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인터뷰]박상원, 41년 만에 첫 모노극...'반듯한 이미지 지웁니다"

등록 2020.10.22 12:06:55수정 2020.11.04 20:36:22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1979년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로 데뷔

수염 기르고 모노드라마 '콘트라바쓰'

11월 7~29일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서울=뉴시스] 모노드라마 '콘트라바쓰'에 출연하는 박상원. 2020.10.22. (사진 = 박앤남공연제작소·H&H PLAY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모노드라마 '콘트라바쓰'에 출연하는 박상원. 2020.10.22. (사진 = 박앤남공연제작소·H&H PLAY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모노극은 혼자서 하는 달리기예요. 종합운동장 400m 트랙을 계속 홀로 도는 것 같이 공허하고, 진이 빠지고 힘들죠. 연기는 상대 연기자들을 통해 에너지와 힘을 얻거든요."

'인간시장'(1988)의 장총찬, '여명의 눈동자(1991)의 장하림, '모래시계'(1995)의 강우석 등 드라마에서 주로 정의로운 인물을 연기해온 박상원(61·서울예대 공연학부 연기과 교수)이 데뷔 41년 만에 처음 1인극 도전에 나선다.

오는 11월 7일부터 29일까지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하는 모노드라마 '콘트라바쓰'에 출연한다.

세계적인 작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희곡 '콘트라바스'가 원작이다. 쥐스킨트는 '향수'(1985), '좀머씨이야기'(1991) 등으로 한국에서도 마니아를 보유하고 있다. 현대 도시인의 탐욕에 대해 조롱과 비판을 해왔다.

1981년 독일 뮌헨의 퀴빌리에 극장에서 초연한 '콘트라바스'는 스스로 가둔 자신만의 공간에서 매일 투쟁하는 콘트라바스 연주자의 이야기다. 거대한 오케스트라 안에서 주목 받지 못하는 콘트라바스 연주자의 삶을 통해 소외 받는 이들의 자화상을 그린다.

최근 남산예술센터에서 만난 박상원은 "여러 명이서 함께 연기하는 것과, 혼자서 연기하는 것은 상당히 많은 차이가 있다"면서 "상대방의 연기가 그리워진다"고 털어놓으면서 껄껄거렸다.

"제 액션이 상대방 움직임과 대사의 동기가 되잖아요. 액션, 리액션이 점점 맞물리면서 '에스컬레이팅'(escalating·상승)이 되는 거죠. 다른 배우들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고 있어요. 이번 모노극 경험이 차기작에 큰 도움이 될 거 같아요."

2014년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공연한 '고곤의 선물' 이후 6년 만에 연극 무대를 밟은 박상원은 "언젠가 모노드라마를 해보고 싶었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모노드라마 '콘트라바쓰'에 출연하는 박상원. 2020.10.22. (사진 = 박앤남공연제작소·H&H PLAY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모노드라마 '콘트라바쓰'에 출연하는 박상원. 2020.10.22. (사진 = 박앤남공연제작소·H&H PLAY 제공) [email protected]

갓 스무살이 된 1979년 연극 '지저스크라이스트 수퍼스타'에서 주연을 맡은 유인촌의 언더스터디로 나섰다, 덜컥 데뷔했던 박상원은 "제가 태어나서 처음 본 연극이 모노드라마였어요. 연기 경력이 40년쯤 됐을 때 모노드라마를 해보고 싶었죠"라고 했다.

쥐스킨트의 희곡 '콘트라바스'는 모노드라마의 매력이 응집돼 있다. 자신의 존재를 자각하지 못하는 세상에 푸념을 늘어놓는 국립오케스트라의 콘트라바스 연주자가 주인공.

콘트라바스·콘트라베이스로도 불리는 더블베이스는 쥐스킨트의 묘사처럼 오케스트라의 주변부, 즉 조연의 이미지가 강하다. 이름 없는 소시민의 일상을 대변하는 듯하기도 하다.

박상원도 '콘트라바쓰'에 대해 "기본적으로 소외 받은, 소시민의 이야기"라고 봤다. "사회로부터 떨어져 있는 큰 섬에서 또 떨어져 있는 작은 섬처럼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예요. 그런데 우리는 모두 다 소외된 사람이죠. 999억원을 갖고 있더라도 1000억원을 갖기 위해 발버둥치면서 소외가 되죠. 또 누구나 '지킬앤하이드'처럼 양면성이 내재돼 있고요. 사실 '콘트라바쓰' 주인공도 안정적인 공무원이에요. 그런데 매일 반복되는 삶 속에서 자신의 음악을 잃어버린 거죠. 인간적인 슈베르트를 갈구하고요."

