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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터뷰]'트로트가 무어냐고 물으신다면'…장유정 "위로죠"

등록 2021.02.19 13:5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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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바람속 트로트 논쟁·왜색 시비 분석

'왜색 딱지' 이미자 '동백아가씨' 통념과 달라

장윤정 '어머나'로 트로트→전 세대에 인기


[서울=뉴시스] '트로트가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웃음과 눈물로 우리를 위로한 노래의 역사'. 2021.02.19. (사진 = 따비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트로트가 무어냐고 물으신다면: 웃음과 눈물로 우리를 위로한 노래의 역사'. 2021.02.19. (사진 = 따비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누군가는 여기저기 할 것 없이 TV에서 온통 트로트만 나온다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제까지 트로트가 받았던 오해와 편견, 그 속의 핍박과 설움을 감안하면 지금 트로트의 열풍을 좀 참아주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영원한 것은 없을 테니, 언제까지나 트로트의 열풍이 계속되지도 않을 것이다."(340쪽)

장유정 단국대학교 자유교양대학 교수가 최근 펴낸 '트로트가 무어냐고 물으신다면'은 '트로트 광풍'에 지친 이들을 위한 훌륭한 처방전이다.

'웃음과 눈물로 우리를 위로한 노래의 역사'를 부제로 단 이 책은 왜 갑자기 '트로트 바람'이 불게 됐는지를 톺아본다.

한때 촌스럽고 천박하다는 평가까지 받았던 트로트. 대중가요사에서 트로트는 몇 차례 논쟁의 중심에 섰다. 그것은 모두 트로트의 뿌리와 관련된 것이었다. 바로 '왜색 시비'다.

최초의 트로트 논쟁은 1964년에 발표된 이미자의 명곡 '동백아가씨'에서 시작됐다.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 노래는, 이듬해 돌연 '방송 금지곡'이 됐다. 한일수교를 앞둔 군사정부가 국민들의 반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동백아가씨'에 '왜색'이라는 딱지를 붙였다는 것이었다는 기존 통념이었다.

하지만 장 교수는 당시의 자료를 검토하고 관련자들을 인터뷰한 결과 사실이 아니라고 밝힌다.

서양 음악 전공자, 방송국 음악 담당 실무자 등 이른바 '음악 엘리트'들이 '동백아가씨'의 인기를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 방송 금지의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때 그 음악 엘리트들이 '동백아가씨'를 비판한 근거가 바로 '왜색'이었다.
 
이때 찍힌 왜색이라는 낙인은 1980년대 후반 노래 운동의 하나로, 대중음악을 연구·평론한 이들에 의해 더욱 공고해졌다. "트로트는 체제 순응적인 거짓의 노래로, 일제가 자신들의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이식시킨 갈래"라고 주장한 것이다.

트로트는 엔카인가?...

장 교수는 "트로트가 왜색의 노래라는 주장에는 트로트가 일본 전통음악인 엔카와 같은 갈래라는 믿음이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트로트는 엔카인가? 장 교수에 따르면 일본에서 '엔카'는 연설을 노래로 만든 '엔제쓰카(演説歌)', 즉 메이지 10년대(1877~86)에 일본에서 자유민권사상을 보급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든 노래였다. 일제강점기 당시 엔카라 불리던 노래는 오늘날 우리가 엔카라 알고 있는 노래와는 다르다.

1920년대 초기와 1930년대 재즈와 여타 서양 음악 장르를 받아들여 일본화한 갈래가 1960년대 이후에 '엔카'로 명명된 것이다.

 즉, "일본에서 서양 음악을 받아들여 일본화하고 있을 때, 한반도에서도 서양 음악과 일본 음악을 받아들여 한국의 대중음악이 탄생한 것"이라는 것이 장 교수의 설명이다.

 장 교수는 "그러나 한국인이 당연히 가지고 있는 반일감정, 그리고 지식인 계층의 엘리트 의식이 일제강점기에 형성된 트로트라는 갈래를 우리 노래로 인정하기 어렵게 만들었다"고 전했다.

사실 트로트는 멀고 가까움이 있을 뿐 우리 자장 안에서 삶을 보내고 있었다.

전쟁의 참화를 딛고 재건에 힘쓰던 1960년대에는 향토적인 정서와 도시 지향적인 정서가 공존했고, 마침 이미자와 배호가 있었다. 장 교수는 "돈을 벌기 위해 서울로 향한 임을 그리는 고향 여성을 이미자가 대변했다면, 화려한 도시의 주인공이 되고자 했던 남성은 배호가 상징했다"고 전했다.

그리고 1960년대 후반에 데뷔해 1970년대를 주름잡았고 지금까지 건재한 남진과 나훈아가 있다. 1970~80년대 한국 대중음악계에는 포크와 록이 대유행했는데, 트로트 역시 그 영향을 받아 록 트로트가 탄생했다. 송대관의 '해 뜰 날', 조용필의 '돌아와요 부산항에', 최병걸의 '난 정말 몰랐었네', 윤수일(과 솜사탕)의 '사랑만은 않겠어요' 등이다.

두 여성 트로트 가수는 국민 트로트를 선보였다.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와 김수희의 '남행열차'다.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까지의 가요계에서 김연자, 주현미로 상징되는 '트로트 메들리', 그리고 현철, 송대관, 태진아, 설운도의 '트로트 4인방'을 빼놓을 수 없다.

장 교수에 따르면, 성인이 즐기는 유흥의 노래로 한정되던 트로트가 다시 전 세대가 즐기는 노래가 된 것은 장윤정이 '어머나'를 들고 나온 2000년대 들어서다.

트로트의 생명력은 "다양성 변신 가능하다는 것"

10대들은 아이돌 멤버들이 부르는 트로트를 같이 불렀고, 노년 세대는 '내 나이가 어때서'라며 '백세인생'을 노래했다. 장 교수는 "그렇게 세력을 넓혀가던 트로트가 '미스트롯' 진 송가인과 '미스터트롯 7인방'에서 폭발했다 할 것"이라고 봤다.

그런데 여기서 장 교수는 의문을 던진다. 록 트로트라느니 재즈 트로트라느니 댄스 트로트라는 이름을 마구 붙일 수 있는 이 노래들이 과연 하나의 갈래라고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다.

'노래하는 교수'로도 유명한 장 교수는 "바로 이런 다양성, 변신이 가능하다는 것이 트로트의 생명력"이라고 단언한다. 또 다소 유치할 수 있는 트로트의 노랫말에는 우리를 달래주는 웃음과 눈물이 함께한다고도 강조했다.

"감정 과잉의 고갱이를 보여주는 트로트는, 때로 누군가가 집에서 보내는 일상을 즐거운 시간으로 만들어줄 수 있다. 트로트를 듣고 부르며, 우리는 세대 공감과 소통을 경험하고 정서적 공동체도 회복했다. 단지 그것이 일시적인 현상일지라도, 지금 현재 누군가에게 그 무엇보다 위로가 되는 것은 트로트다." 360쪽, 1만7000원.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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