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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희의 타로 에세이-5] 열린 감옥

등록 2021.04.24 09: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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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연희의 타로 에세이-5] 열린 감옥


[서울=뉴시스]  지금도 아버지를 떠올리면 미분양 아파트에 켜져 있는 전등 불빛처럼 쓸쓸해진다. 특히 아버지의 죽음을 떠올리면.

무허가 아버지

아버지는 그의 인생처럼 무허가 집에서 살다 생을 마감했다. 집터는 우리 것이었지만 그중 5평 남짓은 서울시의 땅을 무단으로 점유한 상태였다. 그 위에 올린 집은 한마디로 무허가 건물이었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잘 방부 처리된 미라처럼 누워만 있었다.

언니를 대신해 내가 아버지 병간호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그런데 아버지가 평소와 달랐다. 입술이 타들어 가는 듯 건조했고 옆에 있는데도 열기가 후끈 느껴졌다. 심상치가 않아 열을 재보니 40도가 넘어가고 있었다.

서둘러 요양사인 언니에게 전화했다. 아버지의 몸에서 열이 나는 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라며 119를 부르라고 했다. 나는 아버지 얼굴에 찬물수건을 얹어 준 다음 119에 전화를 했다. 그 사이 언니가 택시를 타고 달려왔다.

언니는 방에 들어오자마자 이불을 걷어내더니 익숙한 동작으로 아버지 옷을 벗겼다. 미처 저항할 새도 없이 언니는 아버지 팬티까지 모두 벗겼다. 그리고 난 그만 그것을 보고 말았다. 무성한 잡초밭에 놓인 탁구공만한 내 태생지를. 언니는 찬물 수건으로 아버지의 온몸을 닦아냈고 그러는 동안 119 구급대원이 들것을 들고 왔다.

경황이 없는 그 상황에서도, 119를 타고 같이 병원에 가면서도 자꾸 무성한 덤불에 놓여 있던 탁구공만 한 내 태생지가 떠올랐다.

자꾸 눈물이 났다. 그 초라한 태생지가 나의, 그리고 아버지의 초라한 현실을 대변해주는 듯했다. 그 탁구공이 마치 무단으로 점유한 덤불에 무허가로 던져진 나의 모습만 같았다. 아니 아버지 같았다. 평생 무허가 건물에서 살았던 아버지의 무허가 자식이 바로 우리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숙명처럼 세상의 외곽을 전전해야 했던.

황제의 돌의자

4번 카드의 주인공은 황제다. 한눈에 사각형의 이미지가 떠오르는 이 카드는 권위, 안정 등을 뜻한다. 구조는 질서를 만들지만 질서는 구조로 우리를 통제한다. 그래서 실전에선 상황에 따라 고집, 보수적이란 의미로 해석하기도 한다.

그런데 왜 황제는 돌의자에 앉아 있는 것일까? 속세에서 최고의 권력이 푹신푹신하고 안락한 의자 같은 것이 아님을 말해주는 것일까.

그뿐이 아니다. 황룡포 안에 갑옷을 입고 허리를 꼿꼿하게 세운 모습이 언제고 전쟁터에 달려 나갈 기세다. 얼굴은 잔뜩 굳어 있으며 눈빛도 경계심으로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돌의자 뒤에 양 갈래로 가늘게 실개천이 흐르고 있다. 아무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은 황제의 속마음일까.
 

나는, 나갈 수가 없다

사실 난 아버지가 가족을 위해 권위적이고 융통성 없는 가면을 써야 했다는 것을 알면서도 뭔가 핑계가 필요했다. 이 세상 덤불을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무허가 유전자를 물러 준 아버지를 원망이라도 해야 할 것 같았다. 독이 오른 뱀처럼 머리를 쳐들고 아버지 탓을 하면서 꼿꼿하게 풀숲을 헤쳐나가고 싶었다. 가끔 아버지가 술에 취해 젖은 목소리라도 낼라치면 일부로 나를 급속도로 냉각시켰다. 행여 아버지의 고독감을 응시하게 될까 봐 늘 외면했다.

아버지의 유품에서 지갑이 발견되었을 때, 그 안에 천 원짜리 몇 장이 들어 있는 것보다 내 사진이 꽂혀 있는 것에 부러 짜증을 냈다. ‘왜 뚱뚱하고 못생긴 사진을 갖고 다니신 거야’하며.

특히 엄마에게 혹독했던 아버지는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 엄마는 아버지 아내이기도 했지만 내 엄마이기도 했다. 그것을 잊고 있던 아버지에게 난 관대할 수 없었다. 그런 이유에서라도 아버지는 강해야 했다. 내 비난을 묵묵히 감내할 수 있을 만큼.

그런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난 형기를 마쳤으면서도 감옥 밖으로 나갈 수 없는 죄수 아닌 죄수가 돼 있었다. 난 탈옥의 기회마저 빼앗긴 것이다. 

아버지는
감옥이었다.
문이 열렸지만
나는
나갈 수가 없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내게 열린 감옥이었던 것이다.

▲조연희 '야매 미장원에서' 시인 [email protected]

※이 글은 점술학에서 사용하는 타로 해석법과 다를 수 있으며,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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