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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잘알]김현준·전주원부터 양동근까지…프로농구 영구결번

등록 2020.12.15 05: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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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이나 선수 업적 기리기 위해 지정…남자선수 총 11명

고 김현준 최초지만 프로 무대 밟은 영구결번 1호 김유택·전주원

이상민, 유일하게 KCC·삼성 두 구단에서 영구결번 될 뻔

[서울=뉴시스]프로농구 삼성 김현준의 영구결번 10번 (사진 = KBL 제공)

[서울=뉴시스]프로농구 삼성 김현준의 영구결번 10번 (사진 = KBL 제공)

[서울=뉴시스] 박지혁 기자 = 영구결번. 야구, 축구, 농구 등 단체 구기 종목에서 구단이 감독이나 선수의 업적과 의미를 기리기 위해 지정한다. 그라운드나 체육관 한 부분을 채운 영구결번 유니폼은 당사자에게 더할 나위 없이 큰 영광이다.

후배들은 이 번호를 달지 않으며 선배의 위대한 업적을 떠올리고, 팬들은 자부심을 느낀다. 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며 세월이 지날수록 빛난다.

보통 입단 후, 은퇴까지 '원 클럽맨'으로 뛰거나 눈에 띄는 업적을 이끈 이가 대상자가 된다. 해당 구단이 아니어도 종목에서 입지전적 인물에게 주어지는 경우도 있다. 1997년 출범한 남자 프로농구에선 총 11명이 영구결번의 영광을 안았다.

고 김현준의 10번…삼성의 상징이자 역사

첫 번째 영구결번 주인공은 삼성의 고 김현준 코치다. 1999년 10월2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삼성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프로 출범 이전인 1983년 삼성전자에 입단해 이충희(61·당시 현대전자), 허재(55·당시 기아차동자)와 한국 농구의 전성기를 이끈 스타플레이어였다.

'전자슈터'로 불린 그는 1995년 은퇴할 때까지 농구대잔치 역사상 가장 많은 6328점을 올렸다. 미국 유학을 마치고, 1996년 삼성 코치로 부임했으나 안타까운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났다.

삼성 구단은 1999년 그를 기억하기 위해 등번호 10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긴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삼성에서 영구결번은 아직까지도 김현준이 유일하다.

삼성은 이에 그치지 않고, 김현준을 추모하고 고인의 농구에 대한 열정을 기리기 위해 장래가 촉망되는 유망주를 발굴해 지원하는 '김현준 장학금'을 만들었다.
[서울=뉴시스]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 영구결번 (사진 = 현대모비스 제공)

[서울=뉴시스]프로농구 울산 현대모비스 영구결번 (사진 = 현대모비스 제공)

2000년부터 시작해 올해까지 총 67명에게 1억4680만원의 장학금을 전달했다. 1호 대상자는 2000년 당시 삼일상고 1학년에 재학 중이던 양희종(36·KGC인삼공사)으로 국가대표 주장으로 성장했다.

이밖에 박찬희(33·전자랜드), 이승현(28·오리온), 전준범(29·현대모비스), 최준용(26·SK), 송교창(24·KCC), 양홍석(23·KT) 등 국가대표를 비롯한 많은 선수들을 키웠다. 올해 고졸 최초로 삼성에 1순위 입단한 차민석(19) 역시 '김현준 장학금'을 받았다.

'농구대통령' 허재 9번…영구결번 1호 2000년 김유택부터 2020년 양동근까지

1997년 출범한 프로에서 선수 생활을 하다가 영구결번이 된 1호는 김유택(57) 해설위원이다. 1980~1990년대 전성기를 보낸 그는 센터의 교과서로 불렸다.

전성기가 꺾인 이후에 프로가 출범했지만 처음 상대하는 외국인 선수를 상대로 고군분투하며 기아자동차의 한 축을 담당했다. 2000년 은퇴 후, 등번호 14번이 영구결번 됐다.

현대모비스는 전신인 기아자동차의 영구결번을 그대로 계승했다. 지난달 트레이드로 현대모비스 유니폼을 입은 최진수(31)는 아버지의 등번호가 영구결번인 곳에서 새롭게 출발했다. 차남 김진영(22)은 삼성에서 뛰고 있다.

