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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이정은 "말을 못하니 낯선 얼굴 나와 나도 신기했어요"

등록 2020.11.10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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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던 날' 목소리 잃은 '순천댁' 역

"연극 무대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

"김혜수, 매력적이고 멋진 배우…'여신'"

'기생충' 이후 기대감↑…"응원 해주길"

[서울=뉴시스]배우 이정은.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2020.11.09.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배우 이정은.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2020.11.09.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 강진아 기자 = "대학교 1학년 때 '너의 목소리 말고 너를 보여줘'라는 말을 들었어요. 언어를 배제한 순간을 한 번은 꼭 만나고 싶었죠. 언어에 진심을 담거나 언어의 유희를 즐길 때도 있지만, 아예 없는 순간이 오기를 바라는 배우도 있을 거예요. 제가 이 작품으로 그런 순간을 만났죠."

영화 '기생충'으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 이정은이 이번에는 목소리 없이도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영화 '내가 죽던 날'에서 사고로 목소리를 잃은 섬마을 주민으로 변신,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9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정은은 "감정을 읽어내는데 소요되는 시간이 느린 게 좋았다"며 "자극적인 감정에 사람들이 시선이 가지만, 호흡이 느린 작품을 하고 싶었다"고 출연 이유를 밝혔다.

'내가 죽던 날'은 유서 한 장만 남긴 채 절벽 끝으로 사라진 소녀와 삶의 벼랑 끝에서 사건을 추적하는 형사, 그리고 그들에게 손을 내민 무언의 목격자까지 살아남기 위한 그들 각자의 선택을 그린 이야기다.

이정은은 사라진 소녀를 마지막으로 본 무언의 목격자 '순천댁' 역을 맡아 극의 무게감을 더했다. 무표정하면서도 미세한 표정 변화, 삐뚤빼뚤한 글씨체로 미스터리한 분위기와 함께 영화의 몰입도를 높였다.
[서울=뉴시스]배우 이정은.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2020.11.09.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배우 이정은.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2020.11.09. [email protected]

"목소리를 낼 수 없으니 잘 들으려고 했어요. 표정을 따로 생각하진 않았죠. 말을 못 하니 듣고 있는데 낯선 얼굴이 나와서 저도 신기했어요. 감독님도 일부러 뭔가 더 하지 말자고 했고, 편안하게 할 수 있었죠. 필체는 시골 어머니들이 쓴 시집의 원본을 구해서 비교해보니 공통의 필체가 있더라고요. 오른손으로는 예쁘게 써져서 왼손으로 연습을 했어요."

이정은은 목격자인 '순천댁'을 속내를 알 수 없는 이로 표현했다. "형사물처럼 보이지만 휴먼드라마이기 때문에 극단적인 부분들은 빼고 자연스럽게 감정이 흐르게 했어요. 앞부분에 모호하게 보이도록 연기했는데, 적절히 조화된 것 같아요. 제가 역할을 잘 풀었다기보다는 이 사람이 가진 손바닥의 굳은살과 세월을 감당한 얼굴이 표현해주죠."

그러면서 자신보다 얼굴에 더 주름이 있고 진중해 보이는 배우가 했다면 더 잘 어울렸을 것 같다고 오히려 아쉬움도 표했다. "해안가에 사는 어머니들이 주는 느낌이 있잖아요. 통통한 얼굴에 주름을 만들 수도 없고, 분장을 더 해야 했나 하는 생각도 들었죠.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연기를 했지만 아쉽더라고요."

호흡을 맞춘 김혜수에 대해선 "멋진 배우"라고 극찬했다. 김혜수는 절벽 끝에서 사라진 소녀 '세진'(노정의)의 흔적을 추적하며 삶의 진실과 마주하게 되는 형사 '현수'로 극 전체를 끌어간다.
[서울=뉴시스]배우 이정은. 영화 '내가 죽던 날'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2020.11.09.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배우 이정은. 영화 '내가 죽던 날'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2020.11.09. [email protected]

"오래전부터 관심이 많았어요. 좋아하는 혜수씨가 한다고 해서 과감하게 택했죠. 촬영장에서 처음 혜수씨가 찍은 걸 봤는데 화장기 없는 얼굴이 너무 매력적이고 좋았어요. 그 사람이 뿜어내는 에너지의 파장이 있어요. 선착장에서 함께한 장면은 현실 같았죠. 주변이 사라지고 오로지 우리 둘이 낯선 소음의 바닷가에 있는 기분이 들었는데 정말 좋았어요."

이정은은 김혜수를 '여신'으로 부르며 환하게 웃기도 했다. "여신이 어느 때는 가까이 있더라고요. 만화에서 툭 튀어나온 사람 같잖아요. 친구니까 얼마나 행복해요. 가까우면서도 신기하죠. 혜수씨는 애정을 표현하는 게 솔직해요. 저는 평상시에 퉁명스러운데 혜수씨는 '좋으면 좋다' 왕성하게 표현하는 게 부럽죠. 현장 분위기를 화목하게 만들어줬어요."

또 김혜수 덕분에 데뷔한 사람도 많다며 '농사꾼'이라고도 표현했다.

"좋은 연기를 하면 주변에 추천해줬다고 해요. 그냥 떠 있는 스타가 아니라 작품에 필요한 배우들을 일궈내는 '농사꾼' 같죠. 저도 기회가 되면 척박한 환경의 연극배우들에게 힘이 되고 싶어요. 저는 연극배우인 걸 항상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무대에서의 경험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줬죠. 경력이 단절되는 상황에 놓인 배우들이 꿈을 잃지 않게 해주고 싶어요."
[서울=뉴시스]배우 이정은. 영화 '내가 죽던 날'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2020.11.09.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배우 이정은. 영화 '내가 죽던 날' 스틸. (사진=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제공) 2020.11.09. [email protected]

미국 아카데미 4관왕에 빛나는 '기생충'으로 큰 사랑을 받았지만, 이후 그만큼 주변의 기대도 높아졌다. 최근 종영한 KBS 주말극 '한 번 다녀왔습니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정은은 "연기할 때 가장 자유롭고 편하다"며 응원을 부탁했다.

"주말극 때 많이 시달렸어요. 평범한 역을 잘 못 할 것 같다는 생각도 했어요. 다행히 정신력이 강해서 악플에 충격은 오지만 완화하는 방법을 터득했어요. 길게 봐주시고 잘 될 때만 말고 못 될 때도 응원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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