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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해파리 "종묘제례악은 힙한 음악...이게 진짜 세련이죠"

등록 2021.04.14 08:3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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앰비언트·테크노로 재해석…프로듀서 혜원·보컬 민희 듀오

올해 초 발매한 첫 싱글 '소무-독경' 호평

[서울=뉴시스] 해파리. 2021.04.13. (사진 = 이강혁·하퍼스 바자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해파리. 2021.04.13. (사진 = 이강혁·하퍼스 바자 제공) [email protected]

[서울=뉴시스]이재훈 기자 = "'종묘제례악'은 선율이 흘러가기보다는 그냥 그 음악 자체로 흡수할 수 있는, 웅장함이 좋았어요. 듣기만 해도 '진짜 멋있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음악이라서 좋았습니다."(혜원)

"'종묘제례악'은 개념음악이라서, 선율적으로 듣기 좋게 음정이 배치돼 있기보다 그 음정이 그곳에 있어야 하니까 연주를 하는 거예요. 생각이 앞서야 하는 음악인데, 그런 부분이 '표피 감각'을 건드려 좋았어요."(민희)

얼트 일렉트로닉 듀오 '해파리(HAEPAARY)'는 조선의 왕실 사당인 종묘에서 제사를 지낼 때 쓰던 음악·춤인 '종묘제례악'을 '힙한 음악'으로 탈바꿈시킨 주인공이다.

최근 마포구에서 만난 해파리의 혜원(프로듀서·작곡·연주)과 민희(보컬·작곡·작사)는 "저희가 종묘제례악을 힙하게 바라보고 있다"면서 "저희 둘다 이게 '진짜 세련이지'라는 얘기를 했어요. 그런 태도가 당연하게 드러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종묘제례악은 국가무형문화재 제1호이자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이다. 해파리는 올해 초 발매한 첫 싱글 '소무-독경'을 통해 이 음악을 앰비언트(환경의 일부로서 자연스럽게 청취하게 되는 음악)와 테크노를 버무린 근사한 팝으로 재해석했다. '소무와 독경'은 종묘제례악의 한 곡으로 조상의 무공(武功)을 찬미하는 '정대업'의 첫 노래들이다.

"천권아열성(天眷我列聖·하늘께서 여러 성군을 돌보시고 도우시사) / 계세소성무(繼世昭聖武·대를 이어 밝게 빛내 주시도다)/ 서양무경렬(庶揚無競烈·더할 수 없는 큰 공적을 날리시어) / 시용가차무(是用歌且舞·노래하고 다시 춤을 추나이다)", 세종대왕이 지은 노랫말은 해파리의 음악에서 멋스런 주술로 다시 태어났다.

혜원과 민희가 약적(籥翟)과 간척(干戚)을 들고 추는 정묘제례악의 일무(佾舞·여러 줄로 벌여 추는 춤)도 퍼포먼스로 재현하면서, 종묘제례악의 장엄함과 남성 중심의 권위는 부드럽게 뒤흔들린다.

멜로디보다 악기의 물성을 음악 구성의 주요 개념으로 사용하는 해파리가 종묘제례가 품고 있는 예술적 총체성을 끌어 안으며 '종합 예술'을 선보이고 있는 셈이다. 민희는 "종묘제례의 일무는 제가 아는 군무 중에 가장 미니멀해요. 하늘과 땅을 뜻하는 연주와 어우러져 의미를 만든다"고 했다.

종묘제례악과 남창가곡을 재맥락화하고 있는 혜원과 민희는 전통음악 기반이 탄탄하다. 전통타악 기반 사운드 아티스트인 혜원은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15년 간 전통 타악 교육을 받았다. 민희는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이수자인 정가 보컬리스트다.

서로의 팬이었으나 가깝지 않던 두 사람은 재작년 가을, 앰비언트와 테크노라는 공통 관심사를 발견하고 협업을 시작했다. 지난해 상반기 서울남산국악당의 '남창가곡'을 함께 하면서 팀 구성이 진척됐다. 앰비언트와 테크노를 비롯 자신들이 영향을 받은 다양한 음악적 자양분을 섞는 작업을 하고 있다. 우리 장단과 서양 박의 차이점을 명확히 구분하고, 이를 해체하고나 조합하면서 다양한 음악적 풍경을 그려낸다.

