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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머리로 먹는 음식극…'식사'

등록 2020.07.16 09: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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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인문극장 2020: 푸드 FOOD' 마지막 작품

[서울=뉴시스] 연극 '식사'. 2020.07.16. (사진 = 두산아트센터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연극 '식사'. 2020.07.16. (사진 = 두산아트센터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음식은 파블로프의 개처럼 마주하는 이를 즉각적으로 무장해제시킨다.

'두산인문극장 2020: 푸드 FOOD' 마지막 연극인 '식사(食事)'는 음식과 먹는 행위 안에 작동하는 인간의 '욕망'을 좀 더 이성적으로 톺아본다. '머리로 먹는 연극'이라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식사'라는 사건을 지적으로 다룬 작품이다.

'ㄷ'자 모양의 일본식 식당 카운터 같은 형태가 무대 한 가운데 펼쳐져 있다. 일부 관객은 그 카운터에 앉아 네 명의 작·연출가가 직접 요리를 하는 과정을 '목격'할 수 있다.

일반적인 서사가 따로 있지 않다. 극단 그린피그 대표 윤한솔을 중심으로 시각예술 등의 작업을 주로 하는 안데스 작가, '정치적인 식탁'의 이라영 작가, 현대미술가 조문기 작가가 공동창작했는데 각자 사연이 직간접적으로 얽힌 음식들을 만들어내면서 맥락을 만들어낸다.

예컨대, 이라영 작가는 '고모의 말년' 에피소드에서 점점 기억을 잃어가는 고모에 대해 이야기한다. 고모가 자신은 알아보지 못하는데 '밥 주는 반장 아주머니'를 환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걸 목격한 일화다. 고모가 평소 빵을 좋아했던 만큼, 이 작가는 고모에게 빵을 가져다주기로 한다. 그녀가 이번 '식사'에서 주로 만드는 음식은 '비건 베이커리'다.

이와 함께 육식을 하지 않기로 한 안데스 작가가 두부를 만드는 등 각자 삶의 신념, 가치관, 겪은 일들이 음식의 또 다른 재료가 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각자만의 레시피가 있다는 것을 떠올리게 한다.
 
이번 '식사'의 또 다른 특징은 다양한 책에서 음식 등과 관련된 구절을 낭독함으로써, 사회적 맥락을 만들어간다는 것이다. 한승태 '고기로 태어나서', 김지은 '김지은입니다', 박찬일 '노포의 장사법', 서한영교 '두 번째 페미니티스트', 박완서 '두부', 비 윌슨 '식사에 대한 생각', 록산 게이 '헝거' 등의 문장은 음식냄새를 타고 제한된 공간에서 시공간을 꿰뚫는 결과물을 만들어낸다.

[서울=뉴시스] 연극 '식사'. 2020.07.16. (사진 = 두산아트센터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연극 '식사'. 2020.07.16. (사진 = 두산아트센터 제공) [email protected]

음식을 만드는 데 사용한 재료의 유통 과정을 화면에서 그림으로 요약해주는 장면은 우리가 음식을 먹는 행위가 어떤 노동을 거쳐서 완성되는지를 상기시켜준다.

이번 '식사'의 뚝심은 여기에 있다. '식사'가 공연 중인 스페이스111은 두산아트센터가 문을 열 당시 두산그룹에서 운영하던 생맥주집 '비어할레' 자리였다. 당시 다른 맥줏집보다 가격이 다소 비쌌으나 세련된 스타일과 연강홀을 찾는 손님들 덕에 항상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비어할레가 맥주체인점으로 한창 번성했을 때와 현재의 상황을 영상에 녹화된 매니저의 증언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비어할레는 종로5가역 인근의 건물로 옮겼고, 현재 스페이스111은 실험연극의 성지로 통한다. 그런 곳에서 요리를 하며 과거를 돌아보는 일은 우리의 식문화가 사회의 다양한 요소들과 거미줄처럼 연결돼 있다는 것도 확인시켰다. 비어할레는 코로나19 이후 고객 수가 급감했다고 한다.

코로나19는 이번 '식사'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창작진은 만든 음식을 원래 관객과 나눌 계획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결국 나누지 않기로 판단했다. 지금 사회가 처한 상황까지 반영하는 이 유연함. 배를 채우는 대신 머리는 채운 '머리로 즐기는 미식'이라 할 만한 흥미로운 작품이다.  

두산아트센터는 코로나19로 인해 위축된 공연예술계를 위해 '두산인문극장 2020: 푸드'의 첫 번째 작품이었던 '1인용 식탁', 두 번째 작품 '궁극의 맛'에 이어 '식사'도 무료 공개하고 있다. 오는 18일까지 스페이스111.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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