'농구대통령' 허재 전 국가대표 감독은 한국 농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등번호 9번은 원주 DB의 영구결번이다.

중앙대~기아자동차에서 전성기를 누비며 코트 안팎에서 화제를 모은 스타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전 세계 출전 선수를 대표해 선서를 했을 만큼 영향력이 컸다.
[서울=뉴시스]프로농구 원주 DB의 허웅(오른쪽)과 김주성 코치. 허웅은 아버지 허재(9번) 전 국가대표 감독의 등번호가 영구결번인 팀에서 뛰고 있다. 김주성 코치의 32번도 영구결번이다. (사진 = DB 제공)

[서울=뉴시스]프로농구 원주 DB의 허웅(오른쪽)과 김주성 코치. 허웅은 아버지 허재(9번) 전 국가대표 감독의 등번호가 영구결번인 팀에서 뛰고 있다. 김주성 코치의 32번도 영구결번이다. (사진 = DB 제공)

외국인선수가 쥐락펴락하는 프로에서도 존재감은 여전했다. 8시즌 동안 통산 320경기에서 평균 12점 4.3어시스트를 올렸다. 전성기가 지났지만 해결사 능력은 탁월했다.

1997~1998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음에도 최우수선수(MVP)상은 부상 투혼을 발휘한 허재의 몫이었다.

기아자동차의 상징이었으나 전격 트레이드로 원주 나래(현 DB) 유니폼을 입었고, 그곳에서 영광스럽게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다.

공교롭게 장남 허웅(27)이 아버지가 선수 생활을 접은 DB에서 주축 선수로 활약하고 있다.

SK 문경은 10번·전희철 13번도 '영구결번'

서울 SK의 문경은(49) 감독과 전희철(47) 코치의 등번호 10번과 13번도 영구결번이다. 은퇴시기에 따라 전희철은 2008년, 문경은은 2010년에 영구결번 됐다.

'람보 슈터'로 불린 문경은은 이충희, 김현준의 계보를 잇는 대형 슈터였다. 출범 이후 최고 슈터로 평가받는다.

KBL 통산 3점슛에서 1669개로 압도적인 1위다. 2위 주희정(1152개)보다 500개 이상 많다. 경기당 2.7개를 꽂았고, 성공률도 무려 39.5%에 달했다.

전희철은 운동 능력과 슈팅을 겸비한 파워포워드로 정규리그 통산 472경기에서 평균 11.9점 4리바운드를 기록했다. 특히 태극마크를 달고 강한 면모를 과시해 '국제용' 선수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문경은과 전희철 모두 은퇴 직전까지 5시즌 동안 SK에서 뛰었고, 같은 팀에서 감독과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뉴시스]프로농구 서울 SK 영구결번 (사진 = SK 제공)

[서울=뉴시스]프로농구 서울 SK 영구결번 (사진 = SK 제공)

잘 생긴 외모로 여성 팬들을 몰고 다녔던 우지원(47)의 등번호 10번은 현대모비스에서 영구결번이다.

통산 573경기에서 평균 12.8점을 기록했고, 경기당 1.9개의 3점슛을 꽂았다. 성공률은 40.1%. 통산 3점슛 1116개로 이 부문 3위에 올라 있다.

대학 시절부터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주축 선수로 활약했다. 전성기가 지나고 이타적인 플레이에 눈을 뜨며 재평가 받았다. 은퇴 무렵에 3점슛과 궂은일을 책임지며 현대모비스 왕조의 한 축을 담당했다.

삼성 이상민 이전 소속팀 KCC에서 '영구결번'

2010년 은퇴한 이상민(48) 삼성 감독도 영구결번의 주인공이다.

'이조추(이상민·조성원·추승균) 트리오'의 중심으로 대전 현대(KCC의 전신)에선 조니 맥도웰, 전주 KCC에선 찰스 민렌드와 찰떡 호흡을 자랑했다.

국가대표 포인트가드로 실력과 인기를 겸비했다. 9년 연속 올스타 팬 투표에서 1위를 기록했다. 통산 581경기에서 평균 9.8점 6.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통산 어시스트는 3583개로 2위다.

현역 생활을 마무리한 삼성이 아닌 전 소속팀 KCC가 등번호 11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했다.

2007년 이적 사건이 배경이다.

