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68년만에 찾은 6·25아버지③]유공자 인정까지 16년 '고난의 대장정'

등록 2021.06.24 05:01:00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공적 자료 찾는데 어려움…호적 정정 등 소송까지 불사

호적 소송서 DNA 검사 의무화 추세지만 비용 부담 커

수기 작성으로 인한 기재 오류도…16년 만에 묘적부 변경

[전주=뉴시스]김얼 기자 = 한국전쟁 종료 한 달을 앞두고 북한의 폭탄에 사망한 故 하사 이점수 씨의 딸 이길수 씨가 21일 전북 전주시 낙수정 군경묘지에서 아버지의 이름과 자신의 이름이 적힌 묘비를 바라보고 있다. 2021.06.21. pmkeul@newsis.com

[전주=뉴시스]김얼 기자 =  한국전쟁 종료 한 달을 앞두고 북한의 폭탄에 사망한 故 하사 이점수 씨의 딸 이길수 씨가 21일 전북 전주시 낙수정 군경묘지에서 아버지의 이름과 자신의 이름이 적힌 묘비를 바라보고 있다. 2021.06.21. [email protected]

[전주=뉴시스] 윤난슬 기자 = 국가를 위해 공헌하거나 유·무형의 피해를 본 이들에게 정부는 그에 합당한 보상과 예우를 해주고 있다. 또 그 가족과 유족에게도 혜택과 지원이 뒤따른다.

무엇보다 국가유공자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병적 및 경력증명서와 군 복무 증명서, 제적등본, 가족관계증명서 및 입양 관계증명서 등의 서류를 갖추고 국가보훈처 등에 접수한 뒤 자격이 된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이 같은 자료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많은 어려움이 따르는 실정이다. 어지러운 전시 상황 등에서 공적을 입증할 만한 행적 기록이나 공식 자료 등이 충분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6·25 한국전쟁 당시 아버지를 잃고 친척의 딸로 살아온 60대 여성이 소송을 통해 68년 만에 호적을 바로잡고 유공자로 인정됐다.

이처럼 한국전쟁 71주년임에도 우리 사회에는 아버지의 참전 기록을 스스로 찾고 소송을 통해 유공자로의 대우를 힘겹게 찾아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동서학동 남고산성 중턱 마을에 살던 이길순(69·여)씨는 부친인 고(故) 이점수씨가 6·25 한국전쟁으로 희생되자 둘째 큰아버지의 호적부에 올랐고, 지금까지 사실과 다른 가족관계 기록을 안고 살아왔다.
 
아버지는 1952년 8월 당시 임신 중인 아내를 두고 경기도 연천지구 전투에 나섰다가 82㎜ 박격포탄에 의해 숨졌다.

이후 고인의 유골은 화장돼 전주 군경묘지에 안장됐다. 당시 숨진 아버지의 유골은 이씨 어머니 대신 아버지 형제와 마을 사람이 받았다.

이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50여년 만인 2005년 7월 본(本)을 찾기로 결심하고 전인석(58) 전주시 완산구 지역대장을 만나 16년 만에 가족관계를 바로 잡을 수 있었다.
[전주=뉴시스]김얼 기자 = 전인석 예비군 대장(왼쪽)과 故 하사 이점수 씨의 유가족이 21일 전북 전주시 낙수정 군경묘지를 찾아 묘비에 인사를 하고 있다. 2021.06.21. pmkeul@newsis.com

[전주=뉴시스]김얼 기자 = 전인석 예비군 대장(왼쪽)과 故 하사 이점수 씨의 유가족이 21일 전북 전주시 낙수정 군경묘지를 찾아 묘비에 인사를 하고 있다. 2021.06.21. [email protected]

다만 이 과정에서 황당한 사실들을 발견했다. 묘적부(묘적에 관한 사항을 기록한 관공서의 장부)에는 아버지가 아닌 '동명이인'의 다른 사람으로 기록돼 있었다.
 
