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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대통령과 손흥민

등록 2020.12.12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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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서울=뉴시스] 홍지은 기자 = 2018년 6월 24일, 러시아월드컵 한국과 멕시코와의 경기에서 아쉽게 패배한 손흥민 선수는 문재인 대통령 앞에서 눈물을 쏟아냈다. 문 대통령은 들썩이는 그의 등을 다독이며 위로를 건넸고, 당시 그 주변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한 골이라도 더 넣기 위해 동분서주 뛰어다녔던 손흥민 선수의 모습에서 묘한 동질함을 느꼈을까. 국정 운영 성과에 애타는 문 대통령에게 그의 눈물은 남다른 의미로 다가왔을 것으로 보인다.

그로부터 2년 뒤, 하얀 유니폼을 입은 손흥민 선수는 영국 프로축구 프리미어리그(EPL) 토트넘 핫스퍼에서 '토트넘 에이스'로 활약하며 월드클래스 반열에 올라섰다. 올 시즌 눈에 띄게 달라진 손흥민 선수의 사례는 임기 말 국내 정치·외교안보·코로나·경제 등 모든 국정 현안을 책임지고 있는 문 대통령에게 시사점을 주고 있다. 바로 '미드필더, 수비진'의 중요성이다.

손흥민 선수가 올 시즌부터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던 데에는 무리한 수비 가담 부담에서 자유로워졌기 때문이다. 미드필더·수비진의 탄탄한 지원으로 기본적인 수비 부담이 덜해진 데다, 오직 최전방에만 머물렀기에 양질의 패스를 받아 공격 능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었다.

이전까지는 적극적인 수비 가담을 요구받으면서 항상 상대 수비수로부터 집중 견제에 시달렸다. 이천수 전 국가대표 선수가 과거 “상대 수비수들은 항상 손흥민에게 붙어 있다. 특히 볼을 잡으면 두세 명이 달라붙는다”며 "손흥민이 뭔가를 할 만한 공간이 나지 않는다”고 말한 것도 이 연장선에 있었다.

수비 부담에서 벗어나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던 손흥민 선수와 달리 임기 2년도 채 남지 않은 문 대통령은 온갖 내우외환의 국정 부담을 홀로 짊어진 형국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갈등 국면 등 국내 정치부터 시작해 코로나19 3차 대유행, 경제 위기, 남북 관계와 외교 문제 등 모든 현안을 다 끌어안고 있어 정치권과 국민들 시선은 결국 대통령을 향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지금의 국정 운영은 대통령의 원맨쇼로 돌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국정의 미드필더인 참모와 장관들의 크고 작은 오판들은 문 대통령의 부담을 가중시켰다. 대표적인 게 이른바 '추·윤 사태'다. 추미애 장관의 거침없는 행보가 갈등 국면을 더 부각시키면서 이는 고스란히 국정 부담으로 다가왔다. 최근 국정 수행 지지도는 취임 이래 '콘크리트 지지율'로 불렸던 40% 선마저 깨졌고, 문 대통령은 결국 '혼란스러운 정국'에 대해 사과했다.

앞서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의 지난해 12월 권고로 시작된 '청와대 참모진 다주택 처분' 논란도 파장이 컸다. 노 실장은 대통령의 만류에도 청와대 참모들에게 '1채를 제외한 나머지 집을 모두 팔라'는 권고를 내렸다. 잘못 꿰어진 첫 단추는 이후 대통령 모든 인사의 시빗거리가 되고 말았다. 대통령의 인사 단행이 있는 날이면 지금까지도 "다주택자인가"라는 물음이 끊이지 않는다.

코로나19 대유행 국면에서 최재정 정무수석의 지역구 축구동호회 참석 논란도 한몫했다. 정부가 사회적 거리 두기를 상향 조절했던 당일, 최 수석은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송파구 한 학교에서 조기 축구에 참석했다. 대통령을 지근거리에서 모시는 최측근 참모로서 방역 수칙 이행에 안이했던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고 최 수석은 결국 "더 신중했어야 했다"며 사과를 표명했다. 문 대통령은 그 다음날 수보회의에서 공직자의 자세를 강조했다.

부동산 정책과 관련한 정부 여당 인사들의 각종 설화도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 돼 민심을 더 악화시켰다. 한국갤럽 대통령 지지도 조사에서 추석 이후 부정 평가 이유 1위가 '부동산 정책'을 차지했고, 문 대통령은 결국 김현미 장관 교체 까드를 꺼내며 민심 수습에 나섰다.

코로나19 확산 초기 마스크 수급 대란 때도 마찬가지였다. 문 대통령은 당시 이의경 식약처장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전화하면서 직접 지시를 내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 당시 지급 범위를 두고 당정간 엇박자가 났을 때는 문 대통령이 직접 교통정리에 나서며 사안을 정리했다. 이런 사례들은 부지기수다.

물론 국정 운영의 미드필더를 뽑은 당사자는 바로 대통령 본인이라는 점에서 손흥민 선수와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문 대통령은 장관이나 참모 한 명 바꿀 바에야 자신이 조금 더 일하겠다는 생각이 강하다"고 전했다.

안 그래도 치아 상태가 안 좋던 문 대통령에게 이제 남은 생니는 거의 없다고 한다. 참여정부 시절 치아 10개가 빠져 대부분 임플란트를 했고, 최근까지도 치과 치료를 받았다.

이제 공격에만 집중해 성과를 내는 손흥민 선수처럼 임기 후반부 코로나 국난 극복과 외교·안보 등 굵직한 이슈에 집중할 수 있도록 문 대통령의 짐을 덜어줄 충실한 미드필더의 역할이 절실한 때다. 문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과 '2차 개각' 인선 카드에 더욱 시선이 쏠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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