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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포장지 '남혐' 몰이 성대결 확산 안된다

등록 2021.05.26 15:35:15수정 2021.05.27 09:5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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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포장지 '남혐' 몰이 성대결 확산 안된다

[서울=뉴시스] 최지윤 기자 = 편의점 GS25가 쏘아 올린 ‘그 손가락’ 여파는 어마어마했다. 조윤성 사장이 직접 사과했지만 불매운동은 멈추지 않았고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등장했다. BBQ, 무신사, 농심, 오비맥주, 교촌치킨, CU 등 유통·식품업계 전반으로 불씨가 이어졌다. 혹여 남성 혐오 기업으로 낙인 찍힐까봐 잔뜩 몸을 사리는 분위기다.

이번엔 닭가슴살 플랫폼 랭킹닭컴이 집중포화를 맞았다. MLB파크, 에펨코리아 등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랭킹닭컴에서 판매 중인 ‘잇메이트 닭가슴살 소시지 청양고추 맛’ 포장지를 문제 삼았다. ‘고추 맛’ 글자 위에 그려진 손가락 모양 탓이다. 2017년 폐쇄한 커뮤니티 메갈리아에서 한국 남성 성기를 비하할 때 쓰는 이미지와 비슷했다. 엄지와 검지로 길이를 재는 듯한 모습은 ‘한국 남성 성기 길이가 짧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메갈리아 등에선 이를 ‘소추’(작은 성기)라고 표현한다.

일부 남성들은 다른 제품과 달리 유독 청양고추 맛 포장지 속 손모양이 노골적이라고 지적했다. 확인 결과 ‘잇메이트 닭가슴살 소시지 오리지널·마늘 맛’에도 똑같이 손모양이 구부러져 있었다. 물론 랭킹닭컴에서 판매하는 볶음밥, 만두 등의 포장지에는 손가락이 펴진 상태로 그려져 있다.
 
랭킹닭컴은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대역죄인이 된 듯 고개를 숙였다. 지난 24일 홈페이지에 “패키지 디자인에 문제가 있다는 고객 의견에 충분히 공감한다. 회사 내부에서 제대로 관리·감독 못 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 유관부서의 내부 감사를 통해 원인을 밝혀내고 다시는 동일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논란이 된 패키지를 전면 교체할 예정”이라며 “추가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제보하면 즉시 반영하겠다”고 약속했다.

치킨 프랜차이즈 BBQ 역시 홈페이지와 앱에 게재한 사이드메뉴 ‘소떡’ 사진으로 곤욕을 치렀다. 구워진 소시지를 손으로  집어 ‘남혐’ 논란에 휩싸였다. 농심은 ‘누들누들 체험단’ 모집 홍보물이 도마 위에 올랐다. 지난 4월 해당 게시물에서 엄지와 검지를 구부려 ‘배홍동 비빔면’을 잡는 듯한 모습을 취했다. 남혐 의심을 받자, 이달 체험단 홍보물에서는 그 손가락을 뺐다.

애꿎은 피해자도 발생했다. 무신사, 교촌, 오비맥주 ‘핸드앤몰트’ 등은 단순히 홍보물, 패키지 등에 손 모양을 넣었을 뿐인데 남혐 의혹을 받았다. 불필요한 오해를 줄이고자 모두 해당 이미지를 수정·삭제했다. 과거 홍보 게시물까지 검열 대상이 돼 ‘손가락 주의보’가 내려졌다.

일부 소비자들은 ‘굳이 그 손가락을 사용해야 하느냐’고 의문을 제기했다. 요즘은 손가락 조심해야 한다며 “주먹 쥐고 다녀야겠다”는 우스갯소리가 들려왔다. “GS25 덕분에 저 손가락과 소시지만 보면 메갈이 떠오른다” 등의 반응도 보였다.

GS25 홍보 포스터 논란이 일어났을 때만 해도 ‘극대화된 의심’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았다. 이런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 ‘합리적인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기업이 남성 혐오 의도를 가지고 홍보물, 패키지 등을 제작했다면 비난 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손 모양을 넣었다고 무조건 남혐과 연결지어 몰아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손가락 사인 하나에 바들바들 떨면서 스스로 비참하다는 생각은 안 드니? 웃으면서 얘기하지만, 처절한 어리석음에 솔직히 속으로는 눈물이 난다”고 비판했다. “일베(일간베스트)랑 메갈이 싸우는 게 젠더 갈등이냐?”며 꼬집기도 했다. 젠더 갈등을 과도하게 부추기고, 일부 싸움이 아닌 남녀 전체 성 대결로 확대하는 현상을 경계해야 할 때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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