 대해 배우들은 경계했다. 남명렬은 "유신론자, 무신론자 이야기가 아니에요. 자기 신념에 대해 자존심을 건 논쟁에 방점이 찍히면 더 쉽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라고 팁을 건넸다.

아울러 "논쟁을 통해 겉으로 보이는 두 인물의 자존심 싸움뿐만 아니라 뒤에 숨어 있는 심리 싸움을 보게 된다면 더 재미있게 느껴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석준은 "지적 유희를 느낄 수 있는 펜싱 경기 같은 작품"이라고 소개했다. "펀치를 날리지는 않지만 서로 위협을 할 수 있는 위치에서 칼을 날리는 '펜싱 경기' 같은 말싸움을 보게 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서울=뉴시스] 연극 '라스트 세션'. 2020.06.18. (사진 = 파크컴퍼니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연극 '라스트 세션'. 2020.06.18. (사진 = 파크컴퍼니 제공) [email protected]

또 이번 '라스트 세션'에서 특기할 점은 주로 TV 드라마에서 활약한 이상윤을 무대에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작년 큰 인기를 누린 SBS TV 월화드라마 'VIP'로 재조명된 이상윤은 올해 초 SBS TV 예능 프로그램 '집사부일체'에서 하차한 이후 연기에 주력하고 있다. 지난해 동료 배우들과 자선 기부를 위한 공연 '올모스트 메인'에 출연한 후 '라스트 세션'을 통해 정식으로 연극 무대에 도전한다.

서울대 물리학과 출신으로 대표적인 뇌섹남 배우로 통하는 이상윤은 "'라스트 세션'으로 연극에 데뷔한 건 신구 선생님의 선구안을 믿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연극 첫 작품이 너무 어려운 것이 아니냐는 말씀들도 많이 하세요. 그런데 많이 힘들기는 하지만, 자극을 많이 받고 무엇보다 즐거운 시간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배우고 있거든요. 매번 새로운 것을 하게 되니 더 욕심이 생기고, 하나씩 해나가면서 앞이 보이니까 더 재미가 있는 거예요."
 
이석준은 이상윤에 대해 "한동안 대학로에 살았던 사람처럼 (습득하는 것이) 빨라요. 이상윤이 '왜 스마트한 배우'로 불리는지 알게 됐죠. 상윤이 덕분에 텍스트에 빈 부분이 채워집니다. 젊은 친구와 작업을 하면서 이런 재미를 느껴본 것이 오랜만이죠"라고 했다.

이상윤은 어느날 신구가 연극과 다른 장르의 차이점으로 짚은, 관객과의 호흡에 대해 한창 궁금해하고 있다. 그는 "솔직히 말씀 드리면, 제가 연극을 택할 때 고려하지 못한 영역이었어요. 제 것만 하기도 바쁜데 관객 반응까지 챙겨야 한다니, 정말 궁금해지는 거예요. 그것까지 좋아지면 연극의 매력이 제게 더 해질 것 같아요"라며 웃었다.

남명렬은 "매체와 달리 연극은 커튼콜에서 박수가 나오는 '피드백'을 바로 접할 수 있어 성취감이 크다"고 미소지었다. 신구는 "그것이 호흡이고 교류"라며 여전히 형형한 눈빛을 빛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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