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이스북
  • 트위터
  • 유튜브

'비폭력·반전주의 신념' 입영거부, 대법서 첫 무죄 확정

등록 2021.06.24 10:51:59

  • 이메일 보내기
  • 프린터
  • PDF

페미니스트 성소수자, 현역병 입영 거부

여호와의 증인 외 다른 종교인 첫 무죄

"종교적 양심 및 정치적 신념 따라 거부"

1심, 실형 선고→2심, 무죄→대법, 확정

'비폭력·반전주의 신념' 입영거부, 대법서 첫 무죄 확정

[서울=뉴시스] 박민기 기자 = 전쟁과 폭력 등에 반대하는 자신의 기독교적 신앙과 정치적 신념에 따라 병역을 거부한 남성에게 무죄가 확정됐다. 이는 교리를 통해 병역을 거부할 것을 교육하는 여호와의 증인을 제외한 다른 종교인의 현역병 입영 거부에 대해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수긍한 최초 판결이다.

대법원 1부(주심 김선수 대법관)는 병역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모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6개월 실형을 깨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24일 밝혔다.

정씨는 2017년 11월14일까지 입영하라는 서울지방병무청장 명의의 현역 입영통지서를 전달받고도 정당한 사유 없이 입영일로부터 3일이 지난 11월17일까지 입영하지 않은 혐의를 받는다.

성소수자인 정씨는 고등학교 때부터 획일적인 입시교육과 남성성을 강요하는 또래 집단문화에 반감을 느끼며 사회의 기존 가치체계에 의문을 품게 됐다. 이 과정에서 정씨는 기독교 신앙에 의지하게 됐다.

지난 2007년 대학 입학 후 여러 선교단체에 가입한 정씨는 '용산참사 문제 해결 1인 시위', '한국전쟁 60주년 평화기도회 반대 시위' 등에 참여하면서 사회적 약자에게 고통을 안기는 전쟁과 타인에 대한 폭력을 가할 것을 전제로 존재하는 군대가 기독교의 교리와 양립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이후 정씨는 다양성과 평등을 핵심 가치로 여기는 페미니즘을 접하게 됐고 성소수자인 본인의 경험을 토대로 페미니스트를 깊이 탐구하며 본인을 '퀴어 페미니스트'로 규정했다. 그는 퀴어 페미니스트를 '사회가 정상 및 표준으로 여기는 요소를 성소수자의 입장에서 주체적으로 탐구하는 사람'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씨는 공존을 강조하는 페미니스트로서 다양성을 파괴하고 차별과 위계로 구축되는 군대 체계 및 생물학적 성으로 자신을 표준 남성으로 규정짓는 국가 권력을 용인할 수 없다고 느꼈다.

재판 과정에서 정씨는 "종교적 양심 및 정치적 신념에 따라 현역병 입영을 거부했고 이러한 양심적 병역 거부권은 헌법에 의해 보장되는 권리"라며 "이 같은 현역병 입영 거부 행위는 병역법 제88조 제1항이 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1심은 정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징역 1년6개월 실형을 선고했다. 다만 1심은 정씨에게 도주 우려가 있다고 보이지는 않는다며 그를 법정구속하지는 않았다.

1심은 "양심적 병역 거부에 관해 헌법재판소는 입영 기피 행위를 처벌하는 규정인 병역법 제88조 제1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결정을 했다"며 "대법원은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가 위 조항에서 처벌 예외 사유로 규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1심은 "이 같은 헌법재판소 결정 및 대법원 판결 취지에 비춰 보면 정씨의 종교적 양심 내지 정치적 신념에 따라 현역병 입영을 거부하는 것이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며 "정씨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러나 2심은 정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2심은 "정씨는 기독교인 및 퀴어 페미니스트로서 본인의 가치관이 폭력과 전쟁에 반해 병역 의무를 거부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병역 거부 사유의 '정당한 이유'는 양심 내용의 타당성에 따라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양심, 즉 그렇게 행동하지 않고서는 자신의 인격적 존재가 파멸되고 말 것이라는 마음의 소리가 얼만큼 진실한가에 따라 이뤄진다"고 했다.
 
2심은 "여러 사정을 종합하면 신앙과 신념이 정씨의 내면 깊이 자리 잡혀 분명한 실체를 이루고 있고 이는 타협적이거나 전략적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정씨는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를 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므로 병역법이 규정한 '정당한 사유'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진정한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라면 병역법이 규정한 '정당한 사유'에 해당한다"며 "정씨는 여호와의 증인 신도가 아닐 뿐만 아니라 단순히 기독교 신앙만을 근거로 병역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므로 기존의 종교적 신념에 따른 양심적 병역 거부와는 구별된다"고 밝혔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