당시 KCC는 삼성에서 뛰던 자유계약(FA) 서장훈(46)을 영입했는데 이 과정에서 삼성이 보상 선수로 지명할 수 없는 보호 선수 3명을 지정해야 했다. KCC는 서장훈과 추승균(46), 임재현(43)을 보호하기 위해 이상민을 보호선수로 묶지 않았다.
[서울=뉴시스]프로농구 KCC 이상민, 추승균의 영구결번 (사진 = KBL 제공)

[서울=뉴시스]프로농구 KCC 이상민, 추승균의 영구결번 (사진 = KBL 제공)

삼성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상민을 보상 선수로 지명했고, 프랜차이즈 스타를 포기한 KCC는 팬들의 엄청난 항의에 시달렸다.

영구결번 지정으로 섭섭함을 달랬으나 이상민은 해외 연수를 떠나 영구결번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후 삼성이 영구결번으로 지정할 계획이었으나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이행되지 않았다. 만약 삼성에서도 영구결번으로 지정됐다면 두 구단에서 영구결번의 영광을 안는 첫 번째 선수가 될 수 있었다.

'피터팬' 김병철(47) 오리온 코치는 입단 후, 은퇴까지 오리온 유니폼만 입었다. 2011년 은퇴하면서 등번호 10번이 영구결번으로 지정됐다.

오리온에서 13시즌 동안 희로애락을 함께 한 프랜차이즈 스타. 통산 556경기에서 평균 13점 3.1어시스트를 기록했다.

2001~2002시즌 마르커스 힉스(42), 김승현(42), 전희철과 함께 오리온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었다.

챔피언 반지 최다 6개 가진 양동근, 올해 영구결번

추승균 전 KCC 감독은 공수 균형이 완벽에 가까운 선수였다. 1997~1998시즌 현대에서 시작해 2011~2012시즌 KCC에서 은퇴할 때까지 한 팀에서 뛰었다.

정확한 슈팅과 상대 득점원을 꽁꽁 묵는 수비력이 탁월했던 그는 통산 738경기에서 평균 13.6점 2.4리바운드를 기록했다.

'소리 없이 강한 남자'라는 별명처럼 이상민, 하승진(35) 등 스타플레이어와 함께 뛰면서 기복 없이 꾸준함을 유지했다.
[스잘알]김현준·전주원부터 양동근까지…프로농구 영구결번

통산 1만19점을 기록, 국내 선수 중 3위에 이름을 올렸다. 또 챔피언에 5차례 올랐고, 챔피언결정전 MVP도 1회 수상했다.

DB의 32번은 김주성(41) DB 코치의 영구결번이다. 서장훈의 뒤를 이은 빅맨으로 2002~2003시즌 DB의 전신 TG에서 입단해 16시즌을 뛰었다.

데뷔 시즌부터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이끈 김주성은 정규리그 우승 5회, 챔피언결정전 우승 3회를 차지했다.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 MVP를 2회씩 기록했다.

국내에서 '달리는 빅맨'의 시작으로 평가받는다. 블록슛 능력이 탁월해 공수에서 존재감이 컸다.

국내 선수 중 통산 블록슛 1위(1037개), 리바운드 2위(4425개), 득점 2위(1만288점)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가장 최근 영구결번의 주인공은 올해 은퇴한 현대모비스의 양동근(39)이다. 김유택의 14번, 우지원의 10번에 이어 현대모비스에서 6번이 세 번째로 영구결번으로 지정됐다.

팀 성적만 따지면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최고 커리어를 자랑한다.

2004~2005시즌 데뷔해 신인상을 수상했고, 2005~2006, 2006~2007, 2014~2015, 2015~2016시즌에 정규리그 MVP를 수상했다.
[서울=뉴시스]여자프로농구 전주원 (사진 = 뉴시스DB)

[서울=뉴시스]여자프로농구 전주원 (사진 = 뉴시스DB)

또 6차례 정상에 올랐고, 챔피언결정전 MVP를 3회 수상했다. 챔피언결정전 우승 6회, 정규리그 MVP 4회, 챔피언결정전 MVP 3회 모두 역대 최다 기록이다. 통산 665경기에서 11.8점 5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안양 KGC인삼공사, 창원 LG, 인천 전자랜드, 부산 KT는 아직 영구결번이 없다.

