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꼬이는 한일 관계①]한·일 정상회담 불발, 누구 책임인가

등록 2021.06.15 13:29:55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정례 독도훈련 이유로 회담 취소, 일본의 '외교 결례'

日 "그런 사실 없다" 부인하면서도 독도훈련에 유감

文, 약식 회담 계기 한일 관계 복원 물꼬 계획에 차질

[꼬이는 한일 관계①]한·일 정상회담 불발, 누구 책임인가

[서울=뉴시스] 이국현 기자 =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추진했던 한·일 정상회담 불발된 것을 놓고 양국 간에 신경전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 내에선 일본 정부가 매년 정례적으로 실시되는 동해영토 수호훈련을 이유로 잠정 합의했던 약식 회담에 응하지 않은 것은 '외교 결례'라는 비판이 거세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그런 사실이 전혀 없다"고 부인하면서 오히려 한국 정부에 탓을 돌리고 있어 진실공방이 벌어졌다. 악화된 양국 관계에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지는 형국이다.

15일 외교부에 따르면 한일 양국은 지난 11~13일(현지시간) 영국 콘월에서 열린 G7 정상회의 기간에 약식 정상회담을 한다는 원칙에 공감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이른바 '독도 방어 훈련'인 동해영토 수호훈련 실시에 반발하면서 일방적으로 회담에 불응한 것으로 파악됐다.

한일이 조율했던 회담은 정식 회담은 아니지만 소파나 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방식의 '풀 어사이드 미팅(pull aside meeting)' 형태였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 문재인 대통령은 12일(현지시간) 1세션 회의가 열리기 전 스가 총리에게 다가가 "반갑다"는 인사를 겐넸지만 회담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1분 만에 마무리됐다.

외교가에서는 해마다 실시되는 훈련을 이유로 정상회담을 취소한 것은 외교 결례일 뿐만 아니라 납득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우리 군은 일본 극우세력의 독도 침입 상황에 대비해 1996년부터 정례적으로 훈련을 실시해왔다. 2008년부터는 매년 상반기와 하반기에 1차례씩 훈련했다. 해군은 오는 15일 예정대로 동해영토 수호훈련을 실시할 방침이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약식 회담을 일방적으로 취소했다는 한국의 주장을 즉각 부인하고 나섰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은 전날 오후 기자회견에서 '동해영토 수호훈련 이유로 정상회담을 취소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런 사실이 전혀 없다"며 "사실에 반할 뿐만 아니라 일방적인 발신은 매우 유감으로 즉각 한국에 항의했다"고 반발했다.

그는 이어 "일정 등의 사정으로 한일 정상회담은 이뤄지지 않았다고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가토 대변인은 동해영토 수호훈련에 대해서는 "극히 유감"이라며 "11일 한국 정부에 강력히 항의하고 훈련 중단을 요구했다"고 인정했다.

외교가에서는 한일 양국이 G7 회의를 앞두고 약식 회담에 대한 의견을 조율한 것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정식 회담이라면 거절한 후 부인할 수 없지만, 약식 회담은 잠깐 만나서 환담하는 형태인 만큼 약속하고도 취소할 수 있는 분위기로 몰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나가면서 '밥 한 번 먹자'는 식으로 의례적인 이야기가 아니었냐는 의문도 제기됐지만, 정부 측에서는 '공식적인 약속이었다'며 외교 결례가 분명하다는 입장이다.
[콘월(영국)=뉴시스]박영태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영국 콘월 카비스베이에서 열린 '기후변화 및 환경' 방안을 다룰 G7 확대회의 3세션에 참석해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남아공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 문 대통령,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 미국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일본 스가 요시히데 총리. 2021.06.13. since1999@newsis.com

[콘월(영국)=뉴시스]박영태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영국 콘월 카비스베이에서 열린 '기후변화 및 환경' 방안을 다룰 G7 확대회의 3세션에 참석해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남아공 시릴 라마포사 대통령, 문 대통령, 영국 보리스 존슨 총리, 미국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일본 스가 요시히데 총리. 2021.06.13. [email protected]

일각에서는 일본이 동해영토 수호훈련을 표면에 내세웠지만 실질적으로 약식회담에 응할 의지가 없었던 것이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일본 언론은 회담 무산 배경에 강제징용과 위안부 피해 배상 문제 등 과거사 문제가 배경에 있다고 집중 보도하면서 회담 무산의 책임을 한국에 떠넘기고 나섰다.  

스가 총리는 G7 정상회의 폐막 후 13일(현지시간) 동행 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국가와 국가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상황으로, 그 환경(한일 정상회담을 개최할)이 아니다"고 말했다. 강제징용과 위안부 피해자 등 과거사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해법 없이 만나지 않겠다는 그간의 입장을 재차 확인한 셈이다.

마이니치신문은 이날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및 위안부 문제에 구체적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는 한국 정부에 대한 불신감이 깊어 처음부터 회담을 하는데 부정적이었다"고 보도했다. 이어 일본 외무성 고위 관계자를 인용해 "내용 없는 회담을 계속하는 것이 의미가 있느냐"며 한일 정상회담을 해도 관계가 진전될 가능성은 없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본이 취소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며 "일본의 결례이지만 놀랍지는 않다. 일본도 부인하지만 그 전에도 사실 정상 간 만남을 위해 조건을 계속 달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G7에 한국이 공식 초청을 받아 국제사회에서 위상이 높아진 것을 거론하면서 "일본은 한국이 계속 부각되면서 여러가지 심술도 나는 것 같다"며 "한국은 만나자고 얘기하는데, 일본이 항복을 전제하는 조건을 내세운다는 것은 한국에 외교적으로 결코 불리하지 않다. 한일 관계를 개선해야 되지만 우리가 그렇게까지 굴욕적으로 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한편 문 대통령은 G7 계기 약식 회담에서 과거사 문제 해결 의지를 스가 총리에게 전달하고, 한일 관계 복원의 물꼬를 트겠다는 계획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일본 측이 한국과의 회담에 소극적으로 나선 것은 물론 독도 문제까지 끌어들이면서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