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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KBL]과자공장에서 심기일전 '숨은 진주' 김진희

등록 2020.12.03 09: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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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농구 우리은행 4년차 무명 김진희, 무릎 수술 딛고 어시스트 2위 펄펄

드래프트 대신 대학 진학…동기들보다 늦게 프로 데뷔

호랑이 위성우 감독, 아빠 미소로 포옹 화제…"볼수록 대견한 선수"

[서울=뉴시스]여자농구 우리은행 김진희

[서울=뉴시스]여자농구 우리은행 김진희

[서울=뉴시스] 박지혁 기자 = 아산 우리은행의 가드 김진희(23·168㎝)가 침체된 여자프로농구 코트에 신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2020~2021시즌 이전까지 정규리그 통산 출전이 11경기에 그친 무명에 가까운 선수지만 재활 중인 국가대표 가드 박혜진(30)의 공백을 메우며 우리은행(2위)이 순항하는데 일조했다.

이번 시즌 9경기에서 평균 33분18초를 소화하며 6.6점 5.9어시스트 2.9리바운드 1스틸을 기록 중이다. 어시스트 부문은 리그 전체에서 2위다.

2일 성북구 장위동 우리은행 체육관에서 만난 김진희는 "주변에서 잘하고 있다는 말씀을 많이 하시는데 솔직히 내가 뭘 잘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아직 부족한 게 많다. 경기 녹화영상을 보면 온통 단점이다"며 수줍게 웃었다.

김진희는 광주대 3학년이던 2017년 신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6순위로 우리은행 유니폼을 입었다.

우여곡절 끝에 잡은 기회를 살렸다. 김진희는 볼 핸들링, 스피드, 돌파, 패스 능력이 두루 준수한다. 슈팅과 경험이 부족하지만 코칭스태프의 지시를 이행하는 능력과 이해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전 가양초등학교 5학년 때 키 큰 친구들과 함께 얼떨결에 농구공을 잡았다. "농구가 정말 재미있다고 느꼈던 때다. 중학교에 진학할 때, 부모님께서 반대하셨지만 무릎 꿇고 빌어서 계속 할 수 있었다"고 기억했다.
[서울=뉴시스]여자농구 우리은행 김진희 (사진 = WKBL 제공)

[서울=뉴시스]여자농구 우리은행 김진희 (사진 = WKBL 제공)

그러나 성장은 더뎠다. 자포자기 심정으로 농구공을 놨다. 대전여상 3학년 때, 학교에 취업계를 제출하고 대전에 있는 과자공장에 들어가 박스를 포장했다.

김진희는 "하루에 10시간 동안 포장하면 7만원을 줬다. 매일 출근한 건 아닌데 한 번 다녀오면 다음날은 힘들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농구와 일부러 거리를 두려고 했는데 완전히 버리진 못했던 것 같다. 처음 내 힘으로 번 돈이었다"고 했다.

막연하게 사회생활을 시작하려다 '농구를 그만 두더라도 대학교 졸업장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국선경 광주대 감독과 주위의 권유로 광주대에 진학했다.

프로 대신 대학을 선택하면서 동갑내기 안혜지(23)가 전체 1순위로 구리 KDB생명에 입단하는 것을 멀리서 지켜봤다.

전환점을 맞았다. 대학 무대에서 장점을 보이며 프로 관계자들의 눈에 들었고, 유니버시아드 대표로 활약한데 이어 프로 무대에 입성했다.

우리은행의 탄탄한 라인업에서 치열한 경쟁은 버거웠다. 설상가상으로 왼 무릎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겪었다. 지난 시즌 부상으로 단 한 경기도 나서지 못했다.
[서울=뉴시스]여자농구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과 김진희 (사진 = WKBL 제공)

[서울=뉴시스]여자농구 우리은행 위성우 감독과 김진희 (사진 = WKBL 제공)

김진희는 "작년에 무릎 수술을 받았다. 아무것도 해놓은 게 없는 상황에서 부상까지 입은 탓에 다시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김)정은 언니가 옆에서 많은 조언을 해줬다"며 "이번 시즌 생각지 못한 상황에서 기회가 왔다. 언니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을 내가 도와야겠다는 생각으로 임하고 있다"고 했다.

갑자기 늘어난 기회와 출전 시간에도 묵묵히 제 몫을 했다. 특히 지난달 30일 용인 삼성생명과의 경기에선 57-54로 불안하게 앞선 4쿼터 종료 1분36초를 남기고 결정적인 슛을 성공해 강한 인상을 남겼다.

위성우 감독은 작전타임을 위해 벤치로 향하는 김진희를 바라보고, 환하게 웃으며 안아줬다. 평소 엄한 지도 스타일의 위 감독에게 찾아보기 어려운 장면이다.

김진희는 "엄청 놀랐다. 손을 내미시는 줄 알았는데 안아주셨다. 아버지에게 안기는 것처럼 '심쿵'했다. 소름이 돋고,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위 감독은 "'그동안 왜 이런 선수를 활용하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스스로 하게 됐다. 아직도 보는 눈이 많이 부족한 것 같다. 부상으로 1년을 쉰 선수가 이렇게 하는 건 쉽지 않다. (김)진희는 볼수록 대견하다. 인성도 훌륭하다"라고 칭찬했다.

김진희는 "원래 목표는 5분이라도 뛰는 것이었다. (박)혜진 언니가 돌아오면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겠지만 기회가 온다면 후회 없이 코트에서 에너지를 쏟아 팀이 이길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며 "나는 잃을 게 없는 선수"라고 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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