여자 프로농구 영구결번 전주원·박정은·이미선·변연하 4명

여자농구에선 전주원(48) 아산 우리은행 코치가 2011년 처음으로 영구결번 대상자가 됐다. 현역 시절 활약했던 신한은행에서 0번을 지정했다.

전주원은 1991년 농구대잔치 신인상으로 화려하게 성인 무대에 데뷔해 베스트5와 어시스트 1위를 거의 놓치지 않았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1997년과 1999년 아시아선수권대회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2000년 시드니올림픽과 2002년 세계선수권대회 4강의 주역으로 여자농구 최고 가드로 명성을 떨쳤다. 시드니올림픽 쿠바와의 경기에선 10점 10리바운드 11어시스트로 올림픽 남녀 통틀어 사상 최초로 트리플더블을 기록했다.

1998년 WKBL이 출범하고 2010~2011시즌 은퇴할 때까지 정규리그 통산 330경기에서 평균 10.3점 6.6어시스트를 기록했다. 신한 왕조의 중심이었다.
[스잘알]김현준·전주원부터 양동근까지…프로농구 영구결번

한국 나이로 서른아홉이던 2010년 챔피언결정전 MVP를 수상하기도 했다.

2003년 한 차례 은퇴한 적이 있다. 출산 후, 2년 만에 복귀했지만 전성기 못지않은 패스로 코트를 수놓았다. 첫 번째 은퇴에서 신한은행의 전신 현대가 5번을 영구결번으로 정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신한은행이 이어받지 않았다. 전주원 본인은영구결번은 0번 하나라고 입장을 정리했다.

용인 삼성생명에서 은퇴한 박정은(43) WKBL 경기운영본부장과 이미선(41) 삼성생명 코치의 등번호 11번, 5번도 영구결번이다. 둘 다 삼성생명 유니폼만 입었다.

박정은은 간결한 슈팅과 돌파 능력을 겸비한 효율적인 득점원으로 국가대표의 한 축을 맡았다.

통산 3점슛 1000개로 이 부문 2위에 자리하고 있다. 2007~2008시즌부터 세 시즌 연속으로 3점슛 1위를 차지했고, 2013년 당시 최초로 3점슛 1000개 고지를 밟았다.

486경기에서 평균 13.5점 5.5리바운드 3.7어시스트를 기록했다.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부터 2008년 베이징올림픽까지 4회 연속으로 올림픽 무대를 밟았다.

전주원·박정은·이미선 시드니 올림픽 4강 '견인'…변연하 FIBA 선정 역대 아시아컵 5인

2016년 은퇴한 이미선은 시드니올림픽 4강 당시 막내였다. 전주원의 뒤를 이으며 올림픽,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대회 등에서 붙박이 국가대표 가드로 활약했다.

스틸상과 어시스트상을 각각 10회, 3회 수상했다. 통산 스틸 1107개로 이 부문 역대 1위를 지키고 있다. 어시스트는 2264개로 2위. 통산 502경기에서 평균 10.8점 4.5어시스트 2.2스틸을 올렸다.

슛과 돌파, 패스 등 다방면에서 월등했던 변연하(40) 부산 BNK 코치는 미국프로농구(NBA)의 전설적인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를 떠올리게 한다고 해 '변코비'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2016년 은퇴하면서 청주 KB국민은행이 그의 등번호 10번을 영구결번으로 정했다.

변연하는 개인 통산 3점슛 1014개로 1위에 자리했다. 득점은 통산 7863점으로 정선민(8140점) 해설위원에 이어 역대 2위다.

스틸 역시 843개로 역대 2위, 어시스트는 2262개로 3위에 올랐다. 정규리그 통산 545경기에서 평균 14.4점 4.2리바운드 4.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국제무대에서도 맹위를 떨쳤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과 베이징올림픽을 다녀왔고, 아시안게임에선 금메달 1개와 은메달 2개를 목에 걸었다.

지난해 국제농구연맹(FIBA)이 선정한 '역대 아시아컵 주요 선수 5명'에서 한국 선수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렸다.

※스잘알은 '스포츠 잘 알고 봅시다'의 줄임말로 재미있는 스포츠 이야기와 함께 어려운 스포츠 용어, 규칙 등을 쉽게 풀어주는 뉴시스 스포츠부의 연재 기사입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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