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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자 치고 119 신고·목격자 행세' 경찰·검찰 엇갈린 판단

등록 2020.12.02 12: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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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직후 119 구조 신고…목격자 행세하다 뒤늦게야 시인

경찰 '특가법상 도주치사' 혐의로 영장 신청…검찰은 반려

대법원 판례 "신고 뒤 연락처 제공, 뺑소니로 보기 어렵다"

'보행자 치고 119 신고·목격자 행세' 경찰·검찰 엇갈린 판단


[광주=뉴시스] 변재훈 기자 = 차량을 몰다 보행자를 치어 숨지게 했으나 119 구조 신고 뒤 목격자 행세를 한 운전자에 대해 경찰과 검찰이 판단을 달리했다.

검찰은 '신고자로서 연락처 등을 알려준 경우, 범죄임을 알면서도 그 행위를 하려는 의사가 있어 현장을 벗어난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대법원 판례를 들어 경찰의 영장을 반려했다.

2일 광주 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달 18일 오후 6시30분께 광주 서구 동천동 한 아파트 단지에서 A(73)씨의 승용차에 치인 B(77·여)씨가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숨졌다.

A씨는 사고 직후 차량을 주차한 뒤 또 다른 주민의 구조 요청을 부탁받고, 얼떨결에 119구조대에 신고했다.

A씨는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에게 신고자 인적사항·연락처를 남겼으나, 최초 진술 과정에서 사고 목격자인 것처럼 행세했다.

수사에 나선 경찰은 단지 내 폐쇄회로(CC)TV 영상을 분석, A씨를 사고를 낸 운전자로 특정했다. 이튿날 경찰서에 자진 출석한 A씨는 자신이 낸 사고임을 시인했다.

경찰은 A씨가 뺑소니 사고를 냈다고 판단,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 도주치사 등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검찰은 A씨의 혐의 적용이 적절치 않다며 구속영장을 반려, 법원에 청구하지 않았다.

검찰은 ▲119에 신고한 점 ▲구급차에 후송될 때까지 현장에 머문 점 ▲사건 발생 다음날 경찰에 임의 출석해 경위를 진술한 점 등을 들었다.

이 같은 정황으로 미뤄 'A씨의 행위가 사고를 낸 자가 누군지 확정할 수 없게 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A씨의 인적사항을 확보한 경찰이 사고 경위 등을 확인해 가해 운전자를 가려낼 수 있었다는 취지다.

관련 판례도 반려 이유로 꼽았다.

지난 2011년 7월 강원도 원주 한 국도에서는 1t 화물차 운전자가 80대 보행자를 치어 숨졌다. 이 운전자는 곧바로 119 구조 신고를 한 뒤 13시간가량 사고 당사자가 아닌 목격자 행세를 하다 경찰 수사에 들통났다.

이후 특가법상 도주치사 혐의로 기소됐다. 1심에선 119 신고한 점, 자신의 신원을 경찰에 알린 점, 사고 경위 시인 뒤 보험접수한 점 등을 넉넉히 고려해 뺑소니가 아니라고 봤다. 이에 교통사고처리특례법 위반 혐의를 적용, 금고 8개월을 선고했다.

항소심에선 목격자인 것처럼 행세해 사고 낸 운전자가 누군지 확정할 수 없게 했다고 판단,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 판결을 내렸다.

그러나 대법원 상고심에서는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운전자가 직접 신고하고 인적사항을 제공한 점 등을 감안하면, 도주가 범죄임을 알면서도 그 행위를 하려는 의사가 있어 사고 현장을 벗어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서부경찰 관계자는 "관련 판례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한 끝에 A씨에 대해 교통사고처리특례법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용키로 했다. 보강 수사를 마치는 대로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또 사고 차량 앞 범퍼 등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감식 결과 등을 토대로 A씨에 대한 신변 처리 방침을 다시 검토하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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