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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생채기만 남기는 일방행정 이제 그만

등록 2020.07.01 16: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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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생채기만 남기는 일방행정 이제 그만

[세종=뉴시스] 변해정 기자 = 환경부가 최근 '제품의 포장재질·포장방법에 관한 기준 등에 관한 규칙'(일명 재포장금지규칙)의 시행 시기를 내년 1월 이후로 미뤘다. 이해 관계자들의 의견을 더 들어보겠다는 것인데 시행을 고작 열흘 앞둔 때였다.

여러 제품을 한데 묶어 할인된 가격으로 파는 '묶음 할인' 판매를 할 때 재포장을 하지말라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이 묶음 할인 판매 자체를 금지하는 것으로 알려진 탓이었다. 환경부의 해명에도 논란은 좀체 수그러들지 않았다. 

과대포장을 줄여 환경오염을 줄이겠다는 취지가 기업의 판촉 행위를 규제하는 것으로 의심받은 배경에는 '일방 행정'이 있었다. 국민에게 의무를 지우고 불편을 감수하게 만드는 정책은 사소한 것일지라도 치밀한 설계와 충분한 검증이 기본이다. 적극적인 홍보도 수반돼야 한다. 그러나 이런 과정 없이 시행 예고를 한 뒤 별다른 조치도 하지 않다가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가이드라인을 툭 내민 것이다.

쏙 빼닮은 사례가 있다. 행정안전부가 '데이터 3법' 중 핵심인 개인정보보호법(개보법) 시행령의 독소조항을 뒤늦게 손본 일이다.

4차 산업혁명의 쌀로 불리우는 데이터를 보다 폭넓게 활용할 수 있는 길을 열겠다면서 업계 의견은 귀 담아 듣지 않고 규제를 푸는 '시늉'만 냈다. 시행령이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모호해 데이터 수집·활용 사업을 추진하기 어렵고 자칫하면 범법자가 될 위험도 크다는 업계의 거듭된 반발에도 유예기간을 뒀다는 이유만으로 묵살했다. 그러다 결국 시행을 두 달 앞두고 문제의 조문 2곳을 수정 또는 삭제해 규제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시장에 문제가 생기면 정확한 원인을 밝혀내 해결책을 찾는 게 정부의 역할이다. 이때 기준은 국민 전체의 이익이어야 하고 해결책으로 예상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도까지 담아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정부는 국민 입장에서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어설픈 땜질식 처방의 남발로 혼란만 부추긴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부작용을 걱정해 낡은 규제 하나 없애고 서너 개의 새 규제를 만들어내는 행태를 밥 먹듯 한다는 푸념도 그냥 넘겨선 안 된다.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고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꾸는 행정은 우리 경제·사회에 큰 생채기만 남길 뿐이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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