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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문재인의 6년 전 발표와 USB 실체

등록 2021.02.11 07: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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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문재인의 6년 전 발표와 USB 실체

[서울=뉴시스] 김태규 기자 = 정치권을 뜨겁게 달궜던 '북한 원전 건설 추진' 논란을 바라보며 잊고 있었던 6년 전 기억이 오버랩 됐다. 2015년 당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광복 70주년을 기념해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을 발표했다. 수권정당을 표방하는 당 대표로서 필수적으로 갖춰야 할 집권전략 중 핵심을 대국민 기자회견 형식을 통해 공개하는 자리였다.

일요일이던 8월16일 오전 10시30분 당 대표실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한 문 대표는 준비해 온 원고를 약 20분에 걸쳐 읽어 내려갔다. 4899자, 1133개 단어, 120개 문장으로 구성된 '한반도 신경제지도 구상'은 전국에 생중계 됐다. 6개의 후속 질문과 답변까지 포함해 총 25분이 소요됐다. 그 현장에서 문 대표의 구상과 답변을 취재 했었다.

당시 공개된 한반도 신경제 지도 구상은 ▲환동해경제벨트(부산→강원도→북한 동해안→중국→러시아) ▲환황해경제벨트(여수·목포→충청·인천·경기→북한 해주·남포→중국)를 축으로 하는 2개의 벨트에 ▲남방 트라이앵글(부산→나진·선봉항→일본 니카타항)을 구축한 산업경제권을 형성, 한반도 경제통합 및 북방경제협력시대에 대비한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북핵 문제 해결이라는 전제 위에서 제시된 구상은 남북간 철도·항만 연결을 중심으로 한 동북아 물류 허브 기능에 주목한 거시 담론이었다. 환동해경제벨트를 언급한 대목에서 강원도를 중심으로 에너지 산업을 발전시킨다는 추상적 수준의 선언만이 담겼을 뿐, 원자력 발전소 건설 등 구체적인 내용은 찾아볼 수 없다. 집권 후에 문 대통령은 접경지역평화벨트(DMZ 환경·관광벨트)를 추가, 'H자형 벨트' 개념이 담긴 '한반도 평화·경제 구상'을 완성했다.

6년이 지난 이 시점에 당시 취재 메모를 다시 들춰보게 된 건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제기한 의혹 때문이었다. 김 위원장은 산업부의 월성 원전 폐쇄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의 공소장이 언론에 공개된 뒤 사흘만인 지난달 31일 '대북 원전 의혹 긴급 대책회의'를 소집했다. 김 위원장은 "문재인정부가 탈원전 정책으로 대한민국의 원전을 폐쇄하면서 북한에 비밀리에 원전을 지어주려 한 여러 정황이 드러나면서 국민적 분노가 커지고 있다"며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이적 행위"라는 수위 높은 표현까지 사용하며 대여(對與) 공세에 앞장 섰다.

김 위원장이 주장의 근거로 삼은 것은 '월성 원전 폐쇄 의혹'에 대한 감사원의 산업통상자원부 감사 하루 전 실무자가 급히 파기한 문건 목록 제목 중에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이 담겨 있었다는 점이었다. 급히 파기한 정황, 문재인 대통령이 4·27 판문점 남북정상회담 당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도보다리 대화에서 '발전소'를 언급했다는 언론 보도에 기반한 주장이었다. 산업부에서 당시 파기한 문건 원문을 공개하자 문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건넨 USB에 원전 관련 내용이 담겨있을 수 있다며 USB를 공개할 것을 추가로 요구했다.

청와대는 4월 재보궐 선거를 겨냥한 '북풍 공작'이자 색깔론에 기반한 '터무니없는 정치 공세'로 규정했다. 국민의힘의 마타도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문 대통령 반응의 연장선상이었다. 문 대통령은 직접 "버려야 할 구시대의 유물 같은 정치"라며 공세 자제를 당부했다. 국민의힘 측의 USB 공개 요구가 수그러들지 않자 최재성 정무수석이 연일 방송 인터뷰에 나와 맞대응 했다. 국민의힘이 당의 명운을 건다면 USB를 공개하겠다는 '조건부 공개 카드'로 맞불을 놨다.

최 수석이 포커 게임에서 상대 패를 확인하기 위한 규칙인 이른바 '콜(Call)'을 할 수 있던 것은 USB 내용에 대한 자신감으로 해석된다. 당시 한반도 평화 국면의 주역이었던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모두 USB에는 원전에 관한 내용이 일절 없었다고 반박한 것과 무관치 않다. 특히 당시 국정상황실장으로 남북정상회담에 가장 깊숙이 관여했던 윤 의원은 지난 5일 한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 당시 문 대통령이 건넨 USB와 관련된 얘기를 전하며 국민의힘이 제기한 주장의 성립 불가를 얘기했다.

윤 의원은 "USB에 담겨 있는 것은 신경제 구상이라고 해서 문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인 2015년에 발표한 내용"이라며 "정상회담 정식 의제가 아니어서 편한 장소(판문점 평화의집 1층 환담장)에서 줬다"고 말했다. 회담 당일 오전 분위기가 좋아서 자신이 개인적으로 준비해 온 USB를 갖고 문 대통령에게 전달 의사를 물어봤고, 문 대통령이 흔쾌히 받아들여 김 위원장에게 직접 전달하게 됐다는 게 윤 의원의 설명이다. 6년 전 민주당 대표였던 문 대통령의 보좌관이었던 윤 의원이 당시 작성해 서로 잘 알고 있는 '한반도 신경제 구상'을 USB로 담아 건넸다는 상세한 과정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원전 논란'의 종지부를 찍은 것이다.

공교롭게도 지난 5일 윤 의원의 해당 방송 출연 이후 국민의힘 측에서는 USB 내용 공개 등 추가 공세가 수그러든 양상이다. 김명수 대법원장 사퇴 압박으로 대여(對與) 공세의 전선을 옮긴 모양새다. 청와대 역시 김종인 위원장에 대한 법적 검토 카드는 여전히 유효하다는 기존의 원론적 입장 외에는 추가 대응을 자제하고 있다. "이제는 왜 USB 관련 질문이 뜸해졌냐"는 농담 섞인 청와대 관계자의 말에서 지난 6년 간의 맥락들이 떠올랐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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