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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 문화소통]훈민정음 해례본에 쓰인 거성 ‘和°(화답할 화)’

등록 2020.07.01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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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대종의 ‘문화소통’

[서울=뉴시스] <사진1> 훈민정음 해례본에 쓰인 ‘和(화)’자들. 권점 없는 ‘和’는 ‘평정→조용함→소리 낮음’을, 거성 권점 붙은 ‘和°’는 ‘화답하다’를 뜻한다.

[서울=뉴시스] <사진1> 훈민정음 해례본에 쓰인 ‘和(화)’자들. 권점 없는 ‘和’는 ‘평정→조용함→소리 낮음’을, 거성 권점 붙은 ‘和°’는 ‘화답하다’를 뜻한다.

[서울=뉴시스]  ‘和合(화합)’, ‘調和(조화)’ 등에 쓰이는 ‘和(화)’자는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총 5회 쓰였다. 초성과 중성의 관계를 설명하는 해례편 7~8장의 “初聲以五音淸濁和之於後”와 <사진1>에서 보듯, 해례편 13장 뒷면의 “中聲唱之初聲和, 天先乎地理自然. 和者爲初亦爲終”, 22장에서 평성과 상성을 설명하는 대목 “平聲安而和, 春也... 上聲和而擧, 夏也” 중에 쓰였다.

그런데 7~8장과 13장에 쓰인 ‘和’자는 글자의 윗부분 오른쪽에 거성 권점이 붙어 있고, 22장에 쓰인 두 ‘和’자에는 권점이 없다. 4성 권점과 관련한 이전 글들에서 몇 차례 밝힌 것처럼, 어떤 글자에 권점이 달려 있으면 각별히 신경 써서 대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 의미가 아닌 특수 의미로 쓰였다는 주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거성 권점 붙은 ‘和°(화)’는 ‘소리를 서로 맞추다(聲相應) → 화답하다’의 뜻을 나타낸다. 고로 해례편 7~8장의 “中聲以深淺闔闢唱之於前, 初聲以五音淸濁和°之於後, 而爲初亦爲終 亦可見萬物初生於地 復歸於地也.”는 “중성이 혀의 수축 정도의 심하고 약함, 개구도(발음할 때 입을 벌리는 정도)의 크고 작음으로써 앞에서 먼저 부르면, 초성은 아설순치후 5음의 청탁(짧은 소리와 긴소리)으로써 뒤따라 화답하여, 초성이 되고 또 종성이 된다”로 해석된다.

또 해례편 13장의 “中聲唱之初聲和°, 天先乎地理自然. 和°者爲初亦爲終, 物生復歸皆於坤”는 “중성이 선창하고 초성이 화답함은 하늘이 땅에 우선하는 자연의 이치다. 화답하는 것은 초성이 되고 또 종성이 되니, 만물은 (땅에서) 나서 모두 땅으로 다시 돌아간다”로 해석된다. 훈민정음에서 중성이 초성보다 더 먼저라는 위 말에 대해서는, 2020년 2월26일자 <로마자 ‘모음’은 ‘중성’이 결합된 목소리다> 편을 참고하기 바란다.

그렇다면 ‘和’에 ‘화답하다’의 뜻이 있는 것은 왜일까? 먼저 <사진2>에서처럼 ‘和’의 본래 자형인 ‘龢(화)’를 살펴야 한다. ‘龢(→和)’의 음 ‘화’는 구성자인 ‘禾(화)’에서 비롯됐다. 곡식이 여물어 이삭을 드리운 모습의 ‘禾’자는 ‘곡식’에서 나아가 ‘禾’자가 포함된 갑골문의 ‘年’처럼 ‘풍성한 수확’을 의미한다. 또한 ‘수확’에서 더 나아가 ‘거두어들이다→받아들이다→(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함께 사이좋게 지내다 → 잘 어울리다(和)’의 뜻도 나타낸다.

‘龢(화)’의 구성자인 ‘龠(약)’은 죽간을 엮어 만든 ‘冊(책)’처럼 구멍(口) 뚫은 죽관 여러 개를 한데 모아(亼: 모을 집) 만든 전통 악기 ‘생황’ 류의 관악기를 표현한 글자다. 고로 ‘龢(和)’는 길고 짧은 여러 죽관들이 한 개의 바가지 속에 모여 화음을 내는 생황(龠)처럼 서로 잘 어울려(禾) 하나가 되는 모습에서 ‘서로 잘 어울림(調和), 편안, 평정(平靜)’ 등을 뜻한다.

[서울=뉴시스] <사진2> 和(화)의 글꼴 변천과 풀이. ‘和’의 본자 ‘龢(화)’에서 ‘龠(약)’은 화음을 내는 전통 관악기 ‘생황’임. 연주 시에 큰 생황이 선창하면 작은 생황인 ‘和’가 화답하는 데서 ‘和’는 거성으로써 ‘화답하다’를 뜻함.(해석: 박대종)

[서울=뉴시스] <사진2> 和(화)의 글꼴 변천과 풀이. ‘和’의 본자 ‘龢(화)’에서 ‘龠(약)’은 화음을 내는 전통 관악기 ‘생황’임. 연주 시에 큰 생황이 선창하면 작은 생황인 ‘和’가 화답하는 데서 ‘和’는 거성으로써 ‘화답하다’를 뜻함.(해석: 박대종)

‘이아(爾雅)’에 따르면, 여러 개의 죽관들이 한 개의 바가지 안에 모여 있는 생황의 모습이 마치 ‘새집(巢)’ 같아 큰 생황은 ‘소(巢)’라 칭했다. ‘예서(禮書)’ 권125에서는, 연주 시에 큰 생황이 선창(先倡)하면 작은 생황(小笙)이 화답하므로, 작은 생황은 ‘화(和)’라고 일렀다고 밝혔다. ‘和’자에 거성으로써의 특수 의미 ‘화답하다’의 뜻이 있게 된 까닭이다.

한편, 해례편 22장 “平聲安而和, 春也, 萬物舒泰. 上聲和而擧, 夏也, 萬物漸盛.”에서의 권점 없는 ‘和’는 평성으로써 ‘평정(平靜: 조용함)’에서 나아가 ‘소리가 낮다’의 뜻으로 쓰였다. 고로 4성 관련 중요한 설명인 해당 문장은 다음과 같이 번역된다. “평성은 편안하고 조용하니(=소리 낮으니) 봄이라, 만물이 편안하고 안락하다. 상성은 (처음엔) 낮다가 (위로) 올라가니 여름이라, 만물이 점점 성해진다.”(해석: 박대종)

대종언어연구소 소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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