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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생각]당신은 지금 어디에서 일하고 계십니까

등록 2020.06.25 13:00:00수정 2020.06.26 10:3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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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기태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서울=뉴시스]박기태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서울=뉴시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많은 사람들의 노동형태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전 세계 어디에서든 인터넷 접속이 가능하다면 시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업무를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원격근무는 코로나19 이전에도 정보통신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꾸준히 확산되고 있었다. 언택트(untact)를 통해 바이러스의 확산을 막고 노동자를 보호함으로써 인적자본을 유지하고자 하는 기업의 노력이 원격근무의 증가에 기여한 것도 사실이다.

원격근무가 확산되면서 기존과는 다른 노동 규범 역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조직이 개인의 삶보다 우선되어야 하며 노동자는 항상 일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이상적 노동자상에 변화 조짐이 발견되고 있다.

기존에는 근태를 중심으로 조직에 대한 충성도를 측정했다면 이제는 개인에게 부여된 과업을 정해긴 기간 내에 마쳤는지, 개인과 조직, 조직과 조직 사이의 계약이 완벽하게 실현되고 있는지가 새로운 성과평가의 방식으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코로나19가 원격근무의 도입과 사용을 촉진함으로써 자기 계발에 투자할 시간과 가족과 보낼 시간을 늘려주어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효과를 만들고 있기도 하다.

개인의 삶을 위협하는 코로나19가 역설적으로 일과 관련된 우리의 삶에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 속도는 느릴지라도 거스를 수 없는 새로운 트렌드가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모든 노동자가 새로운 트렌드를 경험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캘리포니아대학 로버트 라이히(Robert Reich) 교수의 영국 가디언지 기고문에 따르면 코로나19 시대에 노동자는 총 4개의 계급으로 분화되고 있다.

가장 상위에 있는 원격근무가 가능한 노동자들은 대부분 전문직, 관리직, 기술직 인력으로 노트북 컴퓨터를 이용해 사무실 외부에서 장시간 업무를 온라인으로 할 수 있다. 이 그룹에 속한 사람들은 코로나19 이전과 거의 동일한 임금을 받으며 대면접촉이 없기 때문에 코로나19의 노출 가능성 역시 낮다.

두 번째 계급은 필수노동자이다. 코로나19 상황에서 가장 바쁜 의료노동자와 현 상황에도 사람들과 수시로 대면해야 하는 육아, 배달, 공공분야 노동자들이다. 위기 상황에도 꼭 필요한 이들은 코로나19에 따른 경기침체로 일자리를 잃지는 않는다. 하지만 코로나19의 감염에 일상적으로 노출되어 있으며 상당수가 임금의 감소를 경험한다.

세 번째 계급은 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로 제조업 및 요식업 종사 노동자가 대표적이다. 경기침체에 따라 임금을 받지 못하거나 직장을 잃은 사람들이다. 한국에서는 소득이 급감한 자영업자가 대표적인 그룹이라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한국에는 상대적으로 소수라 할 수 있는 잊혀진 노동자가 있다. 교도소나 이주자 수용소, 노숙인 수용시설 등에 있는 사람들을 지칭하는데 이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가 불가능한 밀집된 공간에 거주한다. 한국의 경우 미등록 이주노동자가 대표적인 그룹이다.

개인의 인적자본과 직업 특성에 따라 코로나19에 따른 노동의 장소와 강도, 임금 및 자산의 변동 가능성, 실직 가능성, 코로나19 감염 가능성에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코로나19가 새로운 미래를 열었다고 하지만 동시에 또 다른 불평등의 미래를 열었다고 할 수 있다.

코로나19가 가져온 새로운 사회현상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먼저, 원격근무 제도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현재 원격근무는 해당 법령이 없으며 유연근무제를 활용하는 방식으로 노동자에게 제공되고 있다.

유연근무제는 일-가정 양립제도의 일종으로 인식되고 있어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및 관련 규정에 따라 운영이 되고 있다. 그러나 감염병에 대한 대응보다는 양성평등의 관점에서 접근하기에 현재의 위기 상황에는 적절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 관련 법령을 정비하되 양성평등의 관점을 넘어 일과 삶의 패러다임 전환을 유도할 수 있는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 수혜자에 대한 확대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고용보험에 가입한 안정적 직장과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가진 2중 3중의 보호를 받는 노동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혜택을 볼 수 있는 정책이 필요하다. 전 국민 고용보험 도입까지는 아니더라도 현재의 긴급 상황에서 개인에게 주어진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원격근무가 가능케 하는 묘수가 필요하다.

동시에 원격근무에서 배제된 사람들을 일반인들이 인식하도록 하는 노력도 필요하다. 대통령 및 유명인 중심의 '덕분에' 캠페인 덕분에 의료노동자의 수고는 상대적으로 많은 조명을 받고 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발생한 고용 충격, 소비절벽 등은 노동자 사이의 격차를 확대하고 있으며 일부는 생계마저 불가능하다.

심지어 스스로를 보호할 마스크조차 없는 이주노동자는 잊혀져있다. 필수노동자들이 충분히 보호받지 못하고 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생계를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일터에 나가고 잊혀진 노동자들이 진짜로 잊혀진다면 우리 모두의 안전이 위태로워질 것이다. 사회 전체가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관점을 갖고 일부의 문제가 아닌 사회 전체의 문제로 인식하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하다.

코로나19가 건강과 안전의 위기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종이 위에만 머무르던 원격근무와 일-가정 양립을 실질적으로 구현해 볼 수 있고 새로운 제도와 새로운 직장 규범을 도입하고 더 나아가 사회 전체를 돌아볼 기회를 제공했다는 측면에서 코로나19는 어쩌면 또 다른 기회일지도 모른다.

박기태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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