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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도현 "詩가 해야될 일은 작은 것에 더 관심가지는 것"

등록 2020.09.22 13:5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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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절필선언, 2017년 복귀 이후 첫 시집 출간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서울=뉴시스]시인 안도현 신작 시집 온라인 기자간담회. (사진 = TV창비 캡처) 2020.09.22.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시인 안도현 신작 시집 온라인 기자간담회. (사진 = TV창비 캡처)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임종명 기자 = '연탄재 함부로 차지 마라'라는 구절이 포함된 시 '너에게 묻는다'로 유명한 안도현 시인이 8년 만에 신작 시집으로 돌아왔다.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안도현 시인은 22일 진행된 온라인 기자간담회에서 30년 넘게 시를 써오면서 세상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음을 밝혔다.

그는 "80년대에 20대를 보냈다. (그때는) 시인으로서, 세상의 큰 움직임을 시인이 만들어가야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시가 세상 바꾸는데 역할도 해야하고 실제로 그렇게 믿었던 적도 있고"라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곧 "시간을 살아보니까 시로 세상을 바꾸려고 했던 열정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게 아니라, 시가 해야될 일은 커다란 일 보단 작은 것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80년대에 시를 쓰는 제 머리속에는 민주화, 통일, 노동해방 등 이런 개념들이 너무 많이 있었다. 그런데 좀 더 작고 느리고, 이런 것의 가치를 시로 쓰는 것도 중요한 것이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시를 써왔다는 안 시인은 1981년 대구매일신문 신춘문예에 '낙동강'이 당선되면서 데뷔했다.

등단 이후 안 시인의 행보는 '저항'의 이미지를 많이 띠었다. 제5공화국 등 정치적, 시대적 상황이 영향을 미쳤다.

실제 안 시인은 1985년 전북에서 중학교 국어교사로 활동하다 해임됐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정회원이라는 이유에서다.

2012년,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도종환 당시 국회의원의 시와 산문을 중학교 교과서에서 삭제할 것을 권고해 논란이 일었는데 안 시인은 이에 항의하며 자신의 작품도 모두 교과서에서 추방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2013년 초에는 당시 정권에 대한 반대, 저항의 의미로 절필을 선언했다. 이후 2017년 4월 말 다시 시 '그릇'을 발표하며 창작 활동을 재개했다.

안 시인은 절필 선언과 복귀 시점의 심경에 대해 밝혔다.

그는 "저는 20대 때 불의한 권력에 시라는 것으로 맞설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불의한 권력이 있을 때 서로 맞서지 않고 오히려 내가 시를 포기함으로써 맞서는 자세를 보여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근혜 정부 때 몇년 동안 (시인활동을) 하지 않았다가 그게 해소되고 나서 처음 시를 발표할 때는 괜히 혼자 오기부린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달라진 것도 보여줘야한다는 부담감이 많았다"고 부연했다.

안 시인은 "다행히 그 기간 4년이 저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됐기 때문에 좋았던 것도 있다"고도 했다.

그는 "그동안 시를 쓰면서 제 스스로 세상에 말하는 게 많았던 것 같다. 세상은 움직이지 않고 버티고 있는데 혼자 조바심 내고 시로 뭔가 해보려고 하고, 그런 시간들이 많았었다"면서도 "(절필 기간이) 저한테는 휴식이었다. 휴식을 보내고 나니 시에 대해 욕심도 덜 부리게 되고 뭐든지 쓸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생겼다"고 말했다.

[서울=뉴시스]시인 안도현 신작 시집 온라인 기자간담회. (사진 = TV창비 캡처) 2020.09.22.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시인 안도현 신작 시집 온라인 기자간담회. (사진 = TV창비 캡처) [email protected]


'절필'을 계기로 안 시인의 세상 바라보는 시선이 다소 변한 느낌이다.

신작의 제목인 '능소화가 피면서 악기를 창가에 걸어둘 수 있게 되었다' 등 시인이 바라본 식물에 대한 이미지를 담은 '식물도감'이 일례다.

매화꽃, 변산바람꽃, 노루귀, 꽃다지, 호박씨 등 일상의 소소함을 그린 시인만의 시선이 담겼다.

고모들의 삶을 담은 '고모', 어머니의 삶을 정리한 '임홍교 여사 약전' 등도 그렇다.

안 시인은 "평전이나 전기를 보면 맨 뒤에 연표 같은게 있다. 어떤 때는 본문보다 그 사람 일생을 연도별로 보는게 더 재밌을 때가 몇번 있었어서 형제들끼리 정리해보기로 했던 것"이라며 "써놓고 보니까 평범하게 살아온 우리 어머니, 고모 같은 분들의 삶 속이 오히려 시적인 요소가 들어있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안 시인은 신변의 변화도 공개했다.

올 2월 40년 동안 살았던 전북 전주를 떠나 고향인 경북 예천으로 이사했다. 아파트 생활을 벗어나 마당이 있는 집으로 터를 옮겼고 돌담을 쌓고, 꽃을 심고, 텃밭을 가꾸며 지내고 있다고 했다.

예천의 한 고교 문예반 선생님으로 활동하고 있다는 그는 "시를 가르친다는 건 지식이 아닌 세상이나 사물을 보는 방법, 어떤 눈으로 사물을 봐야되는지 가르치는 일 같다. 세상을 보는 밝은 눈을 갖게 된다면 그것도 삶에 보탬되는게 아닐까"라고 말했다.

안 시인은 "보통 유년에 있던 공간으로 돌아가면 과거를 회귀하고 회상하는 관점으로 보기 쉬운데, 저는 가능하면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한다"며 "유년으로 돌아가는게 아니라 지금부터 새로운 유년을 사는 것 같은, 그렇게 살고 싶다"고 밝혔다.

아울러 안 시인은 "(신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많이 때려달라. 이 시집이 앞으로 좀 더 좋은 시를 쓰겠다는 약속이 됐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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