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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광주·전남 '역대급 물난리' 인재(人災)로 드러나

등록 2020.08.10 15: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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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 공사 중이던 야산서 산사태 5명 사망…경찰 관련성 수사

나주 문평천 일대 농지 808㏊ 침수…"죽산보가 물 흐름 저해"

광주 서창 배수문 안 닫혀 '농약 섞인 바다'로…"행정당국 탓"

집중호우 변화 양상에 맞춰 수해 예방·대응 기준 재정비 필요

[곡성=뉴시스] 류형근 기자 = 8일 오전 전남 곡성군 오산면 성덕마을 산사태 사고 현장에서 소방당국 등이 토사에 매몰된 실종자 구조작업을 하고있다. 전날 오후 8시29분께 마을 뒷편의 야산에서 흘러내린 토사가 4가구를 덮쳐 3명이 숨졌으며 2명이 매몰돼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20.08.08.  hgryu77@newsis.com

[곡성=뉴시스] 류형근 기자 = 8일 오전 전남 곡성군 오산면 성덕마을 산사태 사고 현장에서 소방당국 등이 토사에 매몰된 실종자 구조작업을 하고있다. 전날 오후 8시29분께 마을 뒷편의 야산에서 흘러내린 토사가 4가구를 덮쳐 3명이 숨졌으며 2명이 매몰돼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2020.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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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기록적인 '물 폭탄'이 쏟아진 광주·전남에서 발생한 산사태·하천 범람·침수 등 막대한 피해가 안일한 재난행정이 낳은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나온다. 

10일 광주시·전남도 등에 따르면, 지난 7일 오후 8시29분께 곡성군 오산면 성덕마을 뒤편의 야산의 토사가 무너져 내리면서 주택 5채를 덮쳐 주민 5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산사태 피해 주민들은 "산사태가 발생하기 앞서 야산 중턱의 국도 15호선 도로 확장 공사 현장에서 발파 작업이 수차례 있었다"며 공사와 산사태 간 관련성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산사태가 시작된 지점이 도로 확장공사 현장과 이어져 있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에 따라 경찰이 국도15호선 확장공사가 산사태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토사에 덮혀 버린 주택구조물 등을 수거했으며, 붕괴 주택의 위치와 야산과의 거리 등을 파악하고 있다.

확장 공사와 산사태 사이의 인과 관계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호우에 앞서 피해 예방을 위한 안전 조치 등이 제대로 이뤄졌는지가 도마위에 오를 전망이다.
[나주=뉴시스]이창우 기자 = 9일 하늘에서 본 나주 영산강 중류 구간 대홍수 침수현장. 불어난 강물이 지천으로 역류하는 바람에 지난 8일 오후 3시30분께 문평천 제방이 붕괴돼 수마가 덮친 나주 다시면 복암·가흥·죽산들 농경지 532㏊(160만평)와 복암리 고분군 일부가 이틀째 물속에 잠겨 있다. (사진=나주시 제공) 2020.08.09  photo@newsis.com

[나주=뉴시스]이창우 기자 = 9일 하늘에서 본 나주 영산강 중류 구간 대홍수 침수현장. 불어난 강물이 지천으로 역류하는 바람에 지난 8일 오후 3시30분께 문평천 제방이 붕괴돼 수마가 덮친 나주 다시면 복암·가흥·죽산들 농경지 532㏊(160만평)와 복암리 고분군 일부가 이틀째 물속에 잠겨 있다. (사진=나주시 제공) 2020.08.09 [email protected]


1989년 이후 30여 년만에 유래를 찾기 힘든 대홍수로 피해를 입은 나주 다시면 일대도 보·제방 관리 및 보완 부실이 피해가 커진 원인으로 꼽히고 있다.

지난 8일 오전부터 폭우로 죽산보 인근 문평천 제방이 범람 위기에 몰렸고, 오후 3시30분께 문평천·봉황천 제방이 잇따라 무너지며 복암·가흥·죽산리 일대 농경지 808㏊가 침수됐다.

지난 7일부터 이틀간 누적 강수량이 최대 390㎜에 달해 '어쩔 도리 없는 천재지변'이라는 시각도 있지만, 상당수의 농민들은 '영산강변 보·제방·수로 등이 화를 키웠다'고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죽산보의 물 흐름 장애'와 '문평천 둑 높이기 사업 좌절' 등으로 강 범람 뒤 역류한 물이 곧바로 민가를 덮쳤고, 수해 이후 물 빠짐도 원활치 않다는 것이 농민들의 주장 요지다.

