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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문화 강국이라는데…영화 현장은 곡소리

등록 2021.07.05 12:07:16수정 2021.07.06 08:3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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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문화 강국이라는데…영화 현장은 곡소리


[서울=뉴시스] 김지은 기자 =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영화 현장 곳곳에서는 그야말로 아우성이다. 영화산업 가치사슬의 정점에 있는 극장이 초토화됨에 따라 그 여파가 한국영화 업계 전반에 걸친 위기로 이어지고 있고, 해결의 기미도 뚜렷하게 보이지 않고 있어서다.

아카데미 4관왕에 빛나는 '기생충'과 '미나리' 윤여정의 오스카상 수상 등으로 한국영화의 국제적 위상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이때 한국영화계의 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 깊고 어둡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영화산업의 전체 매출은 전년 대비 63% 급감한 약 9132억원으로, 2006년 이후 가장 낮았다. 코로나19로 매출의 절반 이상이 날아간 셈이다.

영화산업 매출의 80%가량을 책임지고 있는 영화관 매출이 코로나19 사태로 확 쪼그라든 영향이다. 지난해 국내 영화관 관객 수는 5952만여명으로 통계 작성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영화관 매출액은 5103억7728만원으로 2004년 이후 16년 만에 바닥을 쳤다.

영화관 매출은 영화발전기금을 제외한 나머지를 영화관 운영사와 영화 배급·투자·제작사가 나눠 갖는다. 관객 감소는 곧바로 영화산업 전반의 매출 악화로 이어지는 구조로 영화관 매출이 줄면 영화산업 생태계가 위협받는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중소·영세 사업자가 대부분인 국내 영화계가 도미노 붕괴를 맞게 될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올해 들어서도 사정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역대 최저를 기록한 지난해보다는 관객이 소폭 늘어나는 양상이지만 예년보다는 3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학계 전문가들도 더 이상 시장의 자구책만으로는 정상화하기 힘든 상황이라고 평가할 정도다. 영화계에선 이대로라면 한국의 영화산업이 고사할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감돈다.
 
현장에서는 영화산업에 대한 인식 전환과 정부 지원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영화산업이 최대 위기를 맞았지만 여전히 정부 부처들의 인식은 영화를 여가 활동의 부산물이라거나 정치·경제에 비해 부수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멀티플렉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영화관은 매출이 크다는 이유로 정부 지원 대상에 빠져있다. 덩치만 클 뿐 영업적자에 시달리지만 대기업으로 단순 분류해 역차별을 받고 있다는 불만도 나온다.

최근 열린 '포스트코로나 영화산업 정상화 토론회'에서 전문가들은 영화산업은 콘텐츠 사업의 주요 기간산업으로서 잠재력과 성장가능성이 크다는 점에 주목하며 "관련 정책 지원 체계를 선도국 위상에 맞게 강화해 나갈 필요성이 있다"고 입을 모았다.

공적 지원의 당위성이나 정당성이 부족한 것도 아니다. 발제를 맡은 조희영 중앙대 첨단영상대학원 교수는 "문화예술 부문은 공공재다. 소비한 재화나 서비스 생산에 참여하지 않은 소비자에게도 편익이 발생하므로 이 분야에는 정부 지원이 타당하다"며 "영화 시장 실패에는 공적 자원의 개입이 필수다"고 짚었다. 

영진위의 '영화산업의 경쟁력과 경제적 파급효과 연구'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의 영화산업(전체 매출 2조1000억원)의 생산유발액과 부가가치유발액은 각각 9조7000억원과 3조8000억원이었다. 고용·취업유발 효과도 8만명 이상이었다.

영화관이 지역 경제와 주변 상권에 미치는 영향이 작지 않은 것을 감안하면 정부 지원 필요성에 대한 명분은 차고도 넘친다.

프랑스, 영국, 독일 등 해외에서는 영화를 핵심적인 콘텐츠 산업으로 보고 재원을 투입하고 있다. 영국은 코로나19 지원 예산으로 향후 8000억원, 프랑스는 2170억원, 독일은 1655억원을 국고로 지원하기로 했다. 반면 한국은 국고도 아닌 영화발전기금을 전용해 대부분의 재원을 충당할 예정이다. 올해 한국 영화산업 총 예산(사업비)은 영진위 사업비 1053억원과 기금 전용 183억원 등 1236억원에 불과하다. 이 중 영화발전기금에서 쓰인 돈을 제외하면 코로나 지원액은 90억원에 그친다.

산업을 살리는 것은 결국 재원이다. 김대중 정부는 당시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문화 정책의 원칙에 따라 영화진흥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재원을 확충하는 등 영화 산업을 지원했다. 물론 이에 종사하는 이들의 공이 크지만 봉준호라는 뛰어난 재능을 가진 걸출한 인재가 나올 수 있었던 데에는 정부의 지원도 한몫했다.

한국의 영화 산업은 세계 5위로 성장했고, 한국의 콘텐츠는 세계의 주류로 인정받고 있다. 기생충의 오스카 상 수상은 글로벌 문화계에서 예술성을 인정받아온 한국 영화가 상업적인 가능성에서도 주목을 받았다는 점을 증명한 상징적인 사건이다. 한국 영화가 본격적인 글로벌 지향의 산업 구조를 지향하는 일종의 전환점이 될 수 있는 지금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 최적의 시기다.


◎공감언론 뉴시스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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