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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설득 실패한 여당, 사표 던진 부총리

등록 2020.11.06 15:3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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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설득 실패한 여당, 사표 던진 부총리

[세종=뉴시스] 위용성 기자 = 18세기 영국에선 군비 확보를 위해 창문세를 걷었다고 한다. 당시 유리가 비싸 창문이 많은 집일수록 부유한 것으로 보고 세금을 많이 물렸다는 것이다. 이후 런던에선 창문 없는 집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목적은 다르지만 신문세(비판적 언론을 다루기 위함)도 있었다고 전해진다. 지면 페이지 수에 비례해 과세했는데, 당시 신문사는 이에 지면 크기를 키우는 식으로 대응했다.

수백 년 전 역사 속으로 사라진 황당한 조세 사례지만, 오늘날에도 납세자들에겐 창문세만큼이나 불합리하게 취급받는 세금들이 많이 있다. 취지가 그럴듯하더라도 설득에 실패한 과세는 결국 조세저항을 이겨내지 못하고 좌초한다.

가입자가 1만7554명인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 온라인 카페에선 이제 주식 양도소득세 전면과세를 뒤엎자는 주장에 불이 붙고 있다. 정부는 2023년부터 5000만원이 넘는 주식 양도차익에 과세한다. 당초에는 2000만원 이상 차익에 과세하려다가 기준이 5000만원으로 늘어났다. 이것 역시 '행동하는' 동학개미들의 목소리가 반영된 결과였다.

정부는 오래 전부터 주식 양도소득 과세 강화 신호를 보내왔다. '소득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원칙에 주식 시장만 예외일 수 없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짜여진 더불어민주당의 대선 공약이었다. 그런데 내년부터 양도세 과세 대상 대주주의 금액 요건을 3억원(종목당)으로 낮추려던 정부 계획은 여당의 주도하에 무산됐다.

여당이 내세운 주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증시 상황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점, 2023년부터 전면 과세가 시작된다는 점이다. 요컨대 몇 년 뒤 대주주 요건 자체가 의미가 없어지는데 굳이 당장 내년부터 과세 대상을 크게 늘려 모처럼 유입된 증시 자금을 흔들지 말자는 거다.

분명 일리가 있지만 대신 이 둘을 떼어놓고 보면 안 된다. 2023년 전면 과세를 뒤엎자는 주장은, 결국 내년이고 몇 년 뒤고 시장이 세제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때까지 과세를 유예하자는 의미와 같다. 문제는 이미 표를 의식한 정치권이 스스로의 원칙을 손쉽게 뒤집은 기록을 남겼다는 것이다.

전면 과세는 훨씬 큰 변화이므로 그때가 되면 지금보다 더한 논쟁을 초래할 가능성도 높아진 셈이다.

집권 여당이 상황 변화에 따라 유연하게 정부 정책을 수정하는 건 합당한 일이다. 대신 설득이 충분해야 한다. 반대급부로 치러야 할 비용이 만만찮아서다.

무엇보다 경제정책 사령탑인 부총리조차 납득시키지 못하고 불협화음을 낸 건 여당으로선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다. 조세 정책이 갈팡질팡하면 국가 구성원의 신뢰를 잃고, 불신이 누적되면 더 큰 조세저항을 부른다. 

물론 정부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대로라면 연말 시장 변동성이 과거에 비해 얼마나 달라질 것인지 최대한 예측해보고 알린다거나, 나라의 전반적인 과세 체계 로드맵을 소상히 제시한다거나, 하다못해 선진국의 관련 세제 변천사는 어떠했는지 등을 충실히 설명하려 노력했다면 어땠을까.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국회에서 내내 "근로소득과 형평성이 필요하다", "정책 일관성을 지켜야 한다", "과세 대상자는 1.5%에 불과하다(그래서 오해들이 있는 것 같다)", "과거에는 연말이 지나면 주가가 오히려 올랐다"는 말만 반복하더니 끝내는 불쑥 사표를 던졌다고 고백했다.

흔히 다수의 학자·전문가들은 "우리 세법은 너무 쉽게 만들어지고, 너무 쉽게 고쳐진다"고 지적한다. 정부가 일방적으로 만들어 내놓고, 반발하면 고치고, 또 고치고 하면서 '누더기 세법'이 된 경우가 허다하다. 한 세법전문가는 "이래선 정책을 어떻게 하느냐"고 묻는다. 전면 과세를 앞두고 만약 지금의 상황이 재연된다면 그때의 부총리는 또 사표를 던져야 하나.

확장재정이 거듭될수록 '정부가 증세를 위해 꼼수를 부린다'는 불만은 커진다. 정부는 앞서 상위 10% 부자가 78%를 내는 소득세 체계 전반에는 손도 못대고 소수 부자들에게 최고세율만 찔금 올리는 식으로 조세저항을 회피한 바 있다. 고령화가 더욱 진행된 장래에, 피할 수 없는 증세 의제가 닥쳤을 때가 우려된다. 세금을 내는 사람들이 납득하지 못하는 조세라면 창문세와 크게 다를 바 없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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