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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차지연 "엄마·아내되니, 숨어있던 시야가 열려요"

등록 2020.06.23 17:46:55수정 2020.06.23 18: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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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상선암 극복하고 뮤지컬 무대 복귀

'잃어버린 얼굴 1895' 세번째 출연...7월 공연

[서울=뉴시스] 차지연. 2020.06.23. (사진 = 서울예술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차지연. 2020.06.23. (사진 = 서울예술단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외강강강강내유유유유!"

외강내유(外剛內柔)의 점층법적 변주, 이지나 연출은 뮤지컬스타 차지연을 이렇게 표현했다. 서울예술단의 대표 창작가무극(뮤지컬) '잃어버린 얼굴 1895'를 본 관객이라면 자연스레 고개를 끄덕일 테다.

시아버지 대원군과 권력싸움을 벌인, 독한 악녀의 이미지로 새겨진 명성황후를 봉건의 환경을 뚫고 근대의 주체가 돼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찾고자 했던 여성으로 그린 작품. 차지연은 객원으로 참여해 2013년 초연과 2015년 재연에서 명성황후를 스스로 살아냈다. 카리스마를 내뿜어내는 그녀의 내면에는 꽃이 숨어 있었다.

차지연이 5년 만에 이 작품으로 돌아오는데, 그간 안팎으로 그녀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던 만큼 관객의 기대가 크다.

23일 예술의전당에서 만난 차지연은 "그동안 엄마·아내가 됐는데 못 보던 시야가 열렸고, 곳곳에 숨어 있던 것이 보이더라"고 말했다.

차지연은 2015년 결혼했고 이듬해 아들을 얻었다. "2013년, 2015년 '잃어버린 얼굴 1895'에 출연했을 때는 싱글이기도 했고, 예술단 선배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앞만 보고 저돌적으로 달렸다"고 돌아봤다.

"한 신 한 신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임했었어요. 열정일 수 있고, 애정일 수 있는데 당시 제가 (연기 관련) 기술적인 것을 갖고 있지 않아서 진심만이 무기라는 생각에 헌신의 힘을 쏟았었습니다."

[서울=뉴시스] 차지연. 2020.06.23. (사진 = 서울예술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차지연. 2020.06.23. (사진 = 서울예술단 제공) [email protected]

이번에는 새로운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묶여 있지 않으면서, 명성황후에 어떻게 여자의 삶을 녹여낼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세세한 부분을 살리는 것에 대해 가장 고민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연습실에서 서 있기만 해도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라고요."

차지연은 뮤지컬 '안나 카레니나' 출연을 앞둔 직전인 지난해 4월 갑상선암 진단을 받고 활동을 쉬었다. 지난 1월 갈라쇼 출연해 복귀를 타진했고 2월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뮤지컬 콘서트에서 국내 여성 뮤지컬배우로는 처음으로 유다를 맡아 건재를 과시했다.

지난 5월에는 모노극 '그라운디드'에서 자신의 상징과도 같은 '괴물 가창력'(세간의 화제였던 '복면가왕'의 '캣츠걸'이 그녀였다)을 버리고 오로지 연기력만으로 존재 가치를 증명해냈다. 전투기 조종사를 맡아, 홀로 전투복 한 벌과 의자 하나에만 의지해 개인의 삶뿐만 아니라 세상의 씨줄과 날줄을 90분 안에 빛나게 압축해놓았다.

차지연은 연기에 대한 욕심이 아직도 크다며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연기를 잘하고 싶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그라운디드'에 도전장을 낸 거죠. 연기에 대해 게으르지 않으려고 합니다. 저는 노래를 잘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멜로디가 입혀지는 대사를 하는 배우인 거죠. 음들이 대사를 만들어냈을 때 발휘하는 호소력 짙은 힘을 좋아해요."

모노극 도전이 처음이었던 차지연은 소수의 관객 앞에 서는 것 자체가 두려웠다고 했다. 하지만 그간 해온 뮤지컬로 인해 도움을 받았고, '잃어버린 얼굴 1895'는 '그라운디드' 출연 경험으로부터 도움을 받는다고 했다. "상호작용인 거죠. ('그라운디드'를 연출한) 오경택 연출님과 작업이 좋았어요. 작품을 분석하고 해결할 때 도움을 많이 받았죠."

'그라운디드'는 배우의 개인적 삶과 작품 속 인물이 겹쳐질 때의 시너지가 특히 강력할 수 있다는 입증했다. 조종사는 임신, 결혼, 출산, 육아 때문에 한동안 하늘을 나는 일을 포기한다. 차지연의 개인적 삶이 투영돼 상호작용을 일으켰다. 

[서울=뉴시스] 차지연. 2020.06.23. (사진 = 서울예술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차지연. 2020.06.23. (사진 = 서울예술단 제공) [email protected]

이후 호평이 잇따랐지만 차지연은 연기에 대해 더 깊숙한 고민을 하게 됐다. "인물들에 제 색깔이 입혀져서 '차지연화'된 것이 좋은 방법인지, 아예 새로운 인물이 좋은 건지 늘 고민해요. 그래서 매번 연기 톤, 태도를 다르게 하려고 해요. 작품을 선택할 때도 이전 작품과는 매번 다른 것을 하려고 했어요. 동양과 서양, 강인함과 부드러움 등 퐁당퐁당 변화를 하려고 했죠. 진부하지 않은 배우가 되려고 합니다. 연극도 기회가 되면 계속 하고 싶어요. 체홉처럼 정통 희곡 연극도 하고 싶습니다."

