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미래생각]걷기, 미래도시의 길라잡이

등록 2021.05.20 13:00:00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서울=뉴시스]민보경 국회미래연구원 삶의 질 그룹장

[서울=뉴시스]민보경 국회미래연구원 삶의 질 그룹장

[서울=뉴시스]  인류의 시작은 두 발로 걷기 시작하면서부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간은 걷기 시작하면서 두 손이 자유로워졌고 이는 곧 도구의 사용으로 이어졌다.

철학자 칸트는 사유하는 시간을 가지기 위해 일정한 시간에 정해진 길을 걸었다. 걷기에 대한 의미를 거창하게 설명하지 않더라도 걷는 것은 우리에게 매우 일상적인 중요한 행위이다.

많은 도시들이 수변공간이나 도시 숲을 활용한 산책로처럼, 다양한 어메니티(amenity)를 활용하여 시민들이 걷기 좋은 경관을 만들어내기 위해 정책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이는 시민들의 걷고 싶은 요구(needs)를 반영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걷고 싶다'라는 시민들의 인식에 정책적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우리 대도시의 대표 격인 서울을 보자. 1960~1970년대, 이촌향도(離村向都)로 인한 급속한 인구유입과 노동집약적 산업화의 공간이었던 서울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교통난을 겪게 되어 대중교통수단의 확충이 시급한 과제였다.

1950년대까지 서울의 대표적 대중교통수단으로 자리 잡았던 노면전차가 1968년 역사적 뒤안길로 사라진 이후 버스와 택시가 시민들의 발이 되었고, 1974년 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면서 서울은 대중교통체계를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1980년대 이후 서울의 교통정책은 자동차의 급속한 증가와 신시가지의 조성 등으로 늘어나는 인구의 효율적 이동방안을 마련하는 데 주력했다.

1980년대를 거치면서 경제성장에 따른 급격한 차량 증가와 새로운 도로공급이 자가용 수요를 만들어내는 악순환은 만성적인 교통체증으로 이어졌다. 자동차 수는 1980년 20만대, 1985년 45만대, 1990년 120만대로 증가했으니 인구와 더불어 도시의 차량도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도시교통정책의 목표는 차량의 원활한 교통흐름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고, 시민들의 보행권이나 대중교통의 편리성, 걷고 싶은 도시는 미처 인식하지 못했다.

뉴어바니즘(New Urbanism)은 걷고 싶은 도시 만들기를 위해 주거지, 사무실, 상점, 교육문화시설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시설을 도보로 이동 가능한 거리에 배치하는 복합용도(mixed-use) 개발을 강조한다.

이러한 개념은 이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정치가들에 의해 차용되면서 교통혼잡, 환경오염 등 도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전히 도심에 직장이 있는 상태에서 도보 거리에 직주근접을 실현하는 것은 먼 이야기로만 느껴진다.

그러므로 대중교통중심 개발(Transit-Oriented Development, TOD)을 통해 자가용 이용을 줄이고 도보로 이동하여 환승할 수 있어야 한다. 즉, 교통결절점을 중심으로 한 고밀도 개발의 압축도시(compact city)의 시행은 걷기 편한 환경을 제공하는 것과 연계될 수 있다.

이는 자원을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고 자가용의 수요도 줄이면서 에너지 절약과 환경오염 감소를 가져온다.

도시경제학자 에드워드 글레이저(Edward Glaeser)는 자연을 사랑한다면 거기에서 멀어져 걸을 수 있는 도시로 가라고 주장한다. 도시에서의 이동 수단이 걷기라면, 전원에서의 이동은 자동차를 이용해야 하기에 탄소배출량이 많아진다는 것이다.

데이비드 오웬(David Owen)은 그의 저서 '그린 메트로폴리스(Green Metropolis)'에서 뉴욕 맨해튼 사람들은 1920년대 중반부터 개인별 화석연료 소비가 미국 평균 소비량에 미치지 못한다고 설명한다. 전원에서의 삶이 대도시에서의 삶보다 친환경적일 것이라는 인식이 착시일 수 있다는 지적이다.

걷기는 시민들의 건강을 증진하여 개인적 측면뿐 아니라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게 한다. 공중보건학자인 리차드 잭슨(Richard Jackson)의 연구에 따르면 걷는 도시는 비만, 교통사고, 천식, 우울증 등을 줄임으로써 사망률을 낮추고, 사회 전반적으로 의료비용을 감소시킬 수 있다.

걷기는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운동인 셈이다. 우리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2020년 국민생활체육조사에 따르면 한국인이 가장 많이 하는 운동은 걷기(41.9%)이다.

사람이 많이 지나다니는 곳에서 범죄가 일어나기 쉽지 않다. 제인 제이콥스(Jane Jacobs)는 수많은 거리의 눈(eyes on the street)이 감시(surveillance)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그녀는 거리 위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움직임과 변화를 "보도(步道)에서의 발레(sidewalk ballet)"라고 일컬었다.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불규칙한 질서는 즉흥적인 발레와 같으며 그러한 도시는 활력을 가진다. 그렇다면 무엇이 도시에서 시민을 걷게 할까. 걷고 싶은 거리에 대한 가장 큰 착각은 녹색이 가득한 자연의 길이 시민을 걷게 할 거라는 기대이다.

도시에서의 걷기는 단지 여가를 위한 활동을 뜻하는 것이 아니며 도시라는 유기체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자연으로 이루어진 산책로만이 아니라, 사람과 공간이 상호작용하며 활기찬 거리가 만들어질 때 비로소 도시에서의 걷기는 완성된다.

미국의 도시학자 제프 스펙(Jeff Speck)은 걷기 위한 조건으로 ▲유용할(useful) 것 ▲안전할(safe) 것 ▲편안할(comfortable) 것 ▲흥미로울(interesting) 것을 제시한다. 이 네 가지를 모두 만족하는 것은 단조로운 자연의 길이라기보다, 이용하고 둘러볼 곳이 많은 도시의 거리일 것이다.

도시에서도 블록이 넓고 지루한 거리가 아닌 촘촘한 골목마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는 그런 거리에서 우리는 걷고 싶어진다.

우리의 정주(定住)공간인 도시의 미래 모습은 무엇일까. 미래지향적 도시 모델로서의 스마트도시는 최신의 기술을 활용하여 도시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고 시민의 편리한 삶을 위해 점점 진화하고 있다. 걷고 싶은 도시를 위한 계획이나 설계 역시 미래도시에 반영되어야 한다.

걷기 좋은 도시를 만드는 것은 포용 도시로 나아가도록 한다. 자동차의 흐름을 방해하지 않도록 보행자가 육교로, 지하도로 멀리 돌아갈 것이 아니라 보행자 중심으로, 장애인과 노약자들도 걷기 좋은 도시를 만들어야 한다.

기후위기를 걱정하며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온갖 녹색 기술 대책을 고민하지만, 자동차 대신 걷는 것만으로도 의외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걷는 것은 고령화 시대에 가장 적절한 교통수단이다. 걷기 좋은 도시가 미래로 가는 스마트한 도시로의 지름길을 안내해줄 것이다.

민보경 국회미래연구원 삶의 질 그룹장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