다시면 죽산리가 고향인 이종행씨는 "죽산보가 강물 흐름을 가로 막아 수위가 5m 이상 높아졌고, 문평천에서 내려오는 물이 흐르지 못하다 영산강물이 문평천으로 역류한 것은 인재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죽산리 죽지마을 주민 이건창씨도 "4대강사업 당시 죽산보를 축조하고 소하천 제방을 쌓을 때 둑·제방의 규모 차이에 따른 한계 수위를 제대로 감안하지 않았다"며 동조했다.

실제 농민들은 '문평천 제방의 폭이 좁고 둑 높이가 낮다'며, 제방 보강을 수 차례 건의하기도 했다.

또 다른 주민은 "거듭된 건의에도 정부는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제방을 사실상 방치하더니 결국 터지고 말았다"며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도 좋으니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달라"고 호소했다.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8일 광주 서구 서창동 영산강변 내 서창농협 영농자재센터 일대가 폭우로 불어난 강물에 침수됐다. 행정당국은 유실된 농자재·농약에서 나온 유해성분이 강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고자 방제·배수 작업을 펼치고 있다. 이날 영산강 수계 전역에는 홍수 경보가 발령됐다. (사진=독자 제공) 2020.08.08.  photo@newsis.com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8일 광주 서구 서창동 영산강변 내 서창농협 영농자재센터 일대가 폭우로 불어난 강물에 침수됐다. 행정당국은 유실된 농자재·농약에서 나온 유해성분이 강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고자 방제·배수 작업을 펼치고 있다. 이날 영산강 수계 전역에는 홍수 경보가 발령됐다. (사진=독자 제공) 2020.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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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변과 인접한 광주 서구 서창동 일대 침수 사태도 배수문 운영·관리를 둘러싼 허술한 대응이 원인으로 꼽힌다.
 
지난 8일 오전 7시부터 광주 서구 서창·마륵·벽진동 송정방수제 인근 일대가 인근 영산강에서 역류한 물에 잠겼다. 주택 50여 채가 침수 피해를 입었고 이재민 60여 명이 발생했다.

특히 서창농협·영농자재센터 등도 침수돼 보관 중이던 농약과 농자재가 범람한 강물과 섞여 행정당국이 이날까지 사흘째 긴급 방제·배수 작업을 벌이고 있다.

서창동 일대는 영산강보다 저지대로, 인근 강변에는 재해 예방 목적의 제방 배수통문 2개가 설치돼 있다. 배수통문은 강물이 불어나 역류할 우려가 클 때 폐쇄, 강물의 마을 유입을 막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배수문 운영을 맡은 서구청이 당일 뒤늦게 폐쇄를 시도했으나 닫히지 않았다. 인력으로 배수문을 닫으려 했으나 실패해 막대한 강물이 유입, 침수 피해를 키웠다.

서구가 관리주체인 익산국토관리청 광주국토관리사무소에 협조를 요청했다. 하지만 오후 2시에서야 실무자가 현장에 도착, 비상 장비를 동원해 수문을 곧바로 폐쇄했다.

 그 사이 서창동 일대는 이미 '농약 등이 뒤섞여 악취가 나는 물바다'로 변했다.

주민들은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면서 강물이 막 유입되던 새벽시간대에 미리 배수문을 닫지 않아 화를 키웠다고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발빠르게 배수문을 조작하지 않은 운영주체와 정작 필요한 순간에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설비를 방치한 관리주체 모두 '사실상 손을 놨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서창동 주민 강모(66)씨는 "강변과 가까운 농협 건물이 침수될 때만이라도 배수문을 제대로 닫았으면 추가 침수는 막을 수 있었다"며 "관계 공무원들이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해 안타깝다"고 밝혔다.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정세균 국무총리가 9일 전남 담양군 무정면을 방문, 수해현장을 살피고 있다. (사진=국무총리실 제공) 2020.08.09.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고승민 기자 = 정세균 국무총리가 9일 전남 담양군 무정면을 방문, 수해현장을 살피고 있다. (사진=국무총리실 제공) [email protected]

기상관측 사상 유래없는 '물 폭탄'이었다지만, 산간 지역 산사태 예방 시설과 강·하천 제방 및 배수 설비를 근본적으로 정비했다면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특히 최근 기후온난화 등으로 국지적 집중 호우가 잦아졌고 강수량도 크게 늘어난 만큼, 기존 수해 예방·대응책을 크게 손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전날 광주·전남 수해현장을 찾은 정세균 총리도 "늘 현 시점에서 재해 피해를 줄이기 위한 방안을 강구, 실천해야 한다"며 "과거보다 집중호우의 빈도가 잦고 피해가 커지고 있는 만큼, 현 수해 대책의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정 총리는 "전문가 협의를 거쳐 범정부 차원에서 수해 대책 전반을 점검하고 대응 기준을 새롭게 마련하겠다"며 행정안전부 등 관계부처의 검토를 주문하기도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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