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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뮤지컬 '제이미', 혐오의 시대 '경쾌한 위로가'

등록 2020.07.12 09:3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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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AM 조권·신주협·아스트로 MJ·뉴이스트 렌

국내 라이선스 초연, 9월11일까지 LG아트센터

[서울=뉴시스] 뮤지컬 '제이미' 중 뉴이스트 렌. 2020.07.12. (사진 = 쇼노트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뮤지컬 '제이미' 중 뉴이스트 렌. 2020.07.12. (사진 = 쇼노트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사회가 진화 대신 퇴보를 거듭하는 건 세계적인 현상이다. 증거는 곳곳에 산재했다. 혐오가 그것이다. 점차 다름을 인정하기는커녕 역병이 창궐하는 시대와 맞물려, 혐오는 전염병처럼 퍼져나가고 있다.

최근 국내 라이선스 초연을 개막한 뮤지컬 '제이미'는 혐오의 시대에 '다르다고 비난 받는 이들'을 위한 경쾌한 위로가다.

 2011년 영국 BBC에서 방영된 다큐멘터리 '제이미: 열여섯 살의 드랙퀸'을 뮤지컬로 옮겼다. 2017년 영국 셰필드에서 초연했고 아시아 지역에서는 한국에서 처음 선보이고 있다.

남성이 예술이나 오락 등을 목적으로 여장을 하는 '드래그 퀸'을 꿈꾸는 당찬 17세 고등학생 제이미가 세상 편견에 맞서 자신의 꿈과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빨간 하이힐'에 설레하는 제이미는 아빠와 헤어진 엄마와 살아가지만 구김살이 없다. 자신을 언제나 응원해주는 엄마 '마가렛'과 이모 '레이', 무슬림 출신의 우등생 친구 '프리티'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드래그 퀸 '나나나'가 돼 '또 다른 나'를 찾는다.

하지만 어릴 때 황금빛 옷을 입고 마돈나를 흉내 낸 자신의 모습을 본 아빠가 여전히 자신을 역겁게 여긴다는 것을 안 뒤 제이미는 자기혐오에 빠진다.

교실에서 자신을 혐오하는 '딘'을 비롯해 바깥의 공격에는 당당히 맞서는 제이미지만,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자기혐오에는 제이미도 속절없다.

[서울=뉴시스] 뮤지컬 '제이미'. 2020.07.12. (사진 = 쇼노트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뮤지컬 '제이미'. 2020.07.12. (사진 = 쇼노트 제공) [email protected]

하지만 제이미는 더러운 강물에서 부유의 나날만 보내지 않는다. 엄마, 이모, 프리티, 그리고 전설의 드래그 퀸 '로코 샤넬'로 업계를 평정했던 멘토 '휴고'의 지지와 응원에 힘입어 용기를 낸다. 과장된 드래그 퀸 의상·분장도 내던지고 '또 다른 나' 대신 '내 안의 나'를 찾는다.

지역, 문화권마다 그 형태는 다르더라도 혐오와 차별은 어디나 있다. 소수자, 여성 관련 인터넷 뉴스에 달리는 댓글만 봐도 우리나라의 혐오·차별은 극심함을 알 수 있다. 

'제이미'는 드래그퀸을 꿈꾸는 소년의 생기발랄한 성장담을 통해 우리 사회에 찌들어 있는 혐오에 지친 모든 소수자·소외된 자를 위로한다. 제대로 할 줄 아는 것 없이 작은 교실에서 제이미·프리티를 비롯해 약자만 괴롭히는 덩치 큰 '딘'처럼 별 것 아닌 우리의 모습을 들키지 않으려고 혐오를 수단으로 사용하는 건 아닌가 돌아보게도 된다.

이런 가려움을 유쾌하게 긁어주는 '제이미'의 또 다른 매력은 '끼쟁이'인 제이미를 맡은 배우들의 열연이다.

'깝권'으로 통하는 보컬그룹 '2AM' 멤버 조권을 비롯해 안정적인 연기력의 뮤지컬배우 신주협, 이번 '제이미'로 뮤지컬에 데뷔하는 그룹 '아스트로' MJ(김명준)·그룹 '뉴이스트' 렌(최민기)은 저마다의 매력으로 제이미 역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특히 지난 9일 공연에서 타이틀롤로 나선 렌은 데뷔작임에도 여유 있는 태도, 능숙한 강약 조절로 무대뿐만 아니라 객석까지 들썩거렸다. 코로나19에도 마스크를 낀 채 객석을 가득 메운 팬들의 큰 박수 소리는 새로운 뮤지컬스타 탄생을 예고했다.