이는 예전에는 전부 수기로 문서를 작성한 데다가 호적에 등재된 이름과 집 안에서 부르는 이름이 달라 빚어진 문제였다.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히면서 공백으로 남은 아버지의 자리를 되찾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어머니의 딸이라는 것도 먼저 풀어야 할 과제였다. 의식 없이 말도 못 하는 아흔이 된 노모를 대상으로 유전자(DNA) 대조검사를 통해 모녀 관계를 입증했다.

여기서 또 다른 시련이 닥쳤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혼인 신고를 하지 않았던 터라 법적으로 어머니는 아버지 집 안에 없는 사람이었던 것. 이씨는 법원에 '친생자 관계 존재 여부 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확실한 증거를 찾기 위해 법원으로부터 허가를 받아 군경묘지에 안장된 아버지의 유골을 꺼낸 뒤 DNA 감식에 나섰다. 화장된 경우에는 통상적으로 DNA가 검출되지 않지만, 전쟁통에 화장된 경우에는 고온에 노출되지 않은 유골이 있을 수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을 고려한 조치였다.

그러나 화장된 유골에서 DNA는 검출되지 않았다. 이에 ▲육군본부가 부녀관계를 인정해 이씨에게 화랑무공훈장을 수여한 사실 ▲어머니와 이씨 사이에 친생관계가 있다는 확정판결 ▲어머니가 아버지의 전사 후 미혼으로 살아온 사실 등을 재판부에 적극 소명했다. 그 결과 법원으로부터 부녀관계라는 것을 최종 인정받았다.

이를 근거로 이씨 유족 측은 지난해 5월 26일 전주시청에 '유가족 전사자 및 전주 군경묘지 묘비명, 묘적 대장 정정'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냈고, 전북동부보훈지청에는 국가유공자 등록 요청 공문을 제출했다.

그 결과 같은 해 11월 27일 국가유공자 등록 결정 통지를 받았으며, 12월 2일 국가유공자 증서 및 국가유공자증을 발급받게 됐다.
[전주=뉴시스]김얼 기자 = 전인석 예비군 대장(오른쪽)과 故 하사 이점수 씨의 딸 이길수(왼쪽) 씨가 21일 전북 전주시 낙수정 군경묘지를 찾아 묘비를 바라보고 있다. 2021.06.21. pmkeul@newsis.com

[전주=뉴시스]김얼 기자 = 전인석 예비군 대장(오른쪽)과 故 하사 이점수 씨의 딸 이길수(왼쪽) 씨가 21일 전북 전주시 낙수정 군경묘지를 찾아 묘비를 바라보고 있다. 2021.06.21. [email protected]

전 대장은 "전쟁 때 부모를 잃은 유족들이 가족관계를 정리하지 못해 불편·불행을 안고 살고 있다"며 "필기 하나 잘못해 온 가족이 한평생 얼마나 힘들었겠느냐"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소송을 통한 호적 정정은 법적 절차가 어렵고 까다로운 게 사실이다. 특히 호적을 바로 잡기 위해서는 친자 확인을 위한 DNA 검사 결과를 의무화하는 추세"라며 "이 비용이 대략 300만~500만원 정도인데 호적 정정 대상자들은 보통 어려운 삶을 살고 있어 쉽지 않은 상황이다"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전북동부보훈지청 관계자는 "이씨 아버지처럼 (한국전쟁) 당시에는 집 안에서 부르는 이름과 호적상 이름, 군대에서 부르는 이름이 다른 경우가 간혹 있었다"면서 "이씨의 경우 아무래도 어머니가 아버지와 사실혼 관계다 보니 부녀관계를 입증하는 데 있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국가유공자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병적증명서, 제적등본 등의 서류가 필요한데 이들 서류가 없으면 인우보증서나 참전 당시 찍었던 사진 등을 증거 자료로 제출하면 심사를 거쳐 사실관계서를 발급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70년 가까이 6·25만 되면 가슴이 먹먹했다는 이씨. '아버지 찾기'라는 평생소원을 이룬 이씨는 올해 드디어 다른 사람의 명의가 아닌 진짜 아버지의 묘지에 아버지의 딸로서 당당히 찾아갈 수 있게 됐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