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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정치권 금융 개입 이대로 좋은가

등록 2021.02.15 16: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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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정치권 금융 개입 이대로 좋은가

[서울=뉴시스] 정옥주 기자 = "하루가 다르게 금융환경이 급변하고 있는데 정치권의 지나친 간섭에 손발이 묶여있다. 차라리 지금이라도 핀테크 기업으로 이직해야 할지 고민스럽다."

"정권 초기마다 금융사들과 '코드'를 맞추라는 압박은 늘 있었지만, 그래도 그 때는 정책과 관련된 주문이 많았다. 지금처럼 노골적인 간섭은 아니었다. 증시 활황에도 제자리걸음인 금융주가 금융업의 미래를 보여주는 게 아닌가 싶다."

정치권의 과도한 개입과 금융당국의 원칙없는 행보에 금융권이 속앓이를 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극복이라는 명분 아래 정치권은 연일 금융권을 압박하며 선심성 발언과 법안을 쏟아내고 있고, 금융당국은 이를 제어하지 못하고 끌려 다니고 있다.

최근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여신금융기관이 임대인의 대출 이자율을 인하하면 국가가 그 인하액의 절반을 보전해주는 법안을 발의했다. 국가와 금융사가 소상공인 등의 사업위험을 함께 부담한다는 취지다.

같은 당 윤재갑 의원 등은 소상공인의 각종 대출·융자, 이자의 납부·상환기간을 유예하고, 최소생계 유지를 위한 무이자 추가 대출을 해주는 법안을 내놨다. 여당에서는 심지어 은행들의 이자를 멈추거나 제한해야 한다는 발언까지 나왔다.

이렇게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소상공인 등의 매출 손실을 메워주거나, 임대료나 대출이자 등을 감면 또는 유예해주는 법안이 발의된 것만 올 들어 20여개에 이른다.

여기에 '이익공유제'는 그 화룡정점이다. 여당은 코로나19에도 이익을 내고 있는 업종이 고통분담 차원에서 피해업종과 이익을 나누는 이익공유제를 추진 중이다.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올린 은행이 이익공유제에 참여해야 할 대표업종으로 거론된다.

정치권은 자발성을 앞세우고 있지만, 기업들의 체감은 그렇지 않다. 정치권의 자발적 참여 요구를 배짱 좋게 거부할 수 있는 민간기업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미증유의 비상시국에 역대급 실적을 내고도 마냥 웃을 수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그런데 금융당국은 정치권의 포퓰리즘 남발에도 '강건너 불구경'이다. 브레이크를 걸기는커녕 정치권의 무리한 요구에 암묵적으로 동조하는 모습이다.

특히 최근 금융당국의 배당 축소 권고는 금융사의 자율경영을 해치는 전형적인 '관치금융'이란 비판을 받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오는 6월까지 국내 은행의 배당 성향을 20% 이내로 낮출 것을 권고했다. 코로나 극복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란 것이다. 우리 뿐 아니라 영국, 유럽연합(EU) 등 선진국들도 하고 있는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설명도 곁들었다.

그러나 금융권에서는 "번 만큼 이익을 공유하라고 해놓고 부실 우려에 대비해 배당을 줄이라는 것은 도대체 무슨 논리인지 모르겠다. 일관성이 없는 것도 글로벌 스탠더드냐"는 비아냥 섞인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결국 배당을 줄여 이익공유제에 참여하라는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오고 있다.

금융권은 코로나 극복을 위해 어느 정도 고통분담을 해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이처럼 시장경제 원칙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일방적인 희생 강요는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이미 은행권은 코로나 관련 대출 원금상환 유예와 이자상환 유예 조치 리스크를 감내하고 있고, 최근에는 폐업 소상공인들도 당초 대출만기까지 일시상환 부담을 미뤄주기로 했다. 금융당국은 또 올 상반기 정책서민금융 출연대상 금융기관을 은행·보험·여전업권으로 확대하는 내용의 서민금융법 개정안 국회 통과도 추진 중이다.

금융권은 "원금과 이자상환을 미뤄주고 재난지원금을 지급하면서 디폴트 위험을 막고 있는 한계기업들이 분명 있을 것"이라며 "도대체 모든 정책이 정상화됐을 때 어떻게 책임질 것인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토로한다.

최근의 공매도 사태는 어떠한가. 금융위는 공매도 금지 조치를 오는 5월2일까지 재연장하고, 이후에는 대형주에 한해 재개하기로 했다. 그간 고집해온 '3월 중 재개 원칙'을 뒤집는 결정이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당초 3월16일 목표였으나 부분 재개로 연착륙을 결정했고, 그러다 보니 전산시스템 정비 등에 두 달 가량 필요하다는 현장의 의견을 감안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공매도 재연장 결정의 배경에는 여권의 압박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간 여당 의원들은 물론 국무총리까지 나서 연일 공매도 금지 연장을 외쳤다. 더욱이 금융위는 그간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지 않다며 반대해온 '홍콩식 공매도 가능종목 지정제도'까지 채택했다. 4월 보궐선거를 의식한 결정이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문제는 정치권의 과도한 금융시장 개입과 이에 떠밀린 금융당국의 근시안적인 대책은 금융시장의 근간을 흔들고, 더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 공매도 문제만 해도 부분 재개를 약속한 5월 초를 앞두고 금융시장엔 또 한 차례 논란이 예고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금융사들에 대한 지나친 압박의 피해는 결국 금융소비자들의 몫으로 고스란히 돌아올 수도 있다. 

무엇보다 정치권과 여론에 떠밀린 대책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코로나 상황은 1년 넘게 이어지고 있고, 언제까지고 금융사들의 팔을 비틀어 상황을 모면할 수는 없다. 더 이상 임시 미봉책이 아닌 분명한 원칙 하에 마련한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현 정부가 기치로 내걸은 금융안정과 혁신의 가장 큰 걸림돌은 관치와 정치"라는 금융권 관계자들의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할 때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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