[서울=뉴시스] 이윤청 기자 = 8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열린 뮤지컬 제이미 프레스콜에서 렌(뉴이스트)을 비롯한 배우들이 열연하고 있다. 뮤지컬 제이미는 9월 11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2020.07.08. radiohead@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윤청 기자 = 8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열린 뮤지컬 제이미 프레스콜에서 렌(뉴이스트)을 비롯한 배우들이 열연하고 있다. 뮤지컬 제이미는 9월 11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2020.07.08. [email protected]

사실 국내에서 아이돌도 편견과 혐오를 이겨낸 직종이다. 지금이야 뉴이스트, 아스트로 같은 K팝 아이돌 그룹이 국위를 선양한다며 각광받고 있다. 하지만 실력은 톺아보지도 않고 남성 아이돌 그룹 멤버들이 화장을 짙게 한 채 무대 위에 오른다는 이유만으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때도 있었다.

옥주현, 김준수 같은 아이돌 출신들이 증명의 과정을 거듭한 터라 지금은 별 다른 이의 제기가 없지만 뮤지컬 무대에 아이돌이 입성하는 것에 대한 반감도 꽤 오랜 기간 지속됐다.  

때마침 '앤드 유 돈트 이븐 노 잇(And You Don't Even Know It)'을 비롯해 K팝을 떠올리게 하는 넘버와 춤이 다수 삽입된 '제이미'는 아이돌에게 최적화된 뮤지컬로도 보인다.
 
극 중에서 직업 적성 검사에서 제이미에게 알맞다고 나온 포크 레인 기사나, 무대 위 화려한 아이돌이나 신성한 노동임은 마찬가지다.

'제이미'는 또 한 교실에 유럽 사람부터 히잡을 쓴 아랍계 등을 다양하게 섞어 자연스레 다양성 사회도 반영한다.

[서울=뉴시스] 이윤청 기자 = 8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열린 뮤지컬 제이미 프레스콜에서 렌(뉴이스트)이 열연하고 있다. 뮤지컬 제이미는 9월 11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2020.07.08. radiohead@newsis.com

[서울=뉴시스] 이윤청 기자 = 8일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에서 열린 뮤지컬 제이미 프레스콜에서 렌(뉴이스트)이 열연하고 있다. 뮤지컬 제이미는 9월 11일까지 LG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2020.07.08. [email protected]

이처럼 '제이미'는 안팎으로 다양한 사회적 함의를 유쾌하게 풀어낸 수작임에도 제작사 쇼노트 내부에서는 공연 올리기 잔에 많은 고민을 안긴 작품이다. 기존 이 제작사 작품인 '헤드윅' '조지아 맥브라이드의 전설'에 이어 또 다시 드래그 퀸을 소재로 한 작품을 선보이면, 기획 의도와 달리 회사의 색깔이 다소 치우쳐 보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메시지를 차치하고서라도 음악과 안무의 세련됨 만으로도 제이미는 기존 비슷한 소재의 작품과 차별화된다. 쇼노트 송한샘 프로듀서는 "밀레니얼 세대가 좋아할 만한 K팝적인 요소도 있고 우리 공연계의 지평을 넓혀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뮤지컬 '스위니토드' '마틸다' '렌트' '시스터 액트' 등을 맡았던 김수빈 번역가의 재기발랄하면서 시대와 조우하는 번역은 이번에도 여전하다.

'제이미'에서 '드래그 퀸'은 일종의 상징이다. 화려한 가발을 쓰지 않아도, 드레스를 입지 않아도, 너만의 아름다움을 찾아내면 드래그 퀸이 될 수 있다는 작품 속 메시지는 결국 모든 이들에게 너만의 '아름다움은 무엇이냐'라는 물음으로 귀결된다.

제이미가 드래그퀸이 되면서 예명으로 사용한 '나나나'는 영어 원작에서 '미미 미(MIMI ME)'다. '나'가 이처럼 강조되는 예명이라니. '나는 나'라는 사실을 새삼 절감하다보면, 2막의 첫 번째 곡 제목이자 원제 '에브리바디스 토킹 어바웃 제이미(Everybody's Talking About Jamie)'처럼 모두 제이미의 이야기를 할 거라고 확신한다. 자기혐오에 시달리는 이들이 용기를 얻는 것도 물론이다. "야 너도 할 수 있어. 제이미처럼."

오는 9월11일까지 LG아트센터. 제이미의 곁에서 그를 지지하며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엄마 마가렛 역에는 1세대 뮤지컬 배우 최정원과 카리스마와 실력을 겸비한 김선영이 캐스팅됐다. 제이미의 멘토 '휴고' 역은 윤희석과 최호중이 나눠 맡는다.

'더 필링'의 리드보컬이자 '제이미'의 작곡가 댄 길레스피 셀즈, 브로드웨이와 웨스트엔드를 넘나드는 연출가 조나단 버터렐, 영국 TV 드라마 '닥터 후'의 작가 톰 맥레 등이 오리지널 창작진이다. 한국 라이선스에서는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따듯한 시선을 그린 뮤지컬 '안테모사'로 주목 받은 심설인 연출을 비롯 김문정 음악감독, 이현정 안무감독, 오필영 무대 디자이너 등이 뭉쳤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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