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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희의 타로 에세이-2]외로운 박테리아...너의 손을 잡는 것

등록 2021.03.13 09:00:00수정 2021.03.15 11: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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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 타로카드 1번. (사진=조연희 작가 제공)

[서울=뉴시스] 타로카드 1번. (사진=조연희 작가 제공)

[서울=뉴시스]  생명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생물학적으로 보면 기껏해야 0.5㎛~0.5㎜밖에 안 되는 세포 하나로부터 생명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최초의 단세포 박테리아가 현재 약 37조개의 세포를 보유한 인간의 원시 조상이고, 현존하는 3천만 종의 식물과 동물의 시조라는 것이다. 어떻게 작은 단세포 하나가 그토록 많은 생명을 ‘창조’할 수 있었을까?

지구의 나이가 46억살에서 48억살 정도라면 박테리아는 얼추 약 28억살 정도로 추정하고 있다. 침묵과 혼돈의 지구에서 박테리아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포자 상태로 수년 때론 수십 년, 수백 년을 떠돌면서 끈질기게 기다렸다. 그러다 적절한 영양분과 온도를 만나면 비로소 포자를 벗고 세포분열에 돌입했다. 하루 동안 박테리아가 번식할 수 있는 총량이 지구 인구의 몇억배 정도가 된다니…. 그 정확한 수치를 확인할 길은 없지만, 그저 지독한 인내력과 폭발력이 놀라울 뿐이다.

박테리아가 생명의 주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대사’ 능력 때문이었다. 황화수소와 황 같은 물질을 흡수하는 것을 너머 주변의 박테리아와 연합하며 전혀 새로운 유기체로 거듭났다. 광합성을 발명한 것은 식물이 아니라 외로운 박테리아들이었다는 것을. 타자와의 끊임없는 연결과 변형을 통해 생명은 진화돼 올 수 있었다.

문득 창조란 무에서 유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무엇과 연결되며 변종하거나 변형하는 것을 지칭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박테리아가 유전자 교환을 통해 변신을 거듭한 것처럼 말이다.
 

연금술사는 최초의 화학자

라이더 카드를 디자인한 에드워드 웨이트(Arthur Edward Waite)가 박테리아의 대사 방법을 알았을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런데 그가 제시한 ‘창조’의 원리는 박테리아의 이종교배 방법과 신기하게도 닮아 있다.

1번 카드의 제목은 마법사지만 사실 그는 연금술사이다. 중세 이전의 사람들은 이 세상의 만물은 흙(地), 공기(風), 불(火), 물(水)의 4가지 원소로 이루어져 있다고 믿었다.

연금술사들은 이 이론을 황금을 만드는 데 응용했다. 물질을 쪼개고 쪼개, 더는 분해되지 않는 근원 물질들을 추출해 조합하면 전혀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가령 값싼 금속인 구리나 납을 이용해 황금을 만들려고 했고, 수은이나 유황 등에서 추출한 근원 물질을 반응 시켜 불로장생의 약 등을 만들려고 했다. 물론 황금을 만드는 데 실패했지만 이 연금술이 오늘날 화학의 기초가 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마법사의 식탁 위에는 동전, 검, 지팡이, 컵 등 만물의 근원을 상징하는 물질이 놓여 있다. 마법사는 그것으로 무엇인가를 ‘창조’하려는 모습으로 서 있다. 잠깐 부연설명하면 타로에서 흙(地)은 물질을, 공기(風)는 정신적인 것을, 불(火)은 에너지를, 그리고 물(水)은 감정을 상징한다. 창조란 이것들의 끊임없는 조합이며 그 속성들의 결합이며 변형이며, 변종이라고. 삶이란 이 4원소가 반응해서 생로병사와 불로장생, 희로애락 등의 화학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하나님은 최초의 연금술사

그런데 성경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하나님도 인간을 흙으로 빚어, 코로 생명을 불어넣고, 36.5도 체온에, 몸의 70%를 수분으로 채웠다는 것이다. 이것을 우연의 일치라고 해야 할까. 몸이란 곧 ‘地(지)’이고, 코로 생명을 불어넣었다는 것은 곧 ‘風(풍)’을 의미함이 아니던가. 그리고 36.5도 체온이란 ‘火(화)’를, 70%의 수분으로 이루어진 몸은 ‘水(수)’를 상징하고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타로의 마법사가 지풍화수 4원소로 무엇인가를 창조하듯이 하나님도 4원소로 우리 인간을 창조하였던 것이다.

하나님이 최초의 연금술사였단 말인가?

그 최초의 연금술사가 만들어 낸 것이 우리 인간이었던 말인가?

하나님이 지풍화수로 우리 인간을 만들었다면, 그 지풍화수를 내재하고 있는 나는 또한 나의 연금술사가 아닐까. 

[서울=뉴시스] 조연희 ‘야매 미장원에서’ 시인

[서울=뉴시스] 조연희 ‘야매 미장원에서’ 시인

그래서 우리에겐 ‘창조’의 본능이 잠재돼 있는지도 모른다. 
내 안의 지풍화수를 연결하고 대사하여 인생을 ‘창조’해 갈 능력.
그런 의미에서 난, 나의 창조자이다.
내가 무엇이든 할 수 있으며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이유.
또한 너는 나의 창조자이다.
너와의 연대로 내가 새롭게 거듭 창조될 수 있음으로.

인류가 이 세상의 지배자가 된 것이 ‘불’을 다룰 줄 알아서라고 하지만 더 정확한 의미는 불이 가진 속성이 화학변화를 일으켜 새로운 물질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나무와 불과 철과 공기가 만나 바이올린이 되고, 벼와 물과 불이 만나 한 공기의 밥이 되는 것처럼 창조란 서로의 이질적인 속성이 화학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나, 휴면 세포처럼 살았다. 단세포처럼 그저 박테리아로 머물고 싶어 했다. 그깟 상처가 무서워 나만의 세포막에 숨어 있었다. 산다는 것이 주변과 ‘대사’하는 것이고 끊임없는 화학적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라면, 주변과 단절하는 것 그래서 나와 연결마저 끊는 것이 곧 죽음이 아니던가.

너의 손을 잡는 것, 나를 내어주는 것, 그렇게 끊임없이 소통하는 것이 곧 창조이며 세포분열이며 생명을 이어가는 일이라고 마법사 카드는 내게 은밀하게 말해주고 있었던 것이다.

▲조연희 '야매 미장원에서' 시인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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