해파리라는 팀명은 어감 자체가 예쁘고, 중립적인 분위기가 좋아 가져왔다. 해파리처럼 유연한 음악을 하고 싶다는 뜻도 담겼다. 민희는 해파리를 온라인 아이디로 사용하고 있었고, 혜원은 털털한 성격 덕분에 어릴 때 '혜팔이'로 불렸다. 두 사람은 "예술작품을 하지 말고 재미있게 작업을 하자"며 의기투합했다.

[서울=뉴시스] 해파리. 2021.04.13. (사진 = 이강혁·하퍼스 바자 제공) photo@newsis.com

[서울=뉴시스] 해파리. 2021.04.13. (사진 = 이강혁·하퍼스 바자 제공) [email protected]

하지만 해파리 역시 작년 코로나19를 피해갈 수 없었다. 팀 결성 이후 관객 앞에서 한 라이브 공연은 딱 한번 뿐이다. 그래도 유연한 해파리처럼 돌파구를 찾고 있다. 온라인으로 눈을 돌린 것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아트 디렉터 윤재원, 드로잉 작가 최성민과 협업한 '반너머' 뮤직비디오는 코로나19 시대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을 위로했다. 몽환적인 애니메이션, 부유하는 전자음악·앰비언트에 남창가곡에 이식한 여성의 목소리가 더해지면서 청각·시각적으로 새로운 정경을 선사했다.

해파리가 심해를 떠다니는 듯한 홈페이지 구성, 버리려던 옷으로 공연 의상을 만드는 등 온오프라인을 넘나들며 쉬지 않고 아이디어를 내는 이유는 오래 음악을 하고 싶기 때문이다. 
 
민희는 "지원금으로 작품을 만들고 아무리 공을 들여도 초연하면 끝이 나는 구조를 반복하다 보니, 심리적인 매너리즘에 빠졌다"면서 "그런 상황에서 '청취용 음악'에 대한 관심이 혜원 씨와 만나면서 더 커졌다"고 했다. "순수 예술로 수련된 저희가 틀이 견고한 음악 산업 안에서 시도하는 하나의 실험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런 도전 속에서 서로가 '천군만마'처럼 여겨진다. 민희는 "혼자서 계속하다 보면 고집을 부리게 되는데 혜원 씨를 만나 깨지게 됐다"고, 혜원은 "혼자하면 갈팡질팡할 텐데 고를 건 고르고, 버릴 건 버리게 됐다"고 긍정했다.

해파리가 지난달 발매한 두 번째 싱글 '철변두-송신'에 대한 반응 역시 심상치 않다. 종묘제례에서 조상신을 떠나보내는 절차를 위한 음악인 '철변두'와 '송신'을 모티브 삼아 환각적 사운드를 들려준다. 뮤직비디오로 주목 받은 '반너머'도 실렸다. 내달 새 싱글을 발매하고 올해 EP를 발매할 예정이다.
 
최근 국악 열풍이 불고 있지만, 해파리의 경우는 궤가 다르다. 이들 역시 주목 받고 있지만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있고 "삶이 바뀌지 않을 거 같다"며 쉽사리 들 떠 있지도 않다. 해파리는 우리 음악이 더 이상 국악이라 불리지 않을 때, 우리음악이 일상에서 진정으로 그 지위를 획득할 것이라 믿었다.

민희는 "마치 백인 남성은 사람이라 부르고, 한국인 여성은 곧 죽어도 한국 여성이라 부르는 격"이라고 했다. "현 사회현상적에서 국악이라는 분류를 인정하지만, 긍정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국악이라는 말이 없어질 때, 저희가 종묘제례악을 해도 그냥 음악이라며 특이하지 않게 바라볼 때가 진짜 음악 환경이 달라진 때가 아닐까요?"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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