차지연은 아들을 얻은 직후 '마타하리'를 시작으로 작년 초 '호프 : 읽히지 않은 책과 읽히지 않은 인생'까지 정말 말 그대로 쉬지 않고 달려왔다. 원래도 에너지가 넘쳤던 배우였지만, 혼자의 몸으로 작품을 감당하는 것과 아이를 얻고 작품을 감당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다.

"제가 상상조차 못해 본 일이었어요. 많이 버겁고 몸이 따라주지 않았죠. 열정만큼 몸이 따라주지 않으니 심리적으로 불안정해지고, 지치고 치이다 보니 (그 불안함이) 몸으로 나타난 거죠."
 
갑상선암으로 고생했던 이유다. 이로 인해 하차를 할 수밖에 없었던 작품 관계자에게 거듭 죄송한 마음을 표한 차지연은 작품 활동을 중단한 기간에도 온전히 쉬지는 못했다.

갑자기 문제들이 돌출되면서 각종 사안들과 씨름의 연속이 이어진 것이다. 하지만 아이랑 오랜기간 함께 하면서 애착 관계가 쌓였고, 심리적 불안들을 해결하려는 노력을 병행했다.
[서울=뉴시스] 차지연. 2020.06.23. (사진 = 서울예술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차지연. 2020.06.23. (사진 = 서울예술단 제공) [email protected]


"이제 평안해졌어요. 하나 하나 엉켜 있던 것이 하나 하나 풀어졌죠. 그러면서 몸도 자연스레 평안해졌습니다."

무대 위에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차지연이지만 내면에서는 매번 관객들의 기대에 부흥하지 못할까 늘 고민한다. 이지나 연출이 "왜 넌 널 믿지 못하니"라고 할 정도다. 그런데 계속 자신을 의심하다보니 나태해지지 않아졌다.

"'내가 경력이 쌓였으니' '한 두번 해본 역할이니'라고 생각하는 순간, 무대에서 생명력을 잃게 되더라고요. 자존심과 자존감이 너무 중요하지만 의심병이 제가 연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고 있어요."

그래서 차지연 무대에서는 생명력이 꿈틀댄다. '아이다'의 '아이다', '서편제'의 '송화', '잃어버린 얼굴 1895'의 '명성황후', '카르멘'의 '카르멘', '드림걸즈'의 '에피', '마리 앙투아네트'의 '마그리드', '데빌'의 '그레첸', '위키드'의 '엘파바', '마타하리'의 '마타하리', '호프'의 '호프' 등 주체적으로 운명을 개척하려는 캐릭터들이 살아 숨 쉰 이유다.

"'예쁘다'는 말은 믿지 않고 '멋있다'는 말을 좋아한다"는 차지연은 '멋있다'를 "세련되면서 잘 흔들리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배우로서 멋있다'는 것은 '인간적으로 멋있다'는 것이라면서 명성황후를 '국모'로 표현하기보다 여리지만 똑똑했던 소녀의 상황이 어떻게 맞물려갔는지 그 흐름을 보여줬으면 한다고 바랐다.

[서울=뉴시스] 차지연. 2020.06.23. (사진 = 서울예술단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차지연. 2020.06.23. (사진 = 서울예술단 제공) [email protected]

이런 태도에서 단순히 무대 위 뿐만 아니라 주변까지 더 넓게 보려는 마음이 묻어난다. 그것은 뮤지컬업계를 생각하는 마음으로도 이어진다. 앙상블들을 재발견한 tvN '더블캐스팅'에서 멘토로도 나섰던 차지연은 "외적인 것에만 포커스가 가지 않게 좋은 선배의 모습으로 걸어가고 싶다"고 했다.

"모든 후배분들에게 밥을 사주지는 못하더라도 고민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같이 멋있게 늙어갈 수 있는 배우요. 앞으로 더 좋은 배우들이 계속 생겨날 테니까요."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코너로 몰지 말자고 생각한다는 차지연은 "제가 필요한 시간들이 자연스럽게 잘 흘러갔으면 좋겠어요"라고 바랐다. "제가 추구하면서 가는 행보에 '이유가 있겠지'라며, 지금처럼 많은 분들이 잘 믿어주신다면 좋은 배우로 성장하고 잘 늙어가겠습니다."

'잃어버린 얼굴 1895'는 7월 8~26일 서초동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관객들과 다시 만난다. 공연 자체는 2016년 이후 4년 만이다. 차지연과 씨제스 엔터테인먼트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박혜나가 명성황후 역에 더블캐스팅됐다. 두 사람은 2016년 뮤지컬 '위키드' 라이선스에서 엘파바 역을 번갈아 연기한 적이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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