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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브로커-'나까마'에 당한 마스크공장들 대박은 커녕 줄폐업

등록 2020.09.28 08:47:21수정 2020.09.28 09: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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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커 농간에 중국산기계 설치에 몇 달…생산할땐 이미 폭락세

기존 공장들도 가격 급속도로 떨어지자 '나까마' 계약해지 속출

1t 트럭 행상엔 3중필터 마스크가 1장에 100원에 팔리는 신세

[수원=뉴시스]천의현 기자=멈춰 버린 마스크 생산 공장.

[수원=뉴시스]천의현 기자=멈춰 버린 마스크 생산 공장.

[수원=뉴시스]천의현 기자 = “코로나19로 인한 마스크 품귀현상에 공장만 세우면 대박 날 줄 알았어요….”

경기 김포에서 화장품 제조공장을 운영해오던 A씨는 지난 4월 주력 업종을 마스크 생산업으로 바꿨다.

3년 전 중국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으로 직격탄을 맞은 뒤, 납품 물량이 계속 줄어들면서 심각한 경영난을 겪어왔던 터인 데다 주변 공장 분위기의 영향이 컸다.

올해 1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이후, 비교적 복잡하지 않은 자동화 기기에서 대량의 마스크를 생산해 높은 수익을 올리는 공장주들의 성공담이 잇따라 전해지면서다.

더욱이 마스크 공장주들의 “물건이 없어 못 판다”는 너스레는 고민에 빠져 있던 A씨의 마음은 동요했다.

그는 자신의 공장 내 모든 기기를 마스크 생산 시스템으로 전면 교체키로 하고, 주변 지인을 통해 중국산 마스크 생산 기기를 소개받았다.

이 지인은 휴대전화 메시지에 첨부된 영상을 통해 자동화 시스템으로 마스크가 생산되는 기기의 전 과정을 확인시켜줬다.

현지를 방문해 생산 기기를 직접 보고 결정하고 싶었지만, 마음이 급한 A씨에게 중국이나 한국 등 두 나라에서 한 달여 가까운 자가격리 기간은 큰 부담이 됐다.

이후 A씨는 30억여 원의 빚을 내 중국 마스크 기기설비 업체와 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마스크 자동화 기기만 들어오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만 같았던 부푼 기대감은 큰 착각이었다. 지난 4월 덴탈 마스크 제작용 자동화 기기를 들여왔지만, 기기설비에만 한 달이 넘도록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이후에도 일부 기기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 중국 기기 판매업체와 국내에 출장을 나온 중국인 설치 기사에게 계속 도움을 요청했지만 연락이 제 때 닿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마스크 생산품 관련 인증 획득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A씨는 식약처와 KC 인증 절차에만 두 달이 넘는 시간을 보냈다. 그러는 동안 국내 마스크의 공급부족 현상은 해결됐고, 마스크(덴탈 마스크 기준) 판매 가격은 지난 4월 900~1000원대에서 현재 200~300원대로 곤두박질했다.

결국 A씨는 마스크 사업을 시작도 못 해보고 헐값에 공장을 매물로 내놓은 상태다.

A씨는 “모든 것이 꼬일 대로 꼬였다”며 “30억 원이라는 큰 빚을 질 때는 당시 판매 중인 마스크 가격에 맞춰 계산했을 때 승산이 있겠다 싶었다. 지금 마스크 시세로는 어림도 없는 상황이다. 남들 이야기만 듣고 급하게 달려온 내 탓이 가장 크다”고 말했다.
[수원=뉴시스]천의현 기자=멈춰 버린 마스크 생산 공장.

[수원=뉴시스]천의현 기자=멈춰 버린 마스크 생산 공장.