박상원은 대표적인 '엘리트 신사' 이미지의 배우다. '여명의 눈동자' 장하림은 의학을 전공했고, '모래시계'의 강우석은 검사였으며, '첫사랑'의 강석진은 파리에서 건축학교를 다니는 수재였다. 사회의 부조리를 파고드는 시사 프로그램 SBS TV '그것이 알고 싶다', 구조의 손길을 내미는 TV조선 '시그널' 진행을 맡기도 했다. 반듯한 이미지 덕에 보험광고 모델로도 활약했다.

그런 그가 최근 민간구호단체 행사 등에 수염을 기른 채, 도인 같은 자유분방한 풍모로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모든 것에 초연한 듯한 인상이다. 공자가 '논어'에서 예순 살을 가리켜 지칭한 이순(耳順)과 겹쳐진다. '예순 살부터 생각하는 것이 원만해 어떤 일을 들으면 곧 이해가 된다'고 한 데서 나온 말이다. "인간이 저 세상으로 떠나면, '도서관이 없어진 것과 같다'는 말이 있잖아요. 저도 큰 도서관이고 싶어요."

이번 연극에서는 콘트라바스 연주자가 되기 이전에 '박상원을 지워버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40년간 제게 묻어 있는 반듯한 이미지, 보험 아저씨 이미지, 장하림 이미지, 장총찬 이미지, 강우석 이미지를 지워야죠. 콘트라바스를 연주하는 한 인간을 이야기하는데 박상원이 가로 막으면 안 됩니다. 수염도 대학생 때 이후 처음으로 길렀어요. 길거리를 편하게 다녀도 못 알아보세요. 하하."

박상원은 바쁜 일정에도 꾸준히 무대를 놓지 않았다. 연극 '레인맨',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 등에 나왔다. TV 드라마로 많은 대중을 만났지만, 무대에 대한 애정은 여전하다. '여명의 눈동자', '모래시계'가 뮤지컬로 옮겨졌을 때도 출연은 하지 않았지만, 그는 적극 환영했다.

[서울=뉴시스] 박상원 모노드라마 콘트라바쓰 티저포스터. 2020.09.28. (사진 = 박앤남프로덕션, H&HPLAY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박상원 모노드라마 콘트라바쓰 티저포스터. 2020.09.28. (사진 = 박앤남프로덕션, H&HPLAY 제공) [email protected]

그런데 공연계가 코로나19로 큰 피해를 입고 있다. 박상원은 "온라인 스트리밍으로 대체되고 있기도 하지만 '스테이지'는 대체 불가해요. 공연장에서 암전된 이후의 시간, 공간들이 주는 경건함은 영원한 것이죠. 지금도 여전히 코로나19로 우려하는 분위기가 많지만, 안전한 관람 환경을 믿고 연기자로서 담담하게 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부분에서는 최선을 다해야죠."

박상원의 말은 신기하다. 부러 젠체하지 않으면서도 모든 걸 알고 있고, 딱딱한 듯 들려도 부드럽게 스며든다. 그간 구축한 이미지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20여년 동안 강단에 서온 서울예대 교수이기도 한 박상원이 여전히 유연한 이유다. 젊은 친구들과 머리 싸움을 하다보니 농을 건넨 그는 "계속 꿈을 꾸고 있잖아요. 연기를 위한 꿈은 세파에 찌든 꿈은 아니니까"라고 비결을 꼽았다. 

끊임없이 일을 하며 '노동의 신성함'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박상원을 젊게 만든다. 어린 시절 화가, 사진작가를 꿈꾸던 그는 바쁜 연기 활동에도 꾸준히 사진작가 생활을 병행해왔다. 그에게 사진으로 영원히 남기고 싶은 무대 위의 순간이 있는지 물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그는 4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약관의 나이에 '지저스 크라이스트 수퍼스타' 주역으로서 커튼콜에 임하던 때다.

"윤복희, 곽규석, 추송웅 등 당시 쟁쟁한 배우들 사이에서 스무살 짜리가 껴 있는 거예요. 스타들 틈에서 어리둥절하게 서 있는 제가 떠올라요. 유인촌 씨 대타로 무대에 올랐을 때 느낀 혼란·충격이 묻어 있는 거죠. 그 당시 블록버스터 규모의 공연이었어요. 그랬으니 책임감, 감사함이 대단했죠."

그래서 혼자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하는 1인극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더 무겁다. 콘트라바스가 건물의 주춧돌 같은 구실을 하는 것처럼, 박상원의 연기도 이번 작품의 토대를 받친다.

마지막으로 극 중 콘트라바스 연주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청했다. "'난 음악을 잃었다' '난 음악이 없다'고 자책하는 장면이 있어요. 그런데 그 만큼 음악을 사랑해서 할 수 있는 말이죠. 그에겐 음악이 결코 없지 않았던 거죠. 그래서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당신은 음악을 잃지 않았어요. 더 좋은 음악을 느끼고 싶은 거죠.'"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