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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환 화백 "故 이건희 회장은 '광기 품은 예술가'"

등록 2021.03.04 10: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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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3월호 칼럼 통해 추모

【서울=뉴시스】이우환, ⓒ Lee Ufan 사진은 국제갤러리 제공.

【서울=뉴시스】이우환, ⓒ Lee Ufan  사진은 국제갤러리 제공.


[서울=뉴시스] 임종명 기자 = 한국 현대미술의 거장으로 불리는 이우환 화백이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을 '철인', '광기 품은 예술가'로 회상했다.

이 화백은 지난 3일 발간된 '현대문학' 3월호에 '거인이 있었다'는 칼럼에서 "내겐 이 회장이 사업가라기보다 어딘가 투철한 철인이나 광기를 품은 예술가로 생각됐다"며 떠올렸다.

이 화백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늘 마음이 통하는 벗이었는데, 그의 죽음의 순간을 마주치지 못한 채 영원히 헤어지고 말았다"며 "한국을 방문해 검진 등으로 몇 번인가 병원을 찾았을 때 면회를 시도해보았지만 끝끝내 대면하지 못했던 것이 너무 애석하다"고 안타까워하기도 했다.

또 "거의 6년여를 무반응의 생자(生者)로 살다가 끝내는 숨을 거뒀다. 그래도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강한 존재감을 보여주었다"며 이 회장을 그렸다.

"뛰어난 예술작품은 대할 때마다 수수께끼처럼 보이는 이유가 뭐죠?" "예술가에겐 비약하거나 섬광이 스칠 때가 있는 것 같은데, 어떤 것이 계기가 되나요?"

이 회장이 생전 이 화백에게 던졌다는 질문이다.

이 화백은 "이러한 질문 자체가 날카로운 안력(眼力)과 미지에 도전하는 높은 의지의 증거"라고 말했다.

이 회장과의 사연들도 흥미롭다.

그의 자택에 방문했을 때 완당(김정희) 옆으로 쓴 글씨 액자가 눈에 띄었다고 한다. 이 화백은 살기를 띤 듯한 커다란 글씨였다고 설명했다. 당시 이 회장은 글씨에서 으스스하고 섬찟한 바람이 분다면서도 이 정도는 좋은 자극이라고 말했고, 이 화백은 몸에 좋지 않으니 방에서 떼는 게 좋겠다고 권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회장은 당시 이 화백이 떠난 뒤 바로 완당의 글씨를 떼었다고 한다.

2001년 삼성문화재단 지원으로 독일 본시립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을 때의 이야기도 꺼냈다. 이 화백이 당시 이 회장 부부를 만나 "잘 오셨습니다"라고 인사하자 이 회장은 "미술은 제 영감의 원천입니다. 전람회를 보고 있으면 눈이 뜨인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 화백은 "이 회장은 어릴 적부터 고미술과 친숙한 사람"이라고도 했다.

그러면서 "그의 고미술 애호는 선대인 이병철 회장의 영향이 크겠지만, 내가 본 바로는 어느샌가 아버지와는 다른 스케일과 감식안과 활용 방식을 갖추고 있었다"며 "이병철 회장의 고미술 사랑은 이상하리만큼 집념이 강했고 한국의 전통을 지극히 중요시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에 비해 이건희 회장은 한국의 미술품이라 하더라도 작품의 존재감이나 완성도가 높은 것을 추구했고, 언제나 세계적인 시야로 작품을 선별했다"고 전했다.

이 화백은 "삼성문화재단의 이름하에 이 회장이 국내외의 문화예술계에 이루어낸 업적과 역할은 헤아릴 수 없다. 미술 분야만으로도 이루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이벤트나 원조로 미술계를 고무하고 북돋아 줬다"며 "특히 영국 대영박물관,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프랑스 기메미술관 등 많은 주요 박물관·미술관의 한국 섹션 개설이나 확장은 음으로 양으로 이 회장의 의지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고 했다.

아울러 "이 회장에게 미술가의 한 사람으로서 다시 한번 박수를 보내고 만감을 담아 감사를 표한다"며 "어느 한 존재를 잃고 나서야 비로소 그 존재의 크기를 깨닫는 것이 세상의 상례다. 경제계, 과학기술계, 스포츠계는 물론 문화예술계는 최상의 이해자, 강력한 추진자, 위대한 동반자를 잃었다"고 덧붙였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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