최근 마스크 생산을 위해 공장 임대까지 한 B씨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B씨는 중국에서 마스크 생산 기기를 싸게 들여올 수 있다는 기기 판매 총판 관계자의 말만 믿고 돈을 입금했지만, 기기는 수개월째 들어오지 않아 구경도 못 하고 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총판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해당 브로커 외에도 중국 기기 판매업체와 연결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중간 브로커만 2~3명이 더 있었다.

B씨는 “기기 판매상이 곧 설비기기가 도착할 것이라는 말만 하고, 기기는 설치해 주지 않으니 낭패”라며 “150평 이상 규모의 마스크 공장의 경우 클린룸 공간 확보 등이 필수여서 미리 내부 시설 공사까지 끝내 놨는데 이 빚을 모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마스크 공급 가격이 낮아지면서 생산 유지가 어려워 문을 닫는 공장도 수두룩했다.

지난 2월부터 경기 화성에서 KF94 마스크 생산 공장을 운영해왔던 C씨는 중소 규모의 유통업체와 장기 계약을 맺고 매달 수십만 장의 마스크를 납품해왔다.

마스크 공장 설립 전부터, 친·인척 소개로 알게 된 공급처였다.

하지만 마스크 가격이 하락한 이후, 유통업체의 표정이 바뀌었다.

지난 2월 3000원대의 KF94 마스크가 이달에 접어들면서 500원대로 6배 가까이 떨어지자, 유통업체는 B씨에게 장기 공급 계약 철회를 통보했다.

유통업체 입장에서는 계약 해지에 따른 위약금이 과거에 체결한 마스크 매입 비용보다 싸다고 판단한 것이다.

C씨는 “작은아버지가 소개해 준 해당 유통업체 이외에 별도의 공급처가 없었던 상황이라, 현재는 공장 문을 닫은 상태”라며 “기존에 생산한 마스크 물량이 너무 많아 인터넷 판매를 통해 해결하려고 발버둥 치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수원=뉴시스]천의현 기자=멈춰 버린 마스크 생산 공장.

[수원=뉴시스]천의현 기자=멈춰 버린 마스크 생산 공장.

올해 초 코로나19 발병으로 마스크 공급 부족 현상이 벌어지면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마스크 생산 공장이 잇따라 우후죽순 문을 열었지만, 대다수 공장이 경영난을 이기지 못하고 문을 닫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판매 공급처도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마스크만 있으면 무조건 팔린다’라는 허황한 꿈을 좇은 결과다.

일명 ‘나까마’로 불리는 마스크 중간 판매 업자들의 무책임한 횡포도 한몫했다.

올 하반기 들어 판매처가 급급했던 공장주들에게 허위 매입을 약속하고, 과 물량의 마스크를 생산케 하다 파산에 이르게 한 사례는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마스크 생산 기기를 매물로 내놓아 사태를 수습하는 일도 쉽지 않다.

올 초 3억여 원에 달했던 KF 마스크 생산기기(국산제품 기준)값이 현재는 1억여 원에 불과하고, 1억 원 초반대였던 덴탈 마스크 생산기기 역시 절반 가까이 떨어져 중고 기기에 대한 선호도는 낮은 상태다.

이 때문에 사실상, 투자금 회수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군포의 한 마스크 공장주는 “마스크 공장의 경우 대부분 자동화 기기에서 생산되다 보니, 인건비도 크게 들지 않아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고 업계에 뛰어드는 분들이 상당하다”며 “하지만 정상적인 공급물량을 확보한 업체들도 계속해 하락하는 마스크 가격으로 위기가 상당한 지금  더 이상의 무리한 투자는 어려움이 따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특히 마스크는 앞으로도 계속해 소비될 것이라는 단순한 추측과 주변 성공 사례만 듣고 아무런 준비도 없이 뛰어든다면 낭패는 불을 보듯 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1t 트럭에 마스크를 잔뜩 싣고 "3중필터 마스크가 1장에 100원, 100원"하는 행상의 목소리가 길거리에서 자주 목격되는 것을 보면서 이 같은 사실을 